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교수(고려대 로스쿨, 前 선장)

▲ 김인현 교수
추석과 설 명절에 아이들과 같이 영화를 보는 것이 연례 행사가 되었다. 작년 추석에는 영화 ‘남한산성’을 보았고, 추석 다음날인 어제(2018년 9월 25일) 저녁 영화 ‘안시성’을 보았다. 남한산성과 안시성은 모두 대국인 중국의 군대가 쳐들어와 우리 군대와 싸움을 하는 전쟁영화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두 영화는 많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역사적으로는 안시성 싸움은 서기 645년 고구려 때이고 중국은 당나라 때였다. 남한산성은 1636년 조선시대이고 중국은 청나라 초기였다. 남한산성은 47일간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다고 항복을 하게 되었지만 안시성에서는 90일을 견뎌내고 승리를 하였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난다.

영화 남한산성은 척화파 김상헌과 화친파 최명길의 명분론과 실리론이라는 큰 사상적 대립을 배경으로 하여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영화 안시성은 성주 양만춘이 리더십을 발휘하여 단결과 지략으로 중국 대군과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싸워나가는 단순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645년 요동의 주필산 전투로부터 시작된다. 20만 당나라 대군과 15만 고구려 대군이 맞붙었지만 매복을 당한 우리 고구려군이 패배하고 만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고구려 수도 평양성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안시성을 공격하게 된다.

안시성에는 성주 양만춘(조인성 분)이라는 걸출한 영웅이 버티고 있었다. 그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양만춘은 철저하게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다. 연개소문으로부터 그를 살해하라는 지시를 받고 온 사월은 그의 인간성과 애국심에 반하여 오히려 그의 사람이 되고 말 정도이다.

그는 당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 안시성의 모양자체가 수비하기에 좋은 모양으로 지어져 있다. 성곽이 한자로 요(凹)자 모양이다. 이러한 성곽은 튀어나온 양쪽의 끝부분에서 성문을 부수는 적군을 향해 화살을 쏠 수 있다. 당군이 높은 통모양의 사다리 무기로 공격했을 때 양쪽에서 밧줄을 걸어 이를 쓰러뜨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러한 성곽의 모양에서 가능하였다.

성곽 입구를 지키기 위하여 성곽 앞에 다른 형태의 성을 쌓은 것을 옹성이라고 하는데 고창읍성, 수원성, 남한산성에서 볼 수 있다. 옹성과 유사한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군이 성벽을 쳐도 성벽이 뚫리지 않았다. 성벽의 안쪽이 흙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성곽이 무너지지 않았던 것이다. 당군은 이를 알고 당황한다.

성문이 뚫렸지만, 성주 양만춘은 “결코 성이 뚫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2차 방어진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도록 나무로 만든 그물망을 쳐서 적을 가두어 몰살을 시켰다. 기름을 준비하여 활용하거나, 큰 돌을 달아서 기어오르는 적군을 내리치는 장면에서도 철저한 준비상황을 알 수 있게 한다.

영화는 높은 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전쟁에서 얼마나 유리한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리적으로 높은 지대에 위치한 성곽에서 수비하는 안시성 군대가 낮은 지대에서 공격하는 당나라 군대에 비하여 절대 유리하였다. 대포가 없던 시절 지리적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전쟁에서 최고의 이점이 되었음은 쉽게 이해가 된다.

이세민은 갖은 방법을 다하여 공격을 한다. 화살을 높이 쏘아 성벽위로 올리는 방법, 사다리를 타고 기어오르는 방법, 높은 구조물을 만들어 위에서 아래로 쉽게 공격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지만 그는 번번이 실패한다. 마지막으로 이세민은 3개월간 토산(土山)을 지어서 지리적인 열세를 일거에 만회하여 안시성을 정복하려고 한다.

안시성안은 긴장감이 감돈다. 야간기습을 감행했지만, 신녀의 밀고로 실패하고 만다. 신녀는 고구려 신이 고구려를 버렸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양만춘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안시성.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양만춘. 아이들의 소꿉놀이에서 영감을 얻은 양만춘은 토산의 밑으로 굴을 뚫고 들어가 토산을 무너뜨리는 전략을 구사한다.

주민들의 살신성인하는 희생정신에 힘입어 막 공격을 시작하던 당나라 군대는 토벽이 무너지면서 또 패배와 후퇴를 하게 된다. 양만춘은 사력을 다하여 무너진 토벽의 고지를 장악한다. 또 다시 높은 지대의 중요성을 안 양만춘은 이를 실천한 것이다. 화가 난 이세민은 총공격을 개시하여 끝장을 보려고 한다. 그렇지만 높은 고지에서 수비하는 양만춘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드디어 화살까지 모두 떨어진 상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할 찰나에 양만춘은 주몽이 사용하였다는 대궁(大弓)을 가져 오라고 한다. 대궁은 주몽 말고는 활시위를 당길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육중하다. 그렇지만 멀리까지 화살이 날아갈 수 있다. 양만춘이 두 번째 시도에서 활시위를 있는 힘을 다해 당겨 하늘 높이 날린다.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다. 멀리 날아간 화살이 이세민의 왼쪽 눈에 꼽힌다.

