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여행중 한국해양대 후배와 조우

11시 30분경 ABC 숙소에 도착해서 주변 풍광을 보니 많은 한국 산악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후춘리봉, 안나프르나 사우스, 안나프르나 1봉이 ABC를 감싸고 있고 바로 앞에 Holy Mountain인 마차푸차레봉의 중턱이 구름에 가려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풍광에 압도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ABC는 정말 Lodge가 몇 개 되지 않아 우리의 잠자리는 침대가 열개 정도 놓인 막사 같은 곳이었다. 더군다나 그 숙소 바로 옆에 헬기가 뜨고 내리는 Heliport도 있었다. 열악한 환경을 감안해야하기 때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무튼 숙소에 여장을 풀고 점심을 먹기 위해 Dinning Room에 들어 갔더니 이미 수많은 트래킹족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Dinning Room에는 그동안 거쳐 간 수많은 트래킹족들이 그들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증명사진을 주변 벽과 기둥에 붙여 놓았다. 필자도 흔적을 남기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가는 왼쪽 문설주 한 가운데 증명사진을 붙였다. 사진을 붙이라고 풀까지 준비해 둔 것이 재미있었다.

▲ ABC 숙소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해양대학교 후배(김민규 68기)
점심을 주문하고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Dinning Room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살피다가 우연히 두 사람의 한국인을 만났다. 두 사람 모두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나이 드신 분은 인천의 학교에서 수학 교사를 하다가 조기에 은퇴하고 오신 분이고 한 사람은 젊은 친구인데 얘기를 하다 보니 한국해양대학교 후배였다. 이 후배는 6개월째 여행 중이라고 하는데 인도 여행을 마친 후 네팔로 건너 와 Annapuruna Circuit(네팔 둘레길)을 트래킹하고 다시 ABC를 도전한다고 했다. 이국 땅에서 그것도 ABC라는 특수 환경에서 젊은 후배를 만나니 무척 반가웠고 참으로 가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해군 ROTC 후배라 더욱 공감대가 커졌다.

수학 선생님은 포터 한명만 대동하고 있었고 후배는 가이드나 포터없이 혼자서 트래킹을 하고 있었다. 네팔의 제2 도시이자 휴양지인 포카라에서 식당과 Lodge를 하는 Windfall의 여자 사장님이 네팔에서 트래킹에 대한 세세한 안내를 해주고 심지어 트래킹 장비도 공짜로 빌려 준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다가 포카라에 가면 꼭 Windfall을 한번 방문해 봐야겠다는 생각했다. 그리고 후배가 들려 준 얘기중 포카라에서 반드시 페러글라이딩를 타 보라고 강추를 했다. 포카라는 세계 3대 페러글라이딩 명소이고 그 어느 곳보다 저렴하며 파일럿과 함께 타기 때문에 절대 안전하다는 얘기였다.

우리는 이 정보에 적극 반응해 포카라에 내려가면 반드시 타 보겠다고 다짐했다. 다음날 하산 길 Lodge에서 같은 방에 묵은 경기도 안산에서 사시는 분도 Windfall 얘기를 하면서 ABC 트래킹 전 너무 한국 음식이 그리워 멸치 볶음을 좀 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그 여자 사장님이 해 줘서 가져 왔다고 하니 더더욱 궁금해졌다. Windfall이란 바람에 날려 우연히 자기 앞에 떨어진 횡재라는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정보가 진정한 Windfall이 아닌가 싶었다.

▲ 히말라야 한국 산악인 추모비

ABC의 Lodge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히말리야 산들을 등반 하시다가 유명을 달리하신 여섯 분의 한국인들(박영석 대장외 2명, 지현옥 여성 산악인, 그리고 다른 두 분)의 추모비가 있다고 해서 눈이 내리는 가운데 그 곳을 찾았다. 눈이 오는 추운 날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추모비 앞에 서서 그 분들을 추모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산에서 굴러 내려 왔을 암석과 안나푸르나의 깊은 계곡을 따라 과거에는 빙하가 흘러내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 탓인지 천길 단애(斷崖)의 마른 깊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 천길 단애가 매년 ABC의 Lodge쪽으로 점점 확대되어 간다고 하니 먼 훗날 ABC의 Lodge마저 사라질지 모르겠다.

