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경영이 해운불황 극복의 힘”

“투명한 경영이 해운불황 극복의 힘”

▲ 박종규 회장
해운경기는 2008년 이후 10년의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완전한 회복세는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부정기선 시황이 일부 회복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부정기선 부문을 포함하여 해운의 각 분야가 장기적인 침체 상황에서 더욱 선명한 양극화 현상을 보임으로써 한국의 해운산업은 전체적으로도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2008년 이후의 장기 해운불황에도 불구하고, 개혁적인 경영 시스템 도입과 장기계약 등을 통해 안전경영 기반을 구축함으로써 위기를 완전히 벗어나 매년 흑자를 내고 있는 기업도 있다. 장기 해운불황에 가장 잘 대처한 국적선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KSS해운이 바로 그런 회사이다.

KSS해운이 오늘날과 같이 매년 연속적으로 흑자를 내는 우량기업으로 커 온 배경에는 사원지주제, 임직원 이익공유제 등을 내세우며 정도경영을 실천해온 이 회사의 대주주 박종규 고문의 심혈을 기울인 노력이 깔려있다는 사실은 해운업계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이다.

박종규 고문은 한진해운 사태가 터지기 1년전인 2015년 7월에 한국해운신문의 특별인터뷰에 응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하나로 합치고 당분간이라도 국영선사 체제로 운영하여 우리나라의 원양 정기선해운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로의 뼈아픈 충고를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 바람에, 결국 한진해운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그 여파로 우리 한국해운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니 한탄이 저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경영권의 대물림을 배격하고, 사원지주제를 통해 회사의 이익을 공유하며, 리베이트와 밀수의 근절을 통해 올바른 경영을 실천하려고 노력해온 박종규 전 KSS해운 회장의 회고록을 연재하는 이유는, 그가 겪어온 경험과 행로에서 우리 해운인들이 배우는 점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것들이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한국해운을 부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으면 하는 생각에서이다. (이 글은 박종규 회장과 가진 인터뷰를 중심으로 썼지만, 박종규 회장이 2000년에 발간한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지킨다’라는 책에서 많은 부분을 참고하고 인용했음을 밝혀 둔다.)

"비자금, 리베이트 절대로 만들지 말아야"

기업을 정상적으로 경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경영에 있어 소위 오너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잘 못은 기업의 소유권 뿐만 아니라 경영권까지도 후손에게 대물림 하려고 하는 것이다. 소유권은 그렇다고 쳐도, 경영권을 2세에게 물려주게 되면 그 기업은 경영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해운업계에서도 확인되는 현상이지만, 2세로 경영권을 물려줘서 제대로 성공한 기업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2세라도 경영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 분야에 경험도 적고, 경영 감각도 떨어지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러기에 경영권은 경영을 잘 하는 사람에게 물려줘야 하는 것이 맞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회사를 대물림 한다는 생각은 아예 가져 본적이 없다. 나에게는 아들이 셋이나 있지만, 이들은 한국과 미국에 각각 거처하면서 경영인으로서 또는 전문인으로서 각각 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 자식들도 애초부터 경영을 물려받겠다는 생각을 가지지도 않았고, 현재는 모두들 자기 일이 있기 때문에 회사를 물려받기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마 이렇게 대주주가 경영권을 대물림하지 않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승계를 해나간 기업은 유한양행과 우리 KSS해운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우리 인간은 욕심이 있기 때문에 회사를 타인에게 넘겨주는 일이 절대로 쉽지가 않다. 특히 우리나라 대부분의 오너들은 기업을 자기 재산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경영권을 타인에게 물려주는 것조차 회사를 빼앗기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오너가 나이가 들어 늙게 되면 마음이 약해져서 피붙이의 경영참여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부인들의 자식사랑이 대단하기 때문에 부인들의 강력한 의사에 떠밀려 결국은 할 수 없이 회사를 자식에게 대물림 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딱 잘라서 거절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기업경영에 문외한인 자식에게 대물림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더구나 2세 경영체제로의 전환은 직원들의 사기에도 결코 좋은 영향을 미칠 수가 없어서 분란의 씨앗이 되기 마련이다.

