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길·철길로 아시아-유럽 연결하는 연운항

TCR 물량 80% 점유, 유럽항로까지 개설

중국의 몽니, 자국민부터 하선하라?

창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에 눈을 떴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있는데 청도항에 입항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서둘러 하선 준비를 마치고 로비로 향했다. 로비는 벌써부터 하선을 준비하는 이들로 북적인다. 700여명이나 되는 저 많은 승객들이 하선과 입국 수속을 마치려면 족히 2시간은 걸릴 듯싶었다.

그런데 실제로 기자가 하선하고 입국하는데 2시간이 소요됐다. 어쩌다 2시간이나 걸렸을까? 그 이유는 이랬다. 중국 법무부 지시로 중국 관광객들과 상인들이 모두 내리고 맨 나중에 한국인들의 하선이 이뤄지면서 기자를 비롯한 한국 관광객들이 맨 나중에 내리게 된 것이다. 청도항 국제여객터미널에 몇 번 와봤지만 가장 마지막으로 하선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위동항운 관계자는 가끔 중국 법무부가 몽니를 부려 자국민부터 먼저 입국수속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어서 항의를 몇 번했는데 개선이 안되고 있다는 귀뜸을 해줬다.

내외국인의 입국순서를 차별하는 중국의 행태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하며 뉴골든브릿지7호에서 내렸다. 그래도 2015년에 새로 지어졌다는 청도항 국제여객터미널은 꽤 근사한 모습과 시설들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이해가 안됐던 점은 하선지점에서 터미널까지 불과 10m도 안되는 거리를 셔틀버스로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승객들은 무거운 짐을 들고 버스에 올랐다가 1분도 안돼 다시 버스에서 내리는 불편함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다. 보세구역 문제라면 가이드라인을 치고 공안을 몇 명 배치한 후 승객들이 직접 터미널로 걸어 나가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 2015년 오픈한 청도항 국제여객터미널

10년만에 다시 찾은 연운항, 상전벽해

입구수속을 마치고 청도항 국제여객터미널을 빠져나오니 벌써 11시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지가 연운항인지라 청도를 둘러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곧바로 차량에 탑승해 연운항으로 이동했다. 청도에서 연운항까지의 거리는 약 250km, 차로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나 기자가 방문할 당시는 국경절 연휴여서 인지 몰라도 청도 시내의 교통체증은 서울의 출근시간대 교통지옥과 버금갈 정도였다. 꽉 막힌 청도시내를 벗어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고 고속도로에 올라타고 나서야 겨우 차가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연태에서 시작해 상해까지 이어진다는 G15 고속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고속도로를 달린지 3시간여만에 연운항에 도착했다. 10년 전인 2008년 연운항을 방문했었던 기자에게 연운항은 상전벽해를 한 듯 완전히 다른 도시처럼 보였다. 연운항은 항만시설이 모여 있는 수변지구인 연운구와 시청을 비롯해 주요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는 해저구로 양분된다. 10년전 봤던 연운구는 개발이 거의 안된 한산한 시골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공원과 아파트, 상업지구가 들어선 깔끔한 신도시로 변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국 중소도시인 연운항에 BRT시스템이 도입돼 있다는 점이었다. BRT(Bus Rapid Transit)는 간선급행 버스로 우리나라의 중앙버스차선제처럼 전용도로를 갖추고 마치 지하철 역사와 같은 전용 플랫폼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강소성 최고 봉우리 화과산 옥녀봉 올라

연운항의 관광지는 사실 화과산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연운항훼리가 판매하는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정주의 소림사, 낙양, 장가계 등이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연운항에서 차로 최소 6시간 이상 소요되는 장거리 여행지이고 연운항 시내에서 둘러볼만한 관광지는 화과산이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손오공의 고향으로 유명한 화과산은 운대산의 일부로 최고봉인 옥녀봉이 해발 625m에 이르는데 연운항이 속한 강소성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한다. 산 밑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20분만에 옥녀봉에 올랐다. 셔틀버스 정류장에는 족히 100대는 넘는 버스들이 정차돼 있었고 쉴 틈 없이 버스들이 오가고 있었다. 셔틀버스 이용객도 많았지만 직접 산을 오르는 관광객들도 적지 않았다. 등산으로 옥녀봉에 오르려면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일정상 셔틀버스로 옥녀봉까지 쉽사리 올라오다보니 산 중턱에 있다는 그 유명한 수렴동을 볼 수는 없었고 손오공의 후예인 원숭이 한 마릴 보지 못했다. 원숭이들은 수렴동 인근에만 서식하는지라 기자처럼 셔틀버스로 단박에 옥녀봉에 오르면 원숭이는 포기해야한다. 대신 산 아래 기념품점에서 판매하는 엄청난 많은 종류의 원숭이 인형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너무 쉽게 옥녀봉에 올라서인가? 뿌연 안개 때문에 풍광이 좋질 못했다. 날만 좋으면 연운항 시내와 서해바다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조금 아쉬웠다. 입장료만 100위안(약 1만 6천원)에 달할 정도로 꽤 비싼 관광지이고 그만큼 볼 것도 많은 화과산이라는데 언제 시간을 다시 내서 산행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셔틀 버스를 타고 산을 내려왔다.