네팔의 모든 Lodge에는 우리나라의 신라면을 팔고 있는데 한 그릇에 우리 돈으로 5천원 정도 받고 있었다. ABC에서 대학 후배가 저녁 식사를 할 때 따뜻한 물만 주문해서 한국에서 가져 온 신라면 봉지 채 그릇을 만들어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데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배를 위해 다른 음식도 추가로 하나 시켜줬는데 여행 중 경비를 줄이기 위해 생존 모드로 지내다 새로운 음식을 보더니 너무도 맛있게 먹었다.

어쩌면 네팔 트래킹시 현지 음식이 맞지 않은 분들은 아침은 과일 오트밀 죽(Oat Porridge)에 튜브 고추장을 뿌려 먹고 점심과 저녁은 한국에서 햇반, 김치통조림, 깻잎 통조림, 멸치 볶음 등을 갖고 가면 식사에 관한한 만사 오케이일 것 같았다. 우리는 아침에 오트밀 죽, 점심과 저녁에는 스파케티와 야채 샐러드를 시켜 케첩을 뿌려 먹었더니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그리고 트래킹 중간 중간 원기 회복을 위해 쉬는 Lodge에서 '생강 마살라 티'를 시켜 마셨다.

ABC에서 본 특이한 장면은 수시로 헬기의 이착륙이 이루어지는데 고산병으로 힘드신 분들 보다 연세가 드셔서 하산 길이 걱정되는 분들이 헬기를 부르는 것 같았다. 헬기를 한번 부르는데 약 1600 달러 정도 든다고 한다. 비용은 타는 사람들이 1/N로 나누어 낸다고 하는데 신기했다. 그리고 트래킹은 하지 않고 순수하게 헬기로 히말라야 투어를 하는 여행 프로그램도 있다고 한다. Lodge에 붙어있는 수많은 여행사들의 스티커를 보면 다양한 Activity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네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BC에서도 MBC와 마찬가지로 너무 추워서 샤워는 물론 세수하는 것도 포기했다. 결국 네팔 트래킹중 세수와 샤워를 포기하고 칫솔질밖에 할 수 없는 곳이 MBC와 ABC인 것 같았다.

▲ ABC 숙소에서 본 헬기

10월 21일(일)-히말랴야 Lodge

열명 정도가 막사 같은 곳에서 함께 잠을 잤는데 다행히 코를 고는 사람이 없어 그런대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불편한 것은 자다가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일이었다. 밤중에 일어나 다른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극도의 조심성을 갖고 랜턴을 갖고 나와야 했다.

밖으로 나와 보니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고 하늘은 정말 맑아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에서 카시오페아와 견우성(Altair)과 직녀성(Vega) 그리고 북극성이 눈에 확 들어왔다. 얼마만에 보는 또렷한 별인가! 주변이 정적에 쌓여 백색의 은세계를 이루고 별 빛 빛나는 밤의 주변 설산의 모습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새벽이 되니 밖이 웅성웅성 해서 나와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기다리며 설산의 정상이 붉게 물드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솟고 설산 정상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붉게 물들어 한 순간 아름다웠는데 나는 온 산이 햇볕에 드러나 하얀 속살을 드러낼 때 오히려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의 히말라야 설산은 정말 성스럽기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8시경 목적지인 히말라야를 향해 출발했다. 이틀 동안 쌓인 눈 때문에 하산 길이 미끄러워 걱정을 했는데 함께 간 분이 짚신형 아이젠을 준비해 와서 한짝씩 나눠 차고 내려오니 한결 수월했다. 내려올 때 MBC를 거쳐 내려 왔는데 한참 내려 올 때까지도 잔설이 있었다.

거의 오후 3시경 목적지인 히말랴야 Lodge에 도착해 모처럼만에 뜨거운 물로 Hot Shower (Gas 순간 온수기로 작동)를 했더니 한결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뿔사 Lodge의 충전기가 고장나서 스마트폰 배터리 충전이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눈치가 빠른 대학 후배가 인근 Lodge에 가서 잘 협상해 한번 충전에 100루피(1천원 정도) 지불하고 다음 날까지 충전할 수 있었다.

Dinning Room에서 저녁을 기다리는 동안 후배는 영국에서 온 여성들에게 이스라엘 카드놀이를 가르쳐 주고 카드놀이 삼매경에 빠졌다. 우리는 같은 방에 묵게 된 안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시다가 명예퇴직 후 57세의 나이에 혼자 오신 분을 만나 Windfall 얘기를 후배에 이어 또한번 들었다. 그 분이 Windfall사장이 만들어 준 것이라면서 내 놓은 멸치 볶음에 저녁을 맛있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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