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 박태원 박사
2014년 10월에 라스 옌센의 저서 「1825일의 트랜스포메이션」이 출간되었다. 해운 공룡 머스크라인의 5년간의 혁신 기록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머스크라인의 임원 출신으로 글로벌 컨테이너선 업계 정보와 분석을 제공하는 컨설팅 업체인 시인텔 마리타임 애널리시스(SeaIntel Maritime Analysis)의 최고경영자다.

머스크라인은 110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 최대의 해운 기업이다. 1928년에 머스크라인은 첫 정기선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회사의 역사가 곧 세계 해운산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스크라인은 1999년에 시랜드, 2005년에 P&O 네들로이드를 인수·합병했다. 그러나 P&O 네들로이드 인수의 후유증과 금융 위기가 겹치면서 2009년에 100여 년 역사상 전쟁 시기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머스크라인은 살아남기 위해 과감한 혁신에 나섰다. 2000년을 전후해 약 7년 동안 변화의 기반을 닦았다. 이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에 걸쳐 집중적인 트랜스포메이션(변신)을 시도했다. 100여 년간 뿌리 내린 모든 것을 바꾸는 작업이었다. 광범위한 트랜스포메이션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100년 넘은 기업 문화를 ‘효율성’을 중시하는 문화로 송두리째 바꾼 것이다.

5년이라는 시간은 100년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단기간에 일어난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고통은 헛되지 않았다. 머스크라인은 2012년 2분기 이후 흑자로 돌아섰고 현재 업계에서 독보적인 수준의 이익을 창출하면서, 글로벌 1위 자리를 더욱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머스크라인은 디지털 혁신(digital innovation)을 통한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2016년 6월에 IBM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해운 생태계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국제무역 디지털 플랫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블록체인을 이용하여 국제무역의 효율적이고 안전한 시스템을 제공하는 데 목적을 두고, 국제무역 디지털화 플랫폼도 개발하고 있다. 이 플랫폼은 개방형 표준을 기반으로 해운업계 전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머스크라인과 IBM은 블록체인을 확산시키면 세계 컨테이너 해운·물류시장에서 연간 270억달러(약 30조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또한 이 사업으로 블록체인이 무역에 도입되면 전 세계 GDP와 교역량이 각각 5%와 15%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세계선사협의회(WSC)는 무역 관련 서류를 처리하는 최대 비용이 해상운송 비용의 5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세계경제포럼(WEF)도 블록체인을 통해 이러한 불필요한 서류작업이 사라지면 국제교역량이 15%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머스크라인은 금년 9월에 모든 냉동컨테이너에 위성항법장치(GPS)를 장착하여 실시간으로 화물의 위치와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원격 컨테이너 관리시스템(RCM)을 도입하여 화주의 니즈에 부응하고 있다. 또한 항만 운영사와 세관, 물류 회사, 선사 등 해운·물류 관련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고 있는 머스크라인의 물류 플랫폼 자회사인 트레이드렌즈(TradeLens)도 금년 말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머스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Azure) 클라우드 플랫폼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글로벌 물류 디지털화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용자가 공급사슬의 전체 과정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도록 하고, 더 나아가 전 세계 물품 구매와 물류 네트워크의 상황을 사전에 파악하고 자동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지원하게 된다.

최근 현대상선을 비롯한 우리 해운업계도 블록체인 기술의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지금이라도 거대한 해운 공룡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대의 확충 못지않게 글로벌 물류 디지털화 사업과 같은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이를 위해 IT 전문 인력 확보를 비롯한 관련 인프라 구축에 범정부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선대 확보 위주의 한국해운업 재건을 위한 수 조원의 정부 지원만으로는 우리 선사들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해운업계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에 주목해야 한다. 에어비앤비와 우버가 기존 호텔업과 택시 서비스를 위협했듯, 해운업계도 디지털 혁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큰 낭패를 겪을 것이다. 향후 해운업은 선박의 크기가 아니라 고객 서비스 만족 중심으로 변화할 것이다.”

작년 10월 부산에서 개최된 ‘해양산업 CEO 포럼’에서 머스크라인의 로버트 반 트루이젠 아태지역 최고경영자가 던진 말을 다시금 곱씹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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