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3천미터 산 대접 못받는(?) 푼힐”

▲ 풀힐에서 일출을 맞는 사람들
10월 15일(월) 울레리-고레파니

울레리(Ulleri)의 Loge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주변 풍광을 보니 놀랍게도 안나푸르나 봉이 멀리 보이고 수겹의 깊은 계곡 사이의 산허리에 운해(雲海)의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침을 일찍 먹고 우리 일행은 오전 8시 울레리 숙소를 출발해 다음 목적지인 고레파니(Ghorepani)로 향했다. 가는 도중 여전히 자연석의 돌계단과 Horse, Pony도 보고 히말라야 계곡을 힘차게 흐르는 모습도 볼 수 있었으며 호젓한 산책길도 만났다. 마치 순례자가 된 기분으로 순간순간을 느끼면서 호흡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여전히 멀리 같은 거리로 안나푸르나 봉이 문득 문득 나타났다.

가끔씩 지나쳐 가는 포터들은 거의 25kg 무게의 무거운 짐을 노끈으로 묶는 다음 이마에 천으로 띠를 만들어 그 무게의 짐을 오로지 이마로 감당하는지 모르지만 놀랍고 신기하기만 했다. 심지어 어떤 포터들은 운동화도 아닌 슬리퍼를 신고도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도 했다. 그런데 포터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고객보다 먼저 다음 목적지에 도착한다. 가끔씩 여자 포터들도 보였는데 그 무거운 짐을 어떻게 그렇게 질 수 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받는 수고비가 일당 15불인데 과연 여행사에서 또 얼마를 수수료로 뗄 것인지 생각하니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포터들의 얘기가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는데 유럽 사람들과 달리 한국 사람들이 정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후 2시경 고레파니 숙소인 Snow View Lodge & Restaurant에 도착했다. 거의 모든 Lodge의 Dining Room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트래킹족들이 한꺼번에 모여 앉아 카드 놀이도 하고 담소도 하는데 Room은 춥고 썰렁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Dining Room에서 모여 노는 것 같았다.

특히 고레파니 숙소는 Dining Room 안에 장작불로 난로를 피워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담소도 하고 스마트폰 밧데리 충전도 했다. 그 곳에서 와아파이가 잘 터져 한국과 말레이시아 지인들과 보이스톡도 했다. 국내에서 구입한 네팔 유심카드가 그런대로 잘작동됐던 것 같다.

모든 식사는 거의 한 시간전 가이드가 주문을 받아 전달하고 예약된 식사 시간에 모여 식사를 끝마쳐야 한다. 벌써 현지 음식의 느끼한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함께 간 일행이 마침 마른 멸치 무침과 통조림 등을 가져와 조금씩 매끼마다 곁들여 먹으니 그런대로 현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레파니 숙소는 다음날 아침 일찍 기상해 일행 모두 Head Lantern을 켜고 완전 무장한 후 해발 3200미터의 푼힐(Punhill) 전망대에 올라 일출을 보기 위해 묵는 곳인 것 같다. 따라서 다음날 새벽에 기상해서 4시 출발을 위해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네팔 국화가 피는 나무

10월 16일(화) 푼힐 전망대-타다파니

푼힐 전망대 도전을 위해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새벽 4시에 도둑 고양이처럼 일어나 Head Lantern을 켜고 우리 일행 모두 모여 푼힐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동안 끝없이 펼쳐지는 오르막 돌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갑작스레 해발 3200미터로 올라가기 때문인지 호흡이 다소 가빠지기 시작하면서 새삼 고도 적응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평소와 달리 자주 쉬며 차근차근 발을 내딛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푼힐 전망대에 도달했는데 우리가 손가락 꼽을 정도로 빨리 도착한 것 같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겹겹이 껴입은 옷들을 하나하나 풀어 헤치고 상큼한 푼힐의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사위는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앞에 덩그러니 전망대가 놓여 있는데 아무도 올라가 있지 않았다. 6시경 일출이 시작된다고 해서 일찍 왔는데 전망대 좋은 자리는 확보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옷들을 풀어 헤치고 땀을 식혔는데 고산의 찬 공기 때문인지 금새 한기가 느껴져 다시 껴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망대에 우리 일행 모두가 올라가 동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떠오를 아침 해를 기다렸다. 일출은 오전 6시 20분경 동쪽 먼 산 봉오리에서 시작해 서서히 주변 설산들을 붉게 물들게 했다. 이 광경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푼힐 전망대에 오르나 보다. 일출은 다른 곳과 별반 차이가 없었으나 일출로 붉게 물든 설산은 어느 곳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장관이었다.

