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현 박사(Penb46@naver.com)

▲ 윤민현 박사
1. 10년 주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우연인지 모르나 한국해운계 역시 거의 10년 간격으로 시련과 도전의 격랑을 겪어왔다.

(1) 20년전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함께 한국은 이른바 IMF 사태를 겪는다. 라이벌이자 이웃인 일본, 중국과 달리 한국해운계는 직격탄을 맞는다. IMF가 국내금융기관들에게 BIS 비율을 8.3%로 요구해오면서 한국은 금융권 주도하에 강도 높은 산업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 그 일환으로 해운업계는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축소하라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직면하게 된다. 1999년 6월 말 기준 한국해운계의 부채비율이 974%에 달했던 만큼 그 충격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산업의 특성상 차입금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해운계로서는 단시일내에 이를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결국 해운사들은 선박, 부산과 광양터미널, 자동차 전용선 등을 해외로 매각했다.

수백척의 선박이 헐값에 해외로 매각되었다가 고가로 다시 용선해오는 최악의 거래를 감수하면서도 한국해운계는 해운산업에 대한 끈을 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높은 용선료는 한동안 한국해운계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되면서 수년간 적자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당시 본격적인 성장기에 진입한 한국해운계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2) 10년전

그 후 다시 10년,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국제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한 2009년에는 은행연합의 주도하에 이번에는 2005년 이후 급격하게 확장된 한국의 조선산업을 상대로 신용평가작업을 행하고 취약한 조선소들을 선별해낸다. 우선 19개 조선소에 대해 정밀 심사를 거쳐 C&중공업은 문을 닫고 진세조선, 녹봉조선, 대한조선 등 3개 조선소는 채권단 주도하 구조조정이 진행된다. 제2라운드에서는 YS중공업, 세코중공업, TK중공업 등이 다시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해운업계도 사정은 비슷했다. 조선업계와 동일한 채권단의 주도하에 기울어져가고 있는 해운사를 선별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된다. 1차는 38개 해운사를, 2차에서는 나머지 140여개 선사를 대상으로 감별작업이 시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한때 순항했던 파크로드가 2008년 11월 도산한데 이어 해운사들이 퇴출이 이어진다.

선주협회의 회원사동향을 보면 한국해운의 흐름을 유추할 수 있다. 5년간 이어진 해운호황의 타력 탓인지 2008년 리먼 사태에도 불구, 2010년까지는 신규 회원의 가입수가 탈퇴 회원수를 앞지르는 현상이 지속되더니 2011년부터는 역전현상이 나타난다. 2016년의 경우 6개사가 신규 가입한데 비해 탈퇴 회원수는 24개사로 6배에 이른다. 결국 그 이후 오늘까지 한국해운은 리먼사태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장기침체의 늪에 갇히게 된다.

(3) 2018년

한국해운의 유아기라 할 수 있는 1965년, 이 시기는 한국이 동남아 정기항로(당시 Siam line)에 이어 1만톤급 중고선으로 뉴욕정기항로 진출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다. 당시 12만 9천gt에 불과했던 한국 상선대는 25년 후인, 1989년 783만 2천gt로 60배 이상 급성장했다(Lloyds Register of Shipping, 100톤 이상 강선, 어선포함). dwt로 환산하면 어림잡아 1천만 톤에 이른다. 2018년초 한국선단은 7728만dwt로 30년 동안 약 7배 이상 성장했다(UNCTAD).

25년중 60배, 30년중 7배 성장이라면 성장속도는 다소 둔화되었지만 그렇게 나쁜 성적표 같지는 않아 보인다. 예상대로 2018년 선복량은 전년대비 감소했고 그중 한때 세계 제 7위였던 컨테이너선은 2016년 이후 급격히 감소하여 2017년 세계 11위에서 2018년 다시 12위로, 시장 점유율은 3.0%에서 2.5%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단순한 성장세 둔화가 아니라 그 질적 측면이다.

