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 로스쿨 교수, 선박건조·금융법연구회 회장)

▲ 김인현 교수
1. 들어가며

부산에 본사를 둔 한국해양진흥공사가 2018년 7월 5일 정식으로 출범했다. 실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국선주협회가 2010년 “선박금융전문기관 설립 필요성 연구”에 대한 연구용역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발주한지 8년만에 해운·조선업계는 선박금융전문기관을 가지게 됐다.

한국해운은 해방 후 불모지에서 출발해야했다. 바다를 이용해 상품을 실어 나르는 운송업에 종사하는 해상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선박이 필요했다. 선박의 소유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은행으로부터 차입이 불가피했다. 우리나라의 금리는 외국보다 높기 때문에 우리 선사는 높은 이자를 갚아야했으므로 원가면에서 외국의 경쟁사에 비해 불리했다. 이를 만회하려면 싼 값에 선박을 보유해야한다. 해운이 불경기일 때 선가는 떨어지기 때문에 이때가 선사로서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그러나 이때 선사의 경영은 악화돼있고 담보로 제공될 선박의 가격으은 하락해있으므로 은행은 선사에 대한 대출을 꺼리게 되고 그 결과 선사는 선박을 확보할 수 없게 됐다.

선박도입가격이 낮은 선박 보유에 실패한 우리 선사들은 외국 선주들의 선박을 빌려서 운항해야 했는데, 마침 용선료가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장기간의 용선을 하게 됐다. 2008년부터 해운불황이 닥치자 용선료는 급격하게 하락했고 미리 약정된 높은 용선료를 갚지 못한 우리 선사들은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대한해운, STX팬오션과 같은 우리나라 대표선사들이 회생절차에 들어갔고 급기야 2016년 세계 7위의 정기선사였던 한진해운이 파산선고를 받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2. 해양진흥공사의 기능

(1) 보증

2008년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해운업계와 전문가들은 경기역행적인 선박금융을 원했다. 경기가 하강했을 때 선박을 매입하거나 건조할 수 있도록 은행이 금융을 지원해주기를 바랐다. 시중은행은 경기가 하강하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대출을 꺼리게 된다. 선박 건조시 건조중인 선박을 담보로 60%는 대출이 가능하지만, 후순위금융 30%가 추가로 필요한데 금융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이때 후순위 금융제공자에게 대출금 변제에 대한 보증을 해주는 은행이 있다면 후순위 금융도 제공돼 선박건조가 가능해진다.

이번에 설립된 해양진흥공사는 시중은행이 하지 못하는 경기역행적인 선박금융을 제공하게 된다. 후순위 금융제공자에게 대출금 환수를 위한 보증을 해주는 것이 공사의 주기능이다. 해양진흥공사와 시중은행은 후순위 대출 30%를 해준 시중은행 등에게 선사가 그 대출금을 갚지 못할 때 대신 지급을 하겠다는 내용의 보증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2) 투자 및 선박은행(tonnage bank)으로서의 기능

경기가 하강하여 대출이 어려운 경우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선사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소유선박을 매도한 다음 다시 매수인으로 부터 빌려서 사용하는 것이다. 소위 sale & lease back 기법이다. 그런데 불경기이므로 선가는 평균보다 아주 낮은 상태이다. 선박을 싸게 외국 선주들에게 매도하면 우리 선사는 손실을 보았으므로 부채비율은 높아지고 경쟁력은 낮아진다. 싼 선박을 보유하게 된 외국선사의 경쟁력은 오히려 높아지게 된다. 해양진흥공사는 이럴 때 투자기능을 수행하여 우리 선사들의 선박을 매입하여 그 선사에게 다시 빌려준다. 매입금액은 시장가로 하지만, 장부가와 시장가의 차액은 공사가 유상증자의 형식으로 들어가므로 선사는 운영자금도 확보하면서 자본을 증가시켜 부채비율도 낮출 수 있다. 또한 우리 선박이 외국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장점도 있다. 부채비율도 낮출 수 있다. 또한 우리 선박이 외국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장점도 있다.

(3) 선박이외의 물적 설비에 대한 지원

선사가 매출을 올리는 전통적인 방법은 운송계약을 통한 운임수입과 용선계약을 통한 용선료 수입이다. 정기선사는 이외에도 컨테이너 터미널을 운영하면서도 수입을 올린다. 우리 정기선사가 해외에 이러한 터미널을 운영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다면 경영의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머스크라인이 대표적이다. 해양진흥공사는 선사의 컨테이너 터미널 확보를 위한 투자와 보증도 하게 된다.

해상기업은 영리활동을 위해 물적 설비가 필요하다. 특히 정기선사의 경우 선박에 추가해 컨테이너 박스도 필요하다. 컨테이너 한척이 100단위 만큼의 자본이 필요하다면 컨테이너 박스는 60단위가 필요할 정도로 자본집약적이다. 정기선사는 컨테이너 박스를 소유하거나 임대해 사용해야 하는데, 은행은 대출을 꺼린다. 컨테이너 박스는 담보로서의 가치가 낮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해양진흥공사는 정기선사가 컨테이너 박스를 리스할 경우 대출 혹은 보증을 제공할 수도 있고 자신이 컨테이너 박스를 소유하거나 임차한 리스회사가 돼 안정적으로 컨테이너 박스를 정기선사에게 빌려주는 기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3. 민간이 유념해야할 사항

해양진흥공사의 출범에 즈음해 해운·선박금융업계가 유념해야할 사항도 있다.