한편 연개소문이 암살자로 보냈음을 알게 되었음에도 양만춘은 사월을 안시성 사람이라고 죽이지 않는다. 사월은 성곽 위 싸움에서 양만춘을 구해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안시성을 구하기 위하여 사월은 평양으로 가서 연개소문을 설득한다. 드디어 연개소문의 군대가 도착하니 당 태종 이세민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혼비백산 후퇴를 하였다. 이렇게 하여 고구려와 당나라가 붙은 안시성 전투는 고구려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된다.

영화에 그려진 바에 따르면 안시성 전투에서 승리의 가장 큰 요인은 안시성이 갖는 지리적 여건이라고 생각된다. 양만춘에게는 높은 지역에 효율적으로 지은 성곽이 있었다. 대포가 없던 시절 낮은 지대에서 공격하는 측이 높은 지역에서 수비하는 군대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 양만춘은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활용하였다.

또 하나 승리의 동력은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진 성주 양만춘과 성주민들의 성을 지켜내야겠다는 합치된 마음과 이들의 살신성인하는 자세였다. 성주 양만춘의 철저한 준비와 지략도 승리의 요인으로 크게 부각되어있다.

영화를 보는 순간 우리 정기선해운의 위기상황이 오버랩 되었다. 2년전 한진해운의 법정관리에 이은 파산과 2개 외항정기선사의 부진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원양정기선 해운과 당나라 20만 대군에 맞서 싸워 승리한 5천명의 안시성 군대가 크게 비교되었다. 이를 정리 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이 많다는 점은 안시성 전투에서 적을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성곽의 존재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세계 10위권 이내의 물동량을 가지고 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20년간 우리나라의 수출입 물동량은 10배나 성장한 것으로 나온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해운사들의 매출은 제자리 걸음이었다가 한진해운사태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약 30조원이다. 이런 저런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우리 해운산업의 매출은 20년 전에 비하여 5배는 확장되었어야 한다.

머스크는 덴마크 회사이다. 덴마크는 수출입 물동량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그렇지만 머스크는 세계최대의 정기선사가 되었다. 왜 우리 원양정기선사는 북태평양 항로에서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17%만 싣고 다니느라고 운임수입을 올리지 못하는 것일까? 왜 우리 수출입 화주들은 우리 정기선사를 외면하고 외국 정기선사를 선호하여 짐을 맡기는 것일까? 우리 수출입 화주들은 안시성과 같은 성곽이 주는 장점을 우리 정기선사들에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해운과 무역과의 관계가 안타깝기만 하다.

둘째, 우리 원양정기해운의 전략이다. 양만춘은 전쟁에 대비해 장수와 군인들을 철저하게 전쟁준비를 시켰다. 이러한 철저한 준비가 전쟁에서 승리한 큰 요인이다. 그 철저한 준비는 육체적인 단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머리를 쓴 전략들이다. 수비하기 좋은 성곽자체의 모양, 기름주머니, 나무를 이용한 그물망 포위작전, 대형 돌을 이용한 수비, 토굴 아래를 뚫고 들어가는 전술 등이 동원되었다.

정기선해운은 단순히 선박만 항로에 띠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국제 경쟁하에 있기 때문에 화주에게 싼 운임을 제공하기 위하여 육상에서 해상에서 다양한 전략으로 원가를 낮추어야 한다. 물적 수단인 선박과 컨테이너 박스의 보유 비용을 줄이고, 컨테이너의 회수비용을 줄여야한다. 피더선의 효율적인 활용, 규모의 경제를 통한 각종 사용료의 절감, 육상의 운송망의 확충 이런 것들이 모두 절실하게 필요하다. 영업 전략으로서의 포토폴리오의 확충도 필요하다. 이러한 것은 양만춘이 철저히 준비한 각종 전술들에 비견된다. 과연 우리 외항정기선사들은 어느 정도 이런 것들이 실행되었는지 반문하게 된다.

셋째, 해운계의 각 분야의 리더십에게 주는 교훈이다. 양만춘은 몸을 사리지 않고 직접 전투에 뛰어들어 부하의 전투를 독려하는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는 장수들과 주민들과 소통하고 상대방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부드러운 리더십도 보여주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주를 중심으로 군대와 주민들이 일심동체가 되었다. 안시성 자체의 힘만으로 살아남아야한다는 생존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그는 주민들에게 제시하고 끌고 갔다. 안시성 싸움은 양만춘의 탁월한 리더십의 결과물이다.