2. 글로벌 선단의 성장과 정체

(1) 글로벌 선단
2008년에서 2018년에 이르는 최근 10년은 전 세계 해운시장 판도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 2008년 리먼 사태, 그해 10월 해운동맹제도의 폐기 그리고 이어진 소수 대형화를 향한 시장의 재편으로 시장은 강자와 약자, 간선선사(Main line)와 역내선사(regional line), 순수한 해운회사와 통합물류회사로 나누어지는 양극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물류 서비스의 수직적 통합을 추구하는 회사(머스크, CMA CGM), 컨테이너의 해상운송 그 자체에만 주력하겠다는 선사(하파그로이드, ONE)도 있다. 결국 하주의 요구를 누가 더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는가를 두고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글로벌 상위컨테이너 선사들은 22개사에서 12개사로 소수 대형화 되었는가 하면 최근 10년 동안 개별 선단의 규모는 머스크 2배, CMA CGM 2.7배, COSCO 5.7배 등 대부분 크게 성장한데 비해 동기간 한국의 컨테이너 해운의 경우 선사수는 한진해운의 파산에도 불구하고 불변상태로 동남아해운이 사라진 정도에 그쳤다.

선복량의 변화를 보면 글로벌 선복량은 10년 사이에 78.8% 증가한데 비해 한국은 겨우 7.6% 성장에 그쳤다(Alphaliner). 세계 성장속도의 1/10 수준으로 선사수와 선복량은 사실상 정체상태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경영실적이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시장은 급변하고 있는데 한국해운은 달라진 게 없는 가운데 점차 체력이 떨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선두 해운사들은 최근 10년의 침체기를 겪는 동안 모두 문패가 바뀌었다. 한진해운은 사라졌고 대한해운, 팬오션, 현대상선, SK해운 등은 주인이 달라졌다. 모두 이른바 그룹소속의 자회사(Branch arm)들이다. 키는 성장하지 못한 채 체력은 점차 쇄약해지고 있다면 무언가 진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왜 그렇게 된 건가?

(2) 외력에 취약한 시장

2018년도 해운시장은 문자 그대로 롤러 코스터에 올라탄 형국으로 2018년은 그 어느 때보다 Regulators, Politicians, lobbying and pressure group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해였으며 지정학적, 정치 공학적 리스크에 크게 노출되었던 시기다. 전반적으로 해운산업 역시 성장기를 지나 이미 완숙기에 들어가면서 시장은 저성장시대로 진입한지 오래다.

2018년 초만 하더라도 수요의 증가가 공급과 균형을 이루면서 업계에서는 조심스러운 낙관론(cautious optimism)이 대두되기도 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성장세에 대한 하향 조정이 이어졌다. WTO는 무역성장률을 2018년 3.9%에서 2019년에는 3.7%로 둔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미중 무역전쟁의 타결여부와 무관하게 시장의 큰 흐름을 조망한 것이다.

성수기에 접어든 3/4분기 물량증가에 더하여 중국의 밀어내기(front-loading)까지 겹치면서 태평양 동향(E/B) 물량이 대폭 증가했지만 10월 이후 다시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90일 정전으로 밀어내기가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은 하지만 이미 충분히 확보된 재고량이 소진되기까지는 밀어내기 물량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장의 수급관계가 단순히 선주의 선복발주 의지와 시장의 수요에 기초한 선주와 하주들의 자정기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점차 커지고 있다. 과거와 같은 7~8%대 고성장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최근의 통계에서 보여주듯이 최근 시장에서 보여준 3~4%대 수요증가가 정상인 것이다.

이처럼 톤 마일수요 증가가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자국우선주의를 표방하는 보호주의의 확산, 미·중간 무역전쟁, 영국의 EU 탈퇴 후유증에 이어 유가 상승과 OPEC의 감산, 각종규제 등으로 운항비용을 증가시키는 요인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국제경제가 금년보다 더 저조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2019년 초부터는 물량둔화와 비수기까지 겹치게 되면서 2/4분기 이후의 시장은 다시 예측불허의 상태가 될 것이다.

(3) 거대한 규제비용

성장둔화에 더하여 2019년부터는 각종 환경규제의 영향이 시장에서 가시화 될 전망이다. Sulphur 2020 때문에 한동안 수면하에 있었던 BWT 협약이 내년 9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가고 해운계는 2019년 하반기부터 Sulphur 2020에 대비한 신 연료 확보에 나서야 한다. 상위선사들의 2018년 실적도 일부만 운항이익을 시현했을 뿐 대부분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Sulphur 2020으로 인한 추가부담이 정기선 업계만 해도 1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2019년에도 시황회복에 걸림돌이 되는 부정적 요소들은 개선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가운데 Sulphur 2020, BWT 협약, Decarbonisation 2050 등 환경규제들이 선주들의 어께를 한층 더 무겁게 할 것이다.