정상적인 기업경영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부정부패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에 비자금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특히 영업에 있어서 리베이트를 없애야 한다. 선사의 입장에서는 선원들이 밀수하는 것을 철저히 막아야 할 필요성도 있다.

소위 부정적인 뒷거래를 하면 그 당시에는 비즈니스가 성공하는 것 같고, 잘 된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 나중에는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게 된다. 나는 대한해운공사에 근무할 당시 이런데 대한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에 “내가 만약 회사를 만든다면 리베이트와 밀수만은 반드시 근절 시켜야겠다”는 결심을 굳게 했고, 실제로 내 스스로 회사를 설립한 후에는 이를 철저히 실천해 왔다.

리베이트 거래가 일상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것을 근절하면서 경영을 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은 얘기다. 나의 경우에도 KSS해운의 초창기(코리아케미컬캐리어스 시절) 영업부 직원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듣기도 했다. “리베이트 없이 어떻게 영업을 하라는 것이냐”, “사장이 영업을 모르니까 이런 식이다” 등등 많은 공박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리베이트는 반드시 없애겠다는 방침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 결과 리베이트가 횡횡하는 국내거래는 많이 줄어들고, 리베이트와는 상관이 없는 일본 쪽과의 거래가 늘어나는 현상이 생겼다. 리베이트 거래를 절대 못하도록 하니까 영업사원들이 리베이트를 주지 않아도 되는 일본을 비롯한 외국과의 거래를 늘려나가게 된 것이다. 결국 리베이트 근절이 자연스럽게 우리 회사 영업의 국제화를 불러오게 된 셈이다.

리베이트가 없기 때문에 운임을 거래처에 공개할 수 있었다는 것도 하나의 메리트였다. 우리는 운임 태리프를 기차시각표처럼 만들어서 거래처에 돌렸다. 거의 공개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거래처들은 수출입 화물을 네고할 때, 우리 회사의 운임은 물어보지도 않고 그 태리프만을 보고 네고할 수 있으므로, 빠른 오퍼를 낼 수 있었다. 그런 빠른 오퍼로 인해 거래가 성사될 확률이 높았고, 결과적으로 우리 회사의 배를 쓰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던 것이다.

영업적인 면에서의 리베이트는 경영적인 측면에서는 비자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영을 하면서 비자금을 만들지 않는 것도 투명한 경영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한국적인 풍토에서는 뭔가 사업을 크게 신장시키려면, 정책적인 자금을 내놓아야만 한다. 그래서 사업가들은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큰 것을 먹을 것인가. 깨끗하지만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살아야 하나를 항상 고민하게 된다. 나는 그런 결정의 순간마다 깨끗하고 작은 것을 택해 왔다. ‘절대 비자금을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집했기 때문에 크게 발전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택에 오늘날까지 잘 살아남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선사의 입장에서는 밀수를 근절하는 방안 마련도 투명한 경영을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발전하여 외국에서 밀수할 것이 없게 됐지만,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주요항구에서는 밀수가 성행했다. 나는 밀수를 방지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실천해 나갔는데, 이것도 대한해운공사에서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앞서 쓴 책 ‘손해를 보더라고 원칙을 지킨다’에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대한해운공사에 입사 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 윗선에서 “밀수방지책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은 바 있다. 그 후 부산지점으로 발령 나서 내가 확인한 선원들의 밀수 실태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 때 이런 밀수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에 실제로 코리아케미컬캐리어스를 설립하고 첫 번째 도입선박인 제1 케미캐리호가 취항하는 날(1970년 8월) 나는 부산항을 방문하여 선원들의 소지품 검사를 실시했다. 이 때 한 선원이 가지고 있던 돈 300만원을 압수하고, 밀수를 할 경우 해고를 하겠다는 강력한 경고를 전 선원에게 한 바 있다. 사업시작 초기부터 밀수 근절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던 것이다. 사업초기에 모든 것을 바로잡아 놓아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한번 잘못된 물이 들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것을 고치기는 대단히 어렵다. 더구나 밀수는 국가경제에도 큰 손실을 끼치는 해악이라는 대의명분도 있어서 나는 이것만은 막으려고 노력했다. 나의 이러한 노력으로 빠른 시간 안에 우리 회사에서는 밀수가 완전히 근절이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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