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

▲ 耕海 김종길
우리는 한반도에서 반만년을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해양민족이다.

삼국시대에는 정치적 정통성을 확보키 위해 삼국이 다투어 중국을 드나들며 해상활동이 왕성하였고, 그 결과 통일신라시대에는 해상왕 장보고가 동북아시아의 바다를 장악했다. 고려왕조도 신라의 전통을 이어받아 인도양 너머 아라비아까지 항행하여 해양진출의 전승시대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하고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조선해운 말살정책을 펼쳤다. 군소해운회사를 통폐합하여 조선우선을 설립하여 우리민족이 바다로 진출할 수 없도록 한반도에 가두어놓고 숨통을 조였다.

질곡에서도 천우신조로 해기사 선각자들은 바다를 지향하는 유전자가 꿈틀거렸음인지 상선학교에 진학했다. 민족적 울분을 삼키며 각고의 노력 끝에 해기사면허를 취득하고 상선사관으로 승무하다 광복을 맞이했다.

상선학교에서 배웠던 지식과 바다에서 체득했던 경험은 황무지의 해운을 개간하는 유일한 자산이었다. 희망과 좌절을 반복하며 1인 2역, 1인 3역을 하며 세계7위의 해운국가로 도약하는 주춧돌이 되었다.

금년에도 2018년 5월 24일 해기사명예의 전당에서 헌정식이 있었다. 해기사명예의 전당은 동북아의 관문인 부산항의 태종대등대에 위치한다. 5대양 6대주를 드나드는 외항선들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이다.

2009년부터 금년까지 조국의 해운황무지를 개간開墾한 해기사 선각자 열네 분이 모셔졌다.

첫째, 오대양 육대주를 제패했던 대영제국의 런던항해대학을 졸업하고 최고 영예인 엑스트라 마스터가 되었다. 귀국하여 내무장관과 국방장관을 역임하며 대통령의 해양정책을 보좌하였던 한국해운의 대부이신 신성모님.

둘째, 도쿄상선대학을 졸업하고 해양대학을 설립하고 온갖 고난을 겪으며 해운의 간성인 해기사를 길러내신 이시형님.

셋째, 진해상선을 졸업하고 로이드보험이 최고의 선장으로 인정하였고 창군에 참여하여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하신 박옥규님.

넷째, 도쿄상선을 졸업하고 대한민국 초대해운국장으로 일본사람들이 탈취해간 선박의 반환을 촉구하며 항로확장, 선원양성, 항로표지정비 등 해운정책을 펼쳐 한국해운의 토대를 구축하신 황부길님.

다섯째, 최초로 도쿄상선에 입학했고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도선사가 되어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고 군수물자 수송선을 도선하며 누란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출하는데 헌신하신 유항렬님.

여섯째, 도쿄상선을 졸업하고 대한해운공사 창립에 참여하였고, 해양대학 학장과 해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하며 해운합리화위원장으로 한국해운을 재건하신 윤상송님.

일곱째, 고베상선을 졸업하고 해양대학 실습선 선장으로 근무하다가 6‧25전쟁 때 함장으로 참전하여 미국 무공훈장을 받으신 이재송님.

여덟째, 진해상선을 나와 인천해사국장을 거쳐 상공부차관과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정치인으로 해운발전에 공헌하신 김재곤님

아홉째, 수산학교를 나와 해운계로 옮겨 청경해운을 설립하여 일본 상고기센에 선원을 송출하였고 이들 해기사들이 첨단기술을 한국해운에 전수토록 하였으며, 한국과 소련의 직항로를 개설하신 김윤석님.

열 번째, 진해상선을 졸업하고 해군함장으로 동서남해에 소해작전을 실시하여 항로의 안전을 확보하였고 로터리 총재단 의장을 역임하며 장애인들에게 로터리정신을 구현하신 윤영원님.

금년에 헌정된 배순태님은 수산대학과 해군사관학교에서 항해학을 가르치다 대한해운공사 동해호 선장으로 세계일주항해를 최초로 성취한 한국의 마젤란이며, 인천항 도선사로 34년간 어려운 고비마다 난제를 해결하여 수도권 산업경제발전에 공헌하였다.

그 외에 신순성님, 석두옥님, 정해춘님도 해기사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학교에서 지‧덕‧체를 겸비하고 바다에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들다 광복된 조국의 해운을 개척한 광복세대이다.

광복세대가 가르치고 훈련시킨 광복이후세대들이 선진국에 송출되어 첨단기술을 도입했고,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제도를 활용하여 선복을 증가시켜 우리나라를 해기사해운국가로 불러졌다.

앞으로 광복이후세대들이 계속해 해기사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어 이곳이 한국해운의 성지로 명명될 것이다.

해기사들이 천신만고 끝에 쌓은 금자탑이 무너졌다. 세월호가 침몰되어 수학여행을 떠난 250명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바다는 울고 하늘은 한탄하고 국민은 분노했습니다. 해운사상海運思想 저변확대를 위한 몸부림은 물거품이 되어 국민의 힐난으로 돌아왔다.

해운정책당국은 해상에서 인명안전을 위해 선박검사단체를 지도감독하면서 점검과 훈련을 반복해야 했었다. 해양경찰의 수색과 구조도 지도감독해야 했었다. 그러나 비전문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강 건너 불 보듯 하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수장은 팽목항에서 산발하고 있는 동안 한진해운도 침몰했다. 조선우선으로 시작하여 해운공사를 거쳐 105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한진해운은 한국해운의 모태이었다.

장기불황을 탓할 것이 아니라 불황을 극복할 정책을 수립하지 않고 금융당국에 맡겨 두었다는 해운계의 여론이 비등하다. 해운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탄하리라!

『한국해운을 개척하셔서 해기사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신 영령들이시여!
최악의 위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국해운을 굽어 살피소서.
무기력한 후배들을 통렬하게 질책하시고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가러쳐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하게 기원했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