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굿, <페어플레이> 주필

▲ 니콜라 굿
당대의 유행하는 ‘잇템’을 자랑스럽게 내놓고 다니고 싶은 욕망은 누구든지 있으리라.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라도 하듯 채워야 하는 욕망이랄까. 바닥에라도 떨어질세라 소중히 매만지는 최신 스마트폰이나 세련된 스테인리스 스틸 주방용품, 혹은 날렵하게 번쩍이는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멈춰 서서, 바라보고, 욕망한다. 가까운 사람의 반응도 비슷하다면 우리의 소유욕은 더욱 불타오른다.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도 마찬가지다. 특히 1만 8000teu급 이상의 몸집을 자랑하는 메가 선박의 경우 누가 가장 많은 톤수를 자랑하는가를 두고 경쟁한다. 머스크라인의 CEO 아이빈트 콜딩(Eivind Kolding)이 규모의 경제와 슬롯 비용의 혜택을 활용해 트리플 E급 선박을 도입하여 해운업계를 놀라게 한 지 고작 8년이 지난 현재 전 세계 1만 8000~2만 5000teu급 초대형 선박은 87척에 이르렀다. 총 170만teu에 약간 못 미치는 수치이다.

올해 현대상선은 초대형 선박 십여 척을 도입할 계획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IHS Markit에 따르면 이로써 2021년까지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량은 현재 44척에 다다른다. 초대형 선박을 가진 몇몇 선사는 추가 주문을 자제하는 것이 낫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먼저 유행을 선동한 사람들이 이제 와서 자제해 달라는 것이 웃기는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몇몇 선사들은 여전히 초대형 선박에 눈길을 보내고 있다.

초대형 선박 대열이 늘어날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이런 메가 선박이 해운업계 모두에게 이로웠는지 의문이 인다. 해운업계의 한 전문가에 따르면 대답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아니오'다.

지난 10월, 코펜하겐 경영대학원이 주최한 "신세계 : 컨테이너 물류업의 향후 도전과제(Brave New World : the Future Challenges for Container Shipping)" 행사에서 [<더 박스 :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 경제학>의 저자] 마크 레빈슨(Marc Levinson)은 해상에서 규모의 경제가 육상에서 규모의 불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들어서면서 항만과 터미널은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기항하는 수가 줄어들거나 아예 우회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일부 시설은 좌초자산이 되기에 이르렀다고 그는 설명했다.

기항하는 선박은 줄어들었지만 각 선박이 처리하는 하역량이 많아지면서 항만 생산성은 떨어지고 있다. 선박이 항만에서 지체하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많은 항만이 수많은 컨테이너 박스를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화물 처리는 그만큼 지연된다.

이는 화주 입장에서도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감속 운항(슬로 스티밍), 기항 시간 증가, 직항 서비스 감소 및 환적 증가 등으로 인해 체류 시간이 늘어나고 그만큼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레빈슨은 지적했다. 현재 중국에서 컨테이너선의 2/3 정도가 일정보다 늦게 출발하는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적체 및 지연 현상은 더욱 심각한 공급망 위기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결코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선사들 역시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선복량을 채워야 하는 부담이 있다. 국제 무역의 불확실성과 더불어 최종 소비자 가까이 제조업 기반시설을 옮기는 추세까지 더해지면서 컨테이너 운송의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정답이 아니라고 레빈슨이 밝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1만 8000teu급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도입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확실히 소유욕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경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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