해운계에서도 훌륭한 리더십이 존재했었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 오늘이 있다. 그렇지만 최근 외항정기선 해운의 부진을 단순한 불경기나 금융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리더십의 부재가 일정부분 그 부진에 기여했다고 보여 진다. 한진해운이 사라진지 2년이 지난 다음에도 한진해운이 올렸던 8조원의 매출은 다시 회복되지 않고 있다. 양만춘 성주와 같이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면서도 뚜렷한 목표의식을 제시하여 몸소 실천하면서 부하 및 주민들과 소통하여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는 리더십이 해운산업 각 분야에서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넷째, 해운계는 물론 무역업계 등 관련 산업에게 주는 교훈이다. 안시성 사람들은 토산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땅굴을 파게 되었다. 땅굴을 지탱하던 목재버팀목에 불을 붙여야하는데, 비가 와서 기름에 불이 붙지 않자, 주민 10여명은 도끼로 막장을 무너뜨리고자 결심한다. 그 결과는 자신들의 죽음이었다. 그들은 위기상황에서 죽음으로서 성을 구한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죽음의 결과 토산이 무너뜨려졌고 안시성이 살았고 고구려가 살아남았다. 그들의 죽음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우리 해운계나 무역업계가 이런 살신성인하는 자세를 과연 얼마나 보여주었나? 여기서 말하는 살신성인하는 자세는 공선사후(公先私後)하는 자세를 말한다. 모두 사기업들이기 때문에 이익추구가 우선인데, 공익적인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리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른 위기상황이다. 공익적인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해방이후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선배님들은 해운산업을 키워놓았다.

외부로부터 적들이 처들어 왔을 때 살 수 있는 방안으로 만든 안시성이라는 성곽이 큰 힘을 발휘하여 5천의 군사가 20만 대군을 이겨내듯이 우리 수출입화물의 운송, 즉 무역입국의 수단으로서 해운을 만들어 둔 것이다. 이를 활용하고 살려두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 모두를 위하여 유용한 것임에 의문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정기선해운은 무역과 연결되어있다. 우리나라 정기선해운이 없다면, 모든 수출입화물의 수송을 외국정기선사에 의존하여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가 해마다 매출 20조원을 획득하지 못하게 되는 점이 가장 뼈아프다. 외국 정기선사만 있을 경우에는 우리 정기선사가 없으므로 운임이 쉽게 올라가 우리 수출입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싫던 좋던 모항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 정기선사는 안시성의 성곽과 같은 존재이다. 그 힘이 평화스런 시대에는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때에는 요긴하게 그 기능을 다한다.

우리 정기선사가 있어야만 부산항, 광양항, 인천항 기항이 반드시 보장되어 우리 화물이 적기에 순조롭게 선적되어 수출입이 될 것이다. 우리 외항 정기선사와 우리 화주들은 안시성의 성곽과 같은 존재가 되어 서로 보호를 받아야한다. 그 첫 걸음은 우리 화주의 물량을 가능한 많이 우리 정기선사에 실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우리 원양정기선사들은 원가를 절감하여 운임경쟁력을 갖추어 화주로부터 이와 같이 선호 받도록 하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우리 외항정기선사들이 우리 화주들이 아니어도 외국화주들의 화물을 실으면 충분하다는 느슨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버려야한다. 내수를 버리고 외국만 바라보는 것은 안전한 성곽을 버리고 벌판에서 싸우는 격이 될 것이다.

양만춘의 안시성 싸움은 역사적 사실로서 이미 드라마 등에서 많이 다루어졌다. 그렇지만, 2018년의 영화 ‘안시성’은 오늘의 관람객의 입장에 따라서 다양한 시각에서 평가되고 실생활에 투영되게 될 것이다. 해운인의 한사람인 나에게는 우리 해운의 어려운 상황이 투영되게 되었다. 우리는 작은 나라였기 때문에 외국과의 싸움에서는 항상 열세에 있었다. 현재 국제경쟁에 100% 노출된 우리나라 무역이나 해운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열세에 우리가 놓여있으므로 우리가 단결하고 화합하고 지략으로 미리 대비하여 국제경쟁력을 기르고 발전시켜 나가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

학계 등 전문가들은 연구를 통하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영모델을 개발하고 법률로서 국적선에 화물을 적재하는 경우 보호되는 법제도를 제시하면서 이에 동참해야할 것이다. 목표를 뚜렷하게 해야 한다. “무역입국과 해운입국을 위해서는 우리 국적의 외항정기선해운이 꼭 필요하다”는 목표이다. 외항정기해운계와 무역업계의 상생하는 정신과 단합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영화 안시성을 보고,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다. 두 업계는 서로에게 안전한 보루인 안시성이 되어야겠다. (2018.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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