논리적으로 접근하자면 규제로 인한 추가비용은 해운원가임으로 운임에 반영되어야 하며 하주를 거쳐 최종소비자의 부담으로 귀착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하주들의 시각(주장)은 다르다. 즉 해운시장의 운임은 원가이론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수급균형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추가될 규제비용의 분담을 거절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향후 시장에 큰 충격을 초래할 수 있다.

비용측면과는 별개로 대체연료로 거론되고 있는 0.5% 저유황유 마저 불안전하고 불안정한(unsafe & unstable) 연료로서 선박과 선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하는가 하면 유류비 절감을 강조하고 있는 Scrubber 역시 검증되지 않은 상태로 일부 국가에서는 항내에서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그러한 조치가 확산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환경규제에 내재해 있는 이런 저런 불확실하고 불안한 요소들이 남은 12개월 동안 완전 제거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선사들은 과거 급유업체와 급유항 그리고 가격만을 관리해왔지만 앞으로는 리스크 관리차원에서 정유업계, 급유업체뿐 아니라 선급, 엔진 제작사, 연료 전문가들과 긴밀한 소통과 파트너십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된 것이다.

Sulphur Cap 2020에 더하여 척당 1백~2백만 불에 이르는 평형수 처리시스템 설치 문제까지 겹치다보면 노후선박을 소유한 선주들은 선박을 퇴출시키거나 척당 수백만 달러를 투입해서 연명시킬 것인지를 두고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최대 20%에 달하는 선복이 퇴출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공급과잉에 허덕이는 시장에 호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 일각에서 2010년 1월 1일을 해운계의 장래를 결정하는 판결일(judgement day)이 될 것이라고 까지 표현하고 있다.

(4) 중국의 꿈(中國夢)

10여년전만 하더라도 중국은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최근 수년 사이에 중국은 막강한 정책 지원하에 금융, 조선 해운을 주축으로 한 ‘주식회사 중국(China Inc)’이라 이름하에 크고 강한 중국해운을 목표로 급성장하고 있다. 중국의 Exim Bank는 수년전부터 세계 제1위의 선박금융기관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2018년 현재 총 170억 달러의 선박금융실적으로 갖고 있다.

COSCO와 China Merchant Group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VLCC 100척, Capesize 100척 등을 포함 1,600여척의 거대 선단을 구축하고 있으며 전세계 30개국의 80개 항만에 진출해있다. 2년전 이루어진 COSCO Group과 China Shipping Group의 통합으로 이미 세계 최대 Dry bulk 선사와 Tanker 선사가 되었으며 컨테이너 시장에서는 OOCL을 흡수하여 세계 제 3위 선사로 부상했다.

세계 1위와 2위 선사인 머스크라인과 MSC의 방어 전략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세계 제1위 컨테이너해운국가가 될 것이며 세계 해운시장을 주도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리스가 여전히 세계 최대 해운국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가운데 아직까지는 중국이 시장을 선도할 위치에 있지는 못하지만 시장의 변화와 흐름에 적응하는 속도는 자본주의국가들을 앞서고 있다는 것이 중국에 진출해 있는 유럽의 대표선사들의 한결같은 평가이고 보면 중국은 느리고 비효율적일 것이라는 편견은 이제는 접어야 한다.

한중간의 해운관계 역시 중국의 정책에 의해 크게 좌우될 만큼 양국간의 협상 무대는 이미 중국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중국의 주된 관심사가 동서간 간선항로이고 그 주변에 산재해 있는 국가를 상대로 한 인프라 구축에 주력하다 보니 한중항로문제는 당분간 주된 관심밖에 있을 뿐이다. 중국의 최대 정치 아젠다 중 하나인 일대일로의 향방과 카보타지 정책의 변화에 따라 한국 근해선사들과 부산항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3. Shipping 4.0 시대

