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양전용선 합류 권유를 뿌리치다
박전무가 그만둔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나를 자기 사무실로 불러서 범양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일주일만 생각 할 시간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박전무는 능력있는 상사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덕성이 부족한 분이었다. 그래서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박전무는 “생각은 무슨 생각. 오라면 오는 거지”라고 말하며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나는 일주일 후에 다시 박전무를 찾아가서 “저까지 해운공사를 나가면 선박도입 업무는 공백이 됩니다”라는 이유를 대며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박전무에게서 업무적으로 배울 것은 다 배웠고, 그 이외의 측면에서는 배울 점이 하나도 없으므로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내가 확실한 거절의사를 밝히자, 박전무는 해운공사에서 자금담당을 했던 나의 1년 선배 한상연씨를 범양으로 데리고 가서 기획실장을 시켰다. 한상연씨는 범양전용선에서 기획실장을 하다가 상무가 된후 그만두고 미국으로 갔다. 그후 그는 다시 국내로 돌아와서 범양상선 사장이 됐고, 내가 회사를 창업하는데도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박건석 회장 자살 사건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심장이 나빠져 고생을 했고 결국은 그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이맹기 사장을 조사하라-이상한 인연
1964년 11월 이맹기 사장이 제7대 사장으로 부임해 올 때 나는 그를 잘 모를뿐더러 군인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그렇고 그런 사람이겠지”하고 지레짐작을 하면서 별로 큰 기대를 갖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맹기 사장을 다시 한번 보게 되는 계기가 나에게 찾아왔다. 당시에 나는 노동조합 운동을 열심히 해 해운공사 노동조합 부위원장 직함을 갖고 있었다. 통상 해운노조는 위원장을 선원이 맡고, 부위원장을 육상직원이 담당했기 때문에 나는 말하자면 육상노조의 대표인 셈이었다.
남의 뒷조사나 하라고 하니 상당히 불쾌했지만, 오래간만에 하는 위원장의 요청이라서 거절할 수가 없었고, 사실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기도 하여 실제로 뒷조사를 해봤다. 그랬더니 그야말로 아주 깨끗한 사람이었다. 술을 좀 자주 먹는 것 이외에는 어떤 흠집도 찾을 수가 없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방해창 위원장에게 “깨끗한 사람이니까 건드리지 말자”고 했고, 방위원장도 이후에는 이와 관련된 어떤 주문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이맹기 사장을 존경하게 됐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