(1) 민간의 몫인 인적설비와 영업망 확충

우리 선사가 약육강식의 국제해운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는 물적 설비뿐만 아니라 인적 설비는 물론 영업을 위한 소프트웨어도 잘 갖추어야한다. 공사가 지원해주는 것은 선박, 컨테이너 터미널, 컨테이너 박스 등 물적 설비에 국한된다.

우수한 선장과 선원들을 확보해 안전하고 신속하게 운송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경쟁력 있는 피더선을 이용하는 것, 해외에 탄탄한 영업망과 육상 물류 체제를 갖추는 것은 공사가 해줄 수 없다. 이러한 것은 모두 선사 자신의 몫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일본 NYK는 1990년대 말부터 포토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해 육상물류회사를 운용하게 됐고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같은 시기에 부채비율을 맞추기 위해 자동차 운반선, 유조선과 같은 포토폴리오를 매각해버렸고, 2000년대 초반 호경기 때 불황에 대처할 다른 수단이나 비상계획도 마련해두지 못해 불황에 속수무책이었다.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운업계는 백년대계를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야한다.

(2) 공사의 기존 금융권과의 상생관계

해양진흥공사도 대출과 보증이 주된 기능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런 기능을 하고 있는 국책은행 및 시중은행과의 관계가 문제된다. 선순위 대출은 시중은행이 하고, 신용이 좋은 공사는 후순위 보증을 제공해 시중은행이나 국책은행의 후순위 대출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면 상생관계가 될 것이다. 현재 여객선의 건조 등과 같이 선박금융 제공에 애로가 있는 부분을 해소하거나 엄격한 부채비율 기준을 해운의 특성에 맞추어 조금 완화해 중견선사에도 금융을 제공하는 기능을 공사가 할 필요가 있다.

(3) 부채비율 낮추는 방안의 확보

해운재건 5계획 계획에 의하면 향후 5년간 200척의 선박 건조를 해양진흥공사가 지원하게 된다. 선사가 해양진흥공사를 활용해 선박의 건조대금에 대한 지원을 받을 것인데, 국적취득조건부 선체용선(나용선)으로 선박을 보유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선박에 대한 보유형태는 자본의 변화없이 자산과 부채가 증대하게 되므로 부채비율을 높이게 된다. 높은 부채비율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선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주므로 부채비율을 낮출 다양한 조치의 강구가 필요하다.

국취부 선체용선된 선박을 실제로 인도받아 영업하면서 당기순이익이 나게 되면 자본이 증대되게 된다.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의 증대도 좋은 수단이 된다. 해양진흥공사, 화주, 조선소 등이 직접 선사에 주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존에 보유하는 선박을 매도하고 용선하는 방식을 사용해도 부채비율은 줄어든다.

(4) 특수목적회사의 해외설치 지양

금융권이 개입돼 선박을 건조할 때에는 파나마, 마샬아일랜드 등 해외에 특수목적회사(SPC)를 설치하는 것이 통상이다. 이는 편의치적제도를 활용해 선원비의 절감, 행정규제의 완화, 세금의 절감 등 효과와 함께 도산절연과 저당권 실행의 용이 등 장점을 누리기 위함이다. 편의치적제도는 우리나라 및 세계적인 관행인 점은 인정된다.

특수목적회사가 해외편의치적국에 등록되면 편의치적국의 관할하에 놓이게 된다. 해사안전관련법은 모두 그 기국의 법률을 적용받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나라 선사나 금융사가 실질적인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유사시 그러한 선박은 타국의 관할 하에 있으므로 우리 정부가 징집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해양진흥공사의 지원을 받아 건조하는 선박을 외국에 등록하고 외국의 깃발을 달고 그 외국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특수목적회사의 장점을 살리도록 하면서 우리나라에 등록하는 방안을 강구해야겠다.

(5) 해운부대산업의 발전 도모

우리 선사들의 선박확보에 대한 공사의 지원은 다양한 해운부대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신조되는 선박은 해상위험을 담보하기 위해 보험에도 가입돼야하고 선박의 안전을 위해 선급검사도 받아야한다. 그리고 분쟁이 발생하면 분쟁해결도 해야 한다. 이러한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영국 등 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국민의 세금으로 금융을 일으켜 건조되는 것이니 만큼 이들 선박들이 가능한 많이 우리 조선소에서 건조되고 우리 선원들이 승선하고 우리 선급(KR)에 가입하고 우리 보험사(Korea P&I)에 가입하고 우리 법을 준거법으로 하고 우리나라 법원 혹은 해사중재(서울해사중재협회가 2018년 2월 설립됨)에서 더 많은 분쟁해결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해운연관산업이 매출증대를 통해 더 많은 국부창출을 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조선소, KR, Korea P&I 등 관련 산업계도 우리 선사가 외국경쟁사보다 자신들을 선택할 수 있도록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고 수요자를 설득하는 노력을 경주해야할 것이다. 막연한 애국심에만 호소해서는 안된다. 선사들도 치열한 국제경쟁력하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위기에 처한 해운·조선산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국제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해양진흥공사를 설립했다. 이제는 민간 업계가 정부의 노력에 화답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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