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탄복시키는 이맹기 사장의 기지

▲ 박종규 회장
내 일생의 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맹기 사장은 실제로 뛰어난 경영인이었다. 그는 여러 모로 나를 탄복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맹기 회장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어느 신문사에 기고를 했던 내용이기도 하지만, 그가 대한해운공사 사장으로 첫 출근할 때의 에피소드는 지금에 와서도 상당한 감동을 준다.

이맹기 사장이 해운공사 사장으로 첫 출근을 하는 날 아침, 집에서 거울에다 대고 100번 절을 하고 나서 출근했다는 일화다. 그는 평생 군인으로 지냈기 때문에 고개를 숙여 본 적이 없는데, 민간기업 사장이 되면 우선 인사를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 숙이는 연습을 100번이나 하고 출근한 것이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이맹기 사장은 부임하면서 사훈으로 “정직하고 성실한 상인이 되자”를 정해서 하달했는데, 나는 그 사훈이 아주 맘에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이맹기 사장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왜 그런 사훈을 정했는지를 물어보았다.

이맹기 사장은 “그 거 자네들한테 하는 얘기가 아냐. 나에게 하는 얘기야. 내가 상인이 못돼서, 제대로 상인이 돼야겠다고 생각해서 써놓은 거야”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 아닌가! 이렇게 이맹기 사장은 내가 두 손을 번쩍 들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맹기 사장은 임원들의 생각을 끌어내고, 그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데도 명수였다. 어느 땐가 나는 선박 도입과 관련된 중요한 안건을 브리핑 차트로 만들어 사장 이하 중역들이 참가하는 이사회에서 보고를 하게 됐다. 이사회는 점심시간 후에 바로 열렸다.

중요한 안건이라 회사 중역들 앞에서 브리핑 차트를 펼쳐놓고 하나하나 신중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보고를 하다가 가만히 보니, 이맹기 사장이 점심 때 낮술을 먹었는지, 코까지 골면서 의자에 기대어 자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맥 빠지는 일이었으나 보고를 중간에 중단할 수도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끝까지 보고를 했다. 나의 보고가 끝나자 전무들과 상무들이 서로 나서서 A안이 좋다, B안이 좋다, 논쟁을 벌였다. 마구 시끄러울 정도로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참 논쟁을 하고 있는데 이맹기 사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모두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모두들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순간 얼른 추가 설명을 하려고 차트 옆으로 갔는데, 이맹기 사장은 “됐어. A안이 좋겠구만”하면서 A안으로 하자며 모두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중역들도 모두 A안이 좋다고 하자, 그것으로 결론이 났고, 회의는 끝이 났다.

브리핑 차트를 열심히 준비한 나는 사장의 성의 없는 태도에 기분이 언짢았다, 사실 A안이 정답이라고는 생각이 됐지만, 자다가 갑자기 깨어서 결론을 낸데 대해 화까지 치밀었다.

회의가 끝나고 사장은 자기 방으로 막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보고 했던 차트를 옆에 끼고 사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사장님 주무시다가 일어나서 어떻게 그렇게 결론을 내리십니까?” 나는 따지듯이 대들었다. 사장은 흠칫 놀라면서 “뭐 잘 못 됐어?”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맞긴 맞았습니다만, 그래도 주무시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하고 재차 항의를 했다.

그랬더니, 이맹기 사장은 내게 우선 사장실과 비서실 사이의 문을 닫고 자신에게 가까이 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귓속말로 “이건 내 노하우야. 내가 자는 척 해야 임원들이 발언을 해. 절대 이것을 밖으로 얘기하면 안 되네. 만약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앞으로는 다시 내가 이 방법을 쓸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 탄복할 일이었다.

이맹기 사장은 이 같은 노하우를 해군참모총장 시절에 참모들과 회의를 하면서 얻었다고 귀띔해 줬다. 나는 “예, 절대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고는 사장실을 나왔다. 이맹기 회장이 운명하실 때까지 이 이야기를 발설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 대한해운공사 컨테이너선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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