장래 해운시장에서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핵심요소는 고객 만족도와 비용절감이라는 인식하에 선두주자들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첨단과학의 적용을 서두르고 있다. 신기술은 블록체인, 사물인터넷(IoT), AI 등 다면화되어 있고 이들은 모두 물류공급망의 흐름을 단축하고 시간을 절약하여 결국 국제무역을 활성화하고 물류코스트를 절감하기 위한 것이다. 선두주자들은 door to door 서비스를 원하는 하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신기술과 수직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디지털화 가동, Smart 경영, Clean 경영이다. 만일 해운계가 3D, 가상현실(virtual reality), AI, 로봇 등 신기술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경우 시장을 해외 경쟁자들에게 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더 안전하고 더 친환경적이며, 더 선진화하고 더 스마트화 하지 않으면 각종 도전에서 밀려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기술 그자체가 아니라 이들을 수용하려는 선사들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이와 같은 조짐은 하주들의 영향력(power)이 커지면서 이미 눈앞에서 나타나고 있다. Alibaba, Amazone과 같은 Online 도소매업체들이 글로벌 공급체인을 개선하려 하거나 필요시 소유도 할 수 있다는 야심을 공개리에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기존의 해운사들에게 공급망의 효율을 제고할 것을 요구하며 불연일 경우 자신들이 직접 공급망 인프라를 운영할 수 있다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만성적인 공급과잉과 저수익으로 해상운송 자체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첨단 과학이 컨테이너 해운에 도입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시장이 탈바꿈되는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변모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시장의 통합은 해운회사에서 그치지 않고 NOO, 선박관리회사, Forwarder, Broker는 물론 법무법인들도 합병하고 있다. 이유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서비스 개선과 원가 절감이며 그 수단이 디지털 등 첨단과학이다. 생존을 위해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컨테이너 해운계 역시 전술, 전략적 도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공급과잉과 서비스의 차별화가 어려운 상품화된 시장에서 흑자 경영체제를 유지하지 못하면 존립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투명화된 시장에서 더 이상 나만의 매직(magic)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은 이미 투명해졌고 시황과 경영실적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공개리에 바로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면,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과도한 자신감은 자칫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디지털화, 자동화가 비즈니스 방식을 바꿀 것은 틀림없고 생존을 위해서 이에 적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기술 그 자체가 특정회사의 판도를 바꿀 만큼 핵심변수(key game changer)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기술이 해답이었다면 그 기술은 수년전부터 우리 주변에 와 있었고 선두주자들은 이미 그것을 적용하고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타이밍이고 걸림돌(impediment)은 사고(思考)의 과정을 바꾸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리더십이다.

해운이 국제무역시장을 주도한다거나 과학의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시장을 따라가고 순응해야 한다. 흐름에 역행 하다보면, 규제 등을 통한 기득권 옹호에만 집착하게 되고 어느 날 안방 시장을 해외경쟁자들에게 내어주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시장은 빠른 속도로 고효율, 친환경, 저원가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매년 수십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인도 혹은 예정으로 되어 있다. 고효율, 연료절감형, 자동화를 통한 원가 절감은 그 자체가 한 번의 효과(one-off gains)로 끝나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경쟁력 제고 목적으로는 부족하다. 경쟁상대도 쉽게 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한국의 해운환경

최근 한진해운사태 이후 나타난 몇 가지 현상중 친 여의도 전략, 특정 지역을 지지하는 지역주의와 비해운단체가 해운활동에 개입하는 현상이 가시화 되고 있다. 정치공학이, 지역주의가, 비해운단체가 기진맥진 상태인 한국해운의 재건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현재 한국 해운(정기)의 현황은 한마디로 자력으로 재기할 능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독자적으로 경쟁력을 구축할만한 동력이 있는지(No dynamic at all), 다른 대안(선택)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No choice & Option)에서 정부 역시 과거와 달리 강한 채찍도 당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해운의 재건을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어떻게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다.

한국해운의 재건 방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선하주 상생이고 해운조선의 동반성장으로 3년전이나 지금이나 한결 같이 반복되고 있는 주요 대안이다. 해운업계가 선박을 다량 발주하면 조선업계에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해운업계가 공급과잉으로 시달리고 있을 때 과잉해소 차원에서 조선업계가 수주 활동을 중단하면 어떨까? 해운을 지원하기 위한 확실한 대책이 될지 모르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