주변 사위가 훤해지면서 설산들의 모습이 점점 선명해졌다. 저 멀리 보이는 가장 좌측의 산이 10월 13일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한국인 등반대원 5명과 현지인 4명의 목숨을 앗아간 구루자 히말(Guruja Himal)이라고 했다. 보는 순간 기분이 묘해지면서 운명을 달리한 그 분들을 위해 짧은 기도를 했다. 이 사고 때문에 국내 아는 많은 지인들이 조심하라는 카톡 문자를 많이 보냈었다. 우리의 행선지와 너무도 멀리 떨어진 곳인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네팔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니 그저 놀란 것 같았다. 정작 우리 일행은 전혀 그러한 위험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푼힐 전망대는 해발 3210미터로 한라산 1950미터, 백두산 2744미터 보다 훨씬 높은데도 산 대접도 못 받고 언덕(Hill) 대접을 받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네팔에서는 3천미터는 고봉이 아니라 언덕인 것이다. 푼힐 전망대 주변에는 같은 높이의 언덕이 많았는데 마찬가지로 산 대접을 못 받고 있으리라… 하여튼 푼힐 전망대는 Bahadur Pun이란 사람이 개발해 Pun Hill이란 이름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Google에 올라 와 있는 많은 사람들의 푼힐 사진들을 보면 더욱 더 실감이 나리라.

푼힐 전망대를 하산해 Lodge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9시경 타다파니(Tadapani)를 향해 출발했다. 출발해서 오르막길인 자연석 돌계단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확 트인 넓은 언덕이 나왔다. 주변 경관을 보니 참으로 장관이었다. 쫙 펼쳐진 설산도 그렇고 언덕 정상 위에 티벳에서 건너 왔다는 오색 깃발(하늘, 땅, 불, 물, 바람을 표시)의 Lung-Ta(일명 Wind Horse)가 바람에 휘날리고 포터들의 쉼터와 조그마한 카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역광 때문인지 별천지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한 무리의 조랑말(Pony) 떼가 잔뜩 등에 짐을 싣고 지나가는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언덕 정상에서 바라 보는 주변 설산들의 경치는 어쩌면 푼힐 정상에서 바라 본 경치보다 낫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것은 아마 주변 설산들이 더욱 가까이 다가섬을 느껴서인지 모르겠다. 항상 새벽에는 구름이 걷혀 설산을 온전히 볼 수 있지만 기온이 오르면 구름이 형성되면서 운해(雲海)를 이루어 설산의 중턱에 걸친 상태로 흘러 온전한 눈 덮인 설산의 정상을 보여 주지는 않지만 신비로움을 자아내면서 정말 장관이었다.

언덕 정상의 포터들의 쉼터에 배낭을 내려놓고 한참을 구경하다가 다시 목적지를 향해 길을 나섰다. 갑작스레 접어든 오솔길이 나있는 산 길 주변에 마치 고생대 식물처럼 이끼와 덩굴로 뒤 덮인 그로테스크한 나무들이 숲길을 감싸고 있어서 참으로 신기했다. 이 나무들은 Laliguras라고 해서 봄에 빨간색 꽃을 피우는 데 이 꽃이 바로 네팔의 국화라고 한다. ABC까지 트래킹하는 동안 이끼와 덩굴로 덮여 겉모습으로는 수령이 수백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Laliguras 나무들을 계속 보게 됐다.

우리 일행은 점심을 먹으려고 Tranquility Guest House에 들렸다. 우리가 이곳에 찾은 것은 한국 음식이 있다고 해서였는데 마침 요리사가 한국으로 휴가를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음식을 못먹나 했는데 주인이 김치 한 접시를 내줘서 아쉬움을 달랬다.

점심을 먹고 목적지인 타다파니로 향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항상 돌계단으로 된 오르막 길과 내리막 길을 걸어 왔는데 타다파니로 가는 길은 주변 계곡 사이로 간간히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 고생대 식물원과 같은 상큼한 기운도 느껴졌다. 힘들지 않고 즐겁게 걷다 보니 어느덧 타다파니 숙소인 Tadapani Guest House에 도착했다. 그때 시간이 오후 3시 20분이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2층 온수 샤워장에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키는 작지만 다부지게 보이는 여성 네팔 여행 가이드를 만났다. 그녀는 영어가 아주 능통했는데 일본에서 Rafting Guide로 2년 근무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녀와 많은 얘기를 나누다가 내 순서가 왔다. 나는 신사도를 발휘해 그녀에게 순서를 양보했다. 그 이후 우리 일행과 그녀는 ABC 트래킹을 마치고 포카라까지 오는 동안 수차례 만나면서 친해졌다.

나이도 어려보였는데 8살짜리 아이도 있는 억척 엄마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부지고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스웨덴에서 온 부부와 동양에서 입양한 것 같은 동양계 얼굴을 가진 딸과 함께 트래킹 온 가족을 가이드하고 있었다.

타다파니에 도착해서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산중이고 계절이 가을인지 하루해가 빨리 지는 것 같았다. 타다파니는 제법 큰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고 토속품을 파는 가게와 Lodge들이 대부분이었다.

저녁이 되고 추워지니 트래킹족 모두가 약속이나 한듯이 Dining Room에 모이고 가능한 난로 옆으로 붙으려고 했다. Dining Room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가이드, 포터들이 함께 모여 카드 놀이도 하고 떠들다가 주문한 저녁 식사가 나오면 먹고 하나 둘씩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래도 신기하게 침대 위에 침낭을 펼치고 그 속에 쏙들어 가서 누우면 잠이 쉽게 온다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그리고 여행 때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출하면 만사 오케이인데 나의 경우 이 세가지를 잘 하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 푼힐 전망대에서 필자 일행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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