법무법인 정동국제 서동희 대표변호사

▲ 서동희 변호사
이번에는 부당한 선박 압류에 의한 운송인 A가 기존 중재약정을 변경하는 것에 동의한 경우, 그 동의는 효력이 있는 것인지 여부를 보기로 한다. 관련 가상적인 사안은 이러하다.

운송인 A와 화주 B는 선하증권에 의해 해상화물운송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면약관에 분쟁의 해결은 화주 B의 소속국인 F에서 중재에 의해 해결하기로 하는 중재조항이 있고, 그 경우 실체 관계에 관한 준거법은 F국의 법률에 의하기로 하는 조항이 있었다. 그런데 운송인 A 소속의 선박 V에 의해 운송 도중 중간에 기항한 항구에서 A가 선임한 하역회사의 과실로 화주 B이 화물이 손상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해상운송에 대해 적하보험을 인수한 우리나라의 보험회사 C는 아직 보험금을 지급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대위권을 취득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선박 V가 우리나라 항구에 기항했음을 기화로 해 보험회사 C는 마치 자신이 권리를 이미 대위 취득한 것인 양, 자신의 이름으로 선박 V를 가압류의 방법으로 압류했다.

이에 선박 V의 P&I Club인 D는 그 대리인을 통해 표준적인 내용의 보증장(Letter of Undertaking)을 제공하겠으니 압류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보험회사 C는 이러한 제안을 거절한 뒤, 관할은 우리나라 법원, 준거법은 우리나라의 법으로 변경된 내용을 포함한 보증장이 제공되면 압류를 해제해 주겠다고 말했다.

운송인 A나 P&I Club D는 보험회사 C의 이러한 요구에 상당히 놀랐지만, 압류할 때 청구금액이 상당히 큰 금액이고, 이러한 금액을 현금으로 해방 공탁하는 것은 곤란한 상황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보험회사 C가 요구하는 내용의 보증장을 보험회사 C에게 제공하고, 선박을 압류로부터 해제시켰다. 이후 보험회사 C는 해당 권리를 대위취득한 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운송인 A를 피고로 해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운송인 A는 중재항변을 할 수 있는지 여부의 문제다.

이에 대해 필자가 알기로는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은 아직 없고, 해상법 전문가들의 견해도 특별히 아는 바 없다. 그러나 선박압류는 청구채권의 담보확보 의미 이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호문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법률신문 2018년 4월 19일자에서 ‘가압류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이란 글을 기고했다. 특히 이글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압류가 ‘채무자의 책임재산 보전’이라는 본래의 목적이 아니라 채무자에 대한 압박이나 괴롭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대두되었고, 법원이 나름대로 개선을 시도했음에도 여전히 가압류 제도의 남용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띤다.

필자는 호문혁 교수의 주장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가압류 제도가 남용되고 있다. 그런데 위 사안은 선박가압류의 경우로서 우리나라 현행 법체계나 실무는 일반 민사법 분야에 비해 극도로 채무자인 선주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다. 선박가압류는 담보공탁금 또는 보증보험증권으로 용이하게 할 수 있음에 비해 압류된 선박을 해제하기 위해는 선주(채무자)로서는 선박가압류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것, 청구금액과 동액의 현금을 공탁하는 것(해방 공탁금이라 함), 그리고 그 선박을 압류 상태로 그대로 두는 것이 있다.

선박가압류에 대한 이의는 1심 법원의 판단을 받기까지 최소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선박을 압류 상태에 둔 채로 이러한 절차를 진행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그러면 나머지 하나의 방법은 해방 공탁금을 납부하고, 선박가압류에 대한 이의를 하거나, 해방 공탁금을 납부하고 선박을 출항시킨 뒤, 후에 소송이 제기되면 소송에서 방어하는 길이다. 그런데 청구금액의 타당성 여하를 떠나 가압류 결정에 표시된 청구금액과 동액의 현금을 공탁해야하는 것인데, 그 금액이 클 경우 선주에게는 심각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위 사안에서 보험회사 C는 운송인 A에게 발생할 수 있는 이러한 심각한 곤궁 상태를 충분히 예상하고, 운송계약에는 중재조항이 있고, 실체 관계에 관한 준거법이 F국 법률에 의하기로 하는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존 합의 내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관할은 우리나라 법원, 준거법은 우리나라의 법으로 변경된 내용을 포함한 보증장이 제공되면 압류를 해제해 주겠다고 말하면서 운송인 A를 압박했고, 운송인 A는 어쩔 수 없이 그에 동의해 준 것이므로 필자의 의견으로는 이러한 운송인 A의 동의는 무효라 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운송인 A의 중재항변은 인용되고, 보험회사 C의 구상금 청구 소송은 각하되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는 필자의 견해이나 이에 대한 우리나라 법원이 유권해석이 속히 나오기 바라며, 청구인이 취한 위와 같은 행위가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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