국제무대에서 경쟁해야 하는 하주들의 최우선 관심사는 원하는 시기에 빨리 그리고 안전하게 상품을 도착시키는 것, 즉 서비스의 질이며 해상운임은 핵심 관심사 밖이다. 특히 컨테이너 정기선 화물의 경우 운임이 상품가격에서 점하는 비율은 1% 미만이다. 서비스 질의 차이를 운임으로 상쇄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며 하주들이 원하는 것도 아닐 뿐 아니라 싼 운임은 곧 해당 선사의 경영에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는 선·하주간 신뢰의 문제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국내에서 선하주 상생이 수년전부터 강조되어온 만큼 지금쯤은 어떤 가시적인 성과물이 나와야 마땅한데 과연 그랬는가? 실현 가능성이 있고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대안 수립에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면 어떨지…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냉철한 상황인식(Situation awareness)이며 가능하면 보수적이고 신중한 인식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세계 경제회복에 대한 근거없는 낙관론이나 언젠가는 좋아질 것이라는 맹목적인 주기설도 위험하지만 더욱 더 경계해야 할 일은 나만의 비법이나 나는 예외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불확실한 요소들 : 밑도 끝도 없는 하주들의 운임 인하 요구에 선사들은 마른 수건이라도 짜내야 하는 실정이다. Pocket에서 나가는 현찰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절차와 시간을 줄여서 비용절감효과를 얻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확실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향후 해운시장에 대처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기에도 한계가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무엇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것인가 몇 가지만 열거해보자.

- 소수 대형화를 향한 통합이 언제 어디까지 진전될 것인지?
- 일부 예언처럼 글로벌 시장이 3~4개 대형 선사 지배체제로 바뀔 것이라면 그 구도는?
- Liner Oligopoly(독과점)하에서 인트라 아시아 항로는 어떻게 될지?
- 미·중간 무역전쟁의 전망과 그 결과가 글로벌 해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한 중국의 팽창 전략이 해운 특히 한국해운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
- Sulphur Cap과 BWT 협약이 해운시장에 독이 될지 약이 될지?
- 150억불 이상으로 예상되는 유가상승과 규제비용을 하주들에게 어느 정도 전가 가능할지?
- 한진 사태로 실추된 국제시장의 신뢰를 2019년에는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지?
- 극심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해운에 대한 정책지원의 규모, 시기 그리고 그 방법은?

5. 결언

11월 초 모공사 주최로 부산에서 국내·외 유명인사들을 초청하여 해운시장의 전망과 한국해운의 현황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한 연사는 한국정부의 공약사항까지 언급하며 정부 정책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는가 하면 이어 11월 말경에는 국내 중앙일간지가 3면을 할애하여 흔들리고 있는 한국해운의 미래에 대하여 심층보도를 한 바 있었다. 세부 내용은 접어두더라도 국내·외에서 유사한 톤(tone)과 수위(level)로 한국해운정책에 대해 쓴 소리를 한 만큼 적어도 책임있는 해명이나 반박 정도는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직 그런 일은 없는 것 같다. 쓴 소리에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한진 사태에 대한 세계 반응은 냉정했다. 운용자금과 유동성(working capital & equity)이 고갈된 회사가 한 둘이 아닌 상황 하에서 예견되었던 Counter-party Risk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며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한진 사태는 처리가 잘못되었을 뿐 일어날 것이 일어난 것뿐이라는 것이었다(Lloyds list Sept. 29, 2016).

고객들의 최대 관심사는 서비스의 질(quality)과 가격, 그리고 지속가능성 즉 해당선사의 재정안정성이다. 과거 하주들의 관심 밖이었던 해운회사의 지속가능성 여부는 글로벌 시장이 한진해운 사태를 통해 값비싼 대가를 치루며 얻어낸 교훈임을 감안할 때 2016년 당시 세계의 반응과 2018년 현재 한국해운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지속가능성에 대한 신뢰도 차원에서 별로 개선된 것이 없다면 한국해운계는 긴장 속에 2019년의 상황을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시장 환경하에서 글로벌 선사 모두가 각자의 활로를 찾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고 있다. 불확실한 요소들이 단시일내에 사라질까? 한국 해운은 지금 어디 쯤 가고 있는가? 한국해운이 일년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2018년은 한국해운의 현 위치와 경쟁력의 실상을 확인하는 한해였다면 2019년은 Few winner, More loser로 재편되는 한해가 될지 모른다. 모두 다 살려하다가 다 잃을 수도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지 않으면 인수합병에 휘말리거나 시장에서 철수 혹은 파산 등에 내몰릴 수 있다. 사업구조의 획기적 개편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조건일 수 있다.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한국해운의 위기는 선언적 수사적 접근보다는 시장논리로 진단하고 엄중하고도 당국자의 체중을 실은 정치논리로 해법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칫 제2의 한진해운 사태(another Hanjin)를 초래하게 될 경우 한국해운은 재생불능의 치명상을 입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해운의 재건을 위해서 2019년에는 달라져야 한다!!(2018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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