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 진단 받고 제주도서 전원생활
그해 7월말 우연히 위암진단을 받게 됐고, 그 며칠 후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때 내 나이 71세였다.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꼼짝없이 죽는가보다 생각하고 항암 치료도 포기하고 곧바로 제주도에 내려 와서 휴양 세월을 보냈다. 그런 세월이 벌써 13년이 훌쩍 넘었으니 이제 암은 극복이 됐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처음에 삼성의료원에서 위암 진단을 받고도 나는 사실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말기 암이라는 얘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생각했다.
암 진단을 받은 바로 다음날 나는 아들들이 차려주는 칠순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발하도록 되어 있었다. 옐로우스톤에다가 방을 잡아놓고, 거기에 아들 삼형제가 다 모이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당장 내일이면 미국으로 떠나야 하는데 아내도 아이들도 칠순 잔치는 포기하고 가능하면 빨리 수술을 받으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삼성병원은 수술하려면 두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며 세브란스병원 부원장까지 지낸 김일순 박사에게 전화를 했다. 그에게 내가 암에 걸렸다는 것과 삼성병원에서의 수술 지연 얘기를 했더니 금방 일산의 ‘서울 암센터’ 박재출 원장에게 가보라는 것이다.
박재출 원장은 암센터에서 새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나의 위암 상태를 자세히 설명해 줬다. 사진을 보니 암이 커져서 송곳처럼 길 다란 부분이 위벽을 뚫고 나온 상태였다. 그 때 비로소 나의 암이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원장은 말기 암이기 때문에 하루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서둘러 입원을 하고, 그 다음주 월요일인 8월 8일 수술을 받았다.
“재산, 사원과 사회에 환원” 유서 작성
8월 5일 금요일에 입원을 하고 나서 가만 생각해 보니 월요일에 수술하다가 잘못될 경우 내가 사망할 수도 있는데, 그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해놓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특히 내가 사라질 경우 회사 경영에 혼란이 오고, 나의 재산에 대한 상속 문제 등으로 다툼이 생길 수도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유서를 써놓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에 자식들에게 내 재산의 3분의 1을 주고, 나머지는 사회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얘기를 해왔는데, 유서없이 그냥 죽게 되면 이런 것이 모두 헛소리가 된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8월 6일 토요일에 몰래 병원을 빠져나와 회사로 갔다.
물론 토요일이라 회사에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유서를 공증을 받을 수 있는데도 없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 회사 옆 변호사 사무실에는 사무장이 출근해 잔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에게 부탁하면 되겠다 싶어서 나는 혼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유서를 써내려갔다. 아주 장문의 유서를 생각나는 대로 쓴 다음, 사인을 하고 봉인까지 했다.
그리고 평소 안면이 있는 옆 사무실 변호사 앞으로 편지도 하나 써서 "만약에 내가 잘못되어 죽거든 직원들과 가족들을 전부 모이게 해 이 유서를 공개해 달라"고 적었다. 또한 “만약에 내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유서의 내용을 확인하지 말고 그대로 나에게 다시 돌려 달라”는 내용도 덧붙였다.
그런데 다행히 내가 살아 돌아왔고 그 유서는 되돌려 받게 됐다. 여하튼 월요일에 있었던 나의 암 수술은 시간이 좀 많이 걸렸지만 성공적으로 끝났다.
<다음호에 계속>
한국해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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