▲ 화과산 관광지 입구.

연간 40만teu 이상 처리되는 TCR 시발점

이번 취재 여행의 가장 핵심중 하나인 연운항의 TCR 시발점을 드디어 직접 눈으로 보게 됐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TCR이 연운항에서 첫 출발한 것은 지난 1992년 12월이라고 한다.

연운항 TCR 시작점을 알리는 기념비는 COSCO가 운영하고 있는 신동방컨테이너 터미널 CY에 마련돼 있었다. 신동방 컨테이너 터미널 관계자에 따르면 1992년 이곳에서 TCR이 첫 출발했고 당시를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와 실제 운항했던 기관차를 전시해놨지만 지금은 여기서 TCR 물량을 처리하지 않고 오프독 CY에 마련된 별도의 철송장에서 처리되고 있다고 한다.

연운항에서 처리되는 TCR화물은 연간 약 40만teu정도이며 중국에서 처리되는 TCR 화물의 약 80%에 해당된다고 한다. 지난해말 연운항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처리한 컨테이너가 총 329만teu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은 화물이 TCR을 이용해 중앙아시아, 유럽 등으로 수출입되고 있었다.

신동방 컨테이너 터미널 관계자에 따르면 중앙아시아, 유럽 각국과 통관협정을 맺어 TCR을 이용하는 화물에 대해 신속한 통관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최근 들어 물동량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연운항은 TCR과 컨테이너선을 통해 동시에 유럽과 연결된다는 점 때문에 화주들과 선사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연운항은 총 39개 선석을 보유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선석이 석탄, 철광석 등 벌크화물을 처리하고 있지만 9개 선석은 컨테이너 터미널로 운영되고 있다. COSCO의 신동방컨테이너터미널이 4선석, PSA의 LYG-PSA터미널이 5선석을 운영하고 있는 데 이들 9개 선석에서 매년 300만teu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329만teu를 처리해 중국에서 9위, 전세계에서 23위를 차지했다.

연운항에는 한국과 일본, 동남아를 연결하는 아시아 역내항로 뿐만 아니라 청도와 닝보를 거쳐 북유럽으로 향하는 구주노선도 개설돼 있다. COSCO, 에버그린 등이 공동운항하는 구주노선에는 1만 4천teu급 메가 컨테이너선이 투입되고 있으며 매주 1척씩 신동방 컨테이너 터미널에 기항한다고 한다.

강소성의 유일한 컨테이너 항만이자 TCR과 연계돼 구주까지 연결되는 육해상 서비스망까지 갖춘 연운항은 최근 몇 년간 컨테이너 물동량이 두자릿수 이상 증가하면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 1992년 첫 출발한 TCR 기념비와 당시 운항하던 기관차.

최신 설비 갖춘 연운항 국제여객터미널

기자는 2008년 연운항을 처음 방문했을 때 국제여객터미널이 없어 깜작 놀랐던 기억을 갖고 있다. 인천-연운항 카페리항로가 2004년 12월말에 첫 개설됐는데 당시 연운항은 국제여객터미널과 전용 부두를 미처 확보하지 못해 연운항 세관에 임시로 여객터미널을 만들고 1만 6071gt급 자옥란호를 컨테이너 터미널인 신동방 터미널에 접안시켜야 했다. 덕분에서 당시 배에서 내려 세관까지 이동하는데 20~30분정도 소요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10년만에 다시 찾은 연운항은 최신 설비를 갖춘 국제여객터미널과 부두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연운항 국제여객터미널은 2016년 10월에 준공됐는데 연운구의 수변지역과 인접시켜 여객들의 편리성을 크게 높인 것이 눈에 띄었다.

또한 터미널과 바로 인접해 Ro-Ro 타입 카페리선의 하역이 가능하도록 푼툰도 설치돼 있었다. 선미 램프 방식의 하모니운강호가 신속하게 하역작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2대의 트레일러가 교차 운항할 수 있도록 잔교의 폭을 넓혔고 푼툰은 트레일러 회전반경을 충분히 고려한 듯 넓게 설계돼 있었다.

또한 온독CY를 충분히 확보하고 CY 뒤쪽에 연운항훼리의 물류자회사인 중한물류공사가 운영하는 CFS창고가 마련돼 있어 LCL화물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 2016년 새로연 연운항 국제여객터미널과 부두.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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