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피아노 독주회

만추晩秋의 초저녁, 겨울을 재촉하는 빗방울을 맞으며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그의 아들이 건네준 초대권을 입장권으로 바꾸어 둘이서 좌석을 찾아 앉았다. 2층 왼쪽 날개에 계단마다 좌석이 둘씩 배열되어 두 사람만의 공간인양 호젓했다.

무대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랜드피아노가 가까이 내려다보였고, 2층은 물론 1층과 3층 객석이 눈에 들어왔다. 무대 뒷좌석도 마주 보였다. 관객이 객석을 드문드문 차지하다가 공연시간이 임박하니 꿀벌이 벌통을 가득 채우듯 청중 2300명이 좌석을 꽉 메웠다.

예프게니 키신의 피아노 독주회였다. 그는 1971년 10월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음악을 듣고 그 자리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천재신동이란다. 여섯 살에 그네신음악원에 입학하여 영재특수교육을 받았고 베를린, 런던, 뉴욕, 도쿄 등 세계적 무대에서 공연한 그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피아니스트 중 가장 으뜸의 연주자로 평가받는단다.

키신이 무대에 등장했다. 턱시도에 장발도 아니고 평상복에다 평상헤어스타일이었다. 조용조용히 걸어 나와 청중들과 눈을 맞추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마흔일곱의 중년이라기보다 열일곱의 수줍은 총각이 연상되었다.

피아노 앞에 앉았다. 첫 곡인 쇼팽의 야상곡은 그저 그러느니 했다.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로 넘어가자 열 손가락이 뿜어내는 감미로운 선율에 청중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몰입했다.

2부에 라흐마니노프의 열정적이고 낭만이 넘치는 음률은 청중을 환상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프로그램은 5시에 시작하여 7시에 끝나는 것으로 되었으나 청중들의 열화 같은 앙코르에 화답하여 새로운 연주가 시작되었다.

키신은 앙코르를 넉넉히 선물하는 피아니스트이라 하지만 그날은 놀랍게도 앙코르 퍼레이드가 무려 1시간 30분이나 계속되었다. 쇼팽과 브람스의 왈츠 등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청중들의 박수와 환호로 콘서트홀은 광란의 도가니이었다.

나는 오선지의 음표를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고 악기 하나 주무르지도 못하는 음맹音盲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서양음악사 강의를 흥미롭게 들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비엔나를 중심으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고전파에 뒤이어 슈베르트, 쇼팽, 슈만의 낭만파,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드보르작의 국민음악파로 이어온 서양음악역사를 어슴푸레 배웠으나 그래도 음악에 흥미를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더구나 등교할 때면 대형스피커에서 뿜어내는 경쾌한 클래식이 움츠린 마음을 활짝 펼쳐주었다. 점심시간에도 도시락을 까먹고 아카시아 동산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며 클래식을 음미했다. 클래식이 꿈 많은 고교생에게 찬란한 미래를 꿈꾸도록 했다.

대학 때는 음악과 담을 쌓았다. 사회에 나와 일본을 드나드는 분에게 부탁한 LP클래식 음반을 텔레풍겐 전축에 올려놓고 감상했다. 세상 걱정근심 다 제쳐두고 즐겼다. 지금은 나이 들어 음악공연에 가지 못하고 KBS클래식FM에 다이얼을 고정시켜두고 클래식을 듣는다.

거장 예프게니 키신의 환상적인 공연이 끝났다. 시간이 너무 늦어 초대에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졌다. 까까머리와 단발머리 고교생이 졸업한지 60년이 지나 백발이 되었는데도 우정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우정이 순수하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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