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글램핑 멋진 추억으로 남아

10월 17일(수) 타다파니-촘롱

여느 때처럼 일찍 일어나 히말라야의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멀리 성스럽게 펼쳐져 있는 설산을 감상하며 아침을 시작했다.

오전 7시경 어제 저녁에 미리 주문해 둔 아침 식사를 먹고 어김없이 8시쯤 다음 목적지인 촘롱(Chhomrong)을 향해 출발했다.

타다파니에서 촘롱 가는 길은 그야말로 깊은 산 계곡 하나를 넘어가는 길고 긴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가는 것 같은데 가다 보면 뜻밖의 물소 떼도 만나고 간간히 있는 마을 가게를 만나는데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다마스데이(현지 인사말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면서 요구하는 것이 초콜릿이었다.

트래킹 도중 두 갈래 길을 만나 머뭇거리고 있는데 마을 어느 집 담벼락에 걸터앉아 아이들이 "Up, Up, Up!"을 외쳐 댔다. 물론 윗길로 올라오라는 뜻이었다. 그리고서 요구한 것이 초콜릿이었다. 다행히 배낭에 초콜릿과 사탕을 담아 갖고 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주면서 그 아이들과 잠시 잠깐 눈인사를 나누곤 했었다.

트래킹중 어느 마을 초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나무로 바람개비 모양의 활차를 만들어 트래킹족들에게 일정 금액을 초등학교에 기부해 달라며 탈 것을 권하고 있었다. 유달리 서양인들은 거의 대부분 호기심 때문인지 주저함 없이 타면서 현지 아이들과 천진난만하게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촘롱 가는 길에 본 바람개비 모양의 활차.

내리막길에서 설산에서 녹아 흐르는 깊은 계곡 사이로 긴 출렁 다리가 나타나 다리를 건너면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김없이 다리를 건너니 또 다른 오르막이 나타났다. 그러나 깊은 산속의 오솔길을 걷기 때문에 힘들다는 느낌보다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에 사로 잡혀 그저 가다 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또한 중간에 점심을 1시간 정도 먹고 약 2시간 정도 더 트래킹 하면 목적지에 보통 오후 3시에서 3시반경 도착하는 일정으로 짜져 있기 때문에 편하게 하루에 4시간반에서 5시간 정도 트래킹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트래킹이 많이 단순해지고 앞으로 펼쳐질 세계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마냥 설레임이 일었던 것 같다. 마치 대학교 학창 시절 지리산 종주하던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리산의 웅장함과 네팔의 산세가 비슷해서인지 모르지만…

트래킹중 하신 길에 60대 후반이나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유럽인을 만났다. 아스토니아에서 온 분들이었는데 남편은 네팔 트래킹이 3번째로 특별히 가이드나 포터없이 부부가 적당량의 짐을 각자 메고 트래킹을 하는 중이었다. 금년 봄에 한국에도 한번 들렀다고 하는데 두 부부만의 트래킹이 사뭇 보기 좋아 보였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무렵 한 중학교가 갑자기 눈앞에 들어왔다. 정문이 잠겨있고 학교 교정에 적막감이 감돌아 막연한 생각으로 학생수가 부족해 문을 닫았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가 트래킹하던 2주간 힌두교 큰 축제 기간이어서 휴교중이란 것을 알게 됐다. 어쨌거나 높은 산 속에 중학교가 있는지 참으로 신기했다.

촘롱 숙소에 도착하니 젊은 부부인지 애인 사이인지 모를 유럽인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답했다. 남자는 이마가 훤하게 벗어지고 구렛나루 수염이 많아 나이가 제법 들어보였는데 실제는 30대 초반이고 공항 출입국관리소에 근무하는데 한달동안 휴가를 받아 그네팔 트래킹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젊은 남녀는 아주 쾌활했다. 나중에 저녁 무렵 우리 일행이 마을에서 구입한 네팔 막걸리와 그 젊은 친구가 Lodge에서 주문한 독한 현지 술 한잔씩을 나눠 마셨다. 네팔식 현지 막걸리는 우리나라 막걸리와 맛이 비슷했는데 네팔의 그 독주는 마시다 포기할 정도로 맛이 별로 없었다.

저녁을 먹고 다음 날 우리 일행중 남자들은 ABC까지 트래킹을 하고 사모님들은 촘롱에서 포카라로 바로 하산하기로 했기 때문에 Cargo Bag을 새로이 정리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 촘롱 숙소에서 만난 네덜란드 남녀와 필자

10월 18일(목) 시누와-뱀부-도반

아침 일찍 일어나 주변 풍광을 보니 설산이 Lodge를 품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느꼈다. 그 후 서서히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설산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는데 참으로 장관이었다. Dinning Room의 뒷문을 열고 참으로 오래 동안 얼이 빠져 아침 해에 붉게 물든 설산을 바라보니 뭔가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

아침을 먹고 일행중 먼저 남자 두사람만 가이드 1명, 포터 1명과 함께 다음 목적지인 도반(Dovan)을 향해 오전 8시경 출발하고 두 사모님들은 두명의 포터들과 함께 포카라를 향해 하산했다.

트래킹 코스는 하루 전날처럼 내리막 돌길과 오르막 돌길 그리고 호젓한 산길 등도 지나고 중간에 짐을 잔뜩 실은 조랑말도 만났지만 촘롱을 출발해서 정말 길고 긴 가파른 내리막 돌길을 내려갔다. 나중 ABC를 들러 돌아올 때 상당히 애를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막 길 중간에 트래킹족들의 Check Point가 있어 입산 신고를 가이드가 했었다.

트래킹 중 계곡을 건너기 위해 긴 다리도 지나지만 간혹 눈앞에 펼쳐지는 설산의 모습 때문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곤 했다. 호젓한 산길을 지날 때는 기기묘묘하게 생긴 네팔 국화가 피는 Laliguras 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나타나고 오고 가는 트래킹 족들을 만나면 상호 반갑게 '다마스데이!'를 외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촘롱에서 부터는 오고 가는 한국인 트래킹족들을 자주 만났다.

가아드 설명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휴가 기간이 짧아 푼힐을 들르지 못하고 포카라에서 촘롱을 지나 바로 ABC로 가는 짧은 코스를 택하기 때문에 촘롱에서부터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시누와(Sinuwa)에 11시 20분경 도착해서 이른 점심을 먹고 한 시간 정도 휴식을 한 후 목적지인 도반을 향해 가는데 거의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 뱀부(Bamboo, 해발 2145미터)라는 곳을 지났다. 그 곳부터는 대나무가 많이 보여서 지역 지명이 뱀부가 됐나 보다.

▲ 더반의 숙소에서 춤추며 놀고 있는 트랙킹족들

오후 3시 10분경 드디어 목적지인 도반의 Lodge에 도착했는데 남은 숙소가 겨우 비집고 들어갈 정도의 작은 더블룸 하나 밖에 없다는 가이드의 말에 크게 낙담했다. 어떻게 다른 대안을 강구해 달라고 요구했더니 10월과 11월은 시즌이라 이해해 달라고 오히려 우리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밖에 텐트가 하나 남아 있다는 말을 흘렸다. 마음이 썩 내킨 건 아니지만 그래도 텐트 내부 상황을 어떤지 가봤더니 의외로 넓고 매트리스도 두꺼워 두 사람이 충분히 침낭을 깔고 잘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에게 좁은 방에서 자느니 텐트에서 하루 밤 정도 글램핑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 분도 텐트 안을 보더니 흔쾌히 좋다고 해서 하루 밤을 뜻하지 않게 글램핑을 하게 됐다.

Dinning Room에서 많은 외국인 트래킹족들이 저녁을 먹고 흥겹게 춤을 추고 노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보슬 보슬 내리는 밤비를 맞으며 텐트 안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날 밤 글램핑은 계곡의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가 좋았고 약하게 뿌리는 밤비 소리도 너무 좋아서 트래킹 중 잊을 수 없는 멋진 추억으로 남았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글램핑이 유행이어서 언젠가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뜻하지 않게 외국에서 첫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 뜻하지 않게 더반에서 처음 경험한 글램핑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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