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실은 태광산업 AN 500톤

▲ 박종규 회장
제1케미캐리호를 부산항에 끌어다 놓았지만 실어 날라야 할 화물을 찾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석유화학 제품을 수입하는 회사는 한일합섬, 태광산업, 한남화학 등 몇 개사에 불과했다. 이들이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회사가 안정적으로 화물을 수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줄 리 만무했다. 제1케미캐리호는 500톤도 안 되는 작은 선박인데, 혹시 잘못되면 원료를 제때에 공급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하주들은 갖고 있었다.

우리들은 제1캐미캐리호가 최신예 선박이고 이미 일본 내항을 뛰면서 AN(아크릴로나이트릴 ; 합성섬유‧고무 원료), SM(스틸렌 모노머 ; 합성수지) 등 케미컬화물을 수송했던 경험이 있다는 점을 하주들에게 어필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제1케미캐리호가 우리나라 최초의 케미컬 탱커이므로 선장과 해기사들을 엄격한 심사를 거쳐 뽑았으며 훈련을 철저하게 시키고 있다는 점도 홍보했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태광산업이 미개척 분야를 개척해 가는 우리들의 계획과 성실성을 믿어준 것이다. 태광산업이 제일 먼저 화물수송 계약의 물꼬를 터 준 것이다. 태광측이 제시한 첫 과제는 AN 500톤을 일본 스미토모화학 공장에서 울산항까지 싣고 오는 것이었다. 부산항에서 이제나 저제나 출항을 기다리던 제1케미캐리호는 8월말, 오사카항을 향해 힘차게 출항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적 선박이 선박 검사가 까다로운 일본에서 특수한 화물을 싣고 돌아오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더구나 일본 선박들이 실어 나르던 화물을 한국 선박이 실어 오겠다고 하니 호락호락 넘겨줄 리가 만무했다. 스미토모화학측이 지정한 검사관은 화물을 싣기 전에 하도록 돼 있는 화물탱크 검사에서 몇 번이고 불합격 판정을 했다. 탱크내 청소를 여러 번 반복했지만, 그는 계속 불합격 판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분명 우리가 화물을 싣지 못하도록 고의로 방해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일본 검사관의 방해로 출항 지연되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태광산업이 수입하는 화물을 실어오던 일본 배가 오사카 외항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우리 배에 화물을 선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 계속 화물탱크 검사를 불합격 시켰던 것으로 짐작된다.

나는 선주측의 검정기관으로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유명회사를 지정해 검사를 다시 진행했고, 그 회사로부터는 당당히 합격 판정을 받아냈다. 하지만 하주를 대리한 검사원은 끝끝내 이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합동검사를 제의했더니 출장을 간다는 핑계 대고는 도망쳐버렸다.

사태가 이쯤에 이르자 부두는 우리 배가 장기간 점유하는 바람에 심각한 체선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들어오는 배마다 줄줄이 대기해야 했고, 그 바람에 각 공장의 생산라인들은 원료가 떨어져간다고 아우성을 쳐댔다. 울산 쪽에서도 태광산업 공장에 원료가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는데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태광산업은 우리에게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나는 즉시 태광산업의 책임자인 이기화 상무를 찾아가 이 사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일본측의 방해공작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것이라고 얘기하고, 조금만 더 기다려줄 것을 설득했다. 그러나 이기화 상무는 이렇게 된 이상 이번 항차만은 일단 일본 배로 실어 나르자고 제안하면서 “만약에 화물을 싣고 들어와서 화물이 변질되거나 이상이 생기면 책임을 지라”는 요구까지 했다. 나는 백지에다가 인감도장을 찍어서 이 상무에게 넘겨주면서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이 운송 선박을 팔아서라도 변상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화물 수송을 위해 선박까지 담보하는 과감한 행동을 본 이기화 상무는 일본 스미토모측에 전화를 걸어서 “우리가 책임을 질 테니 화물을 실어 보내시오”라고 요구했다. 수하주인 태광산업이 책임을 지겠다며 화물을 우리 배에 빨리 실어 보내라고 하니 스미토모화학으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제1케미캐리호는 화물을 싣고 무사히 울산항에 들어올 수 있었다. 혹시 운송해 온 화물이 변질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았다. 화물은 100%의 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첫 항차부터 안전 운송에 성공한 것이다.

“차라리 운임을 깎아드리겠습니다”

태광산업의 화물을 수송했지만 그것은 매 항차마다 새로 계약을 해야 하는 스팟 운항이었다. 물론 스팟 운항도 실적을 쌓는 데는 좋았지만 사업을 안정적으로 확장시켜 나가려면 장기운송 계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장기계약에 목말라 하는 우리에게 가장 큰 목표로 다가온 회사는 당시 국내 굴지의 기업인 한일합섬이었다. 한일합섬은 항차당 700톤의 AN을 수입해 아크릴섬유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한일합섬의 물량이라면 우리 선박으로 월간 4항차 정도를 배선해 수송할 수 있으므로 가장 바람직한 거래처라고 생각이 됐다.

하지만 한일합섬으로부터 장기운송계약을 따내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한일합섬의 화물은 일본 선사가 톤당 7달러에 운송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6달러 50센트에 수송하겠다고 제의를 했음에도 계약 상담은 진척이 되질 않았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위에서 일본선사에게서 50센트씩의 리베이트를 받아서 썼기 때문에 쉽게 계약을 바꾸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리베이트를 제외하면 일본선사의 운임은 사실상은 6달러 50센트로, 우리가 제시한 운임과 똑같은 것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내가 윗선과 면담하면서 확인할 수가 있었다. 내가 윗분을 찾아가서 운송계약 문제를 꺼내자 일본선사에게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나에게도 똑같이 톤당 50센트씩의 리베이트를 요구했다. 평소 투명경영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나는 사업초기부터 리베이트를 주기 시작하면 회사가 부패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리베이트는 드릴 수 없고 대신에 운임을 더 깎아드리겠다”며 계약운임으로 6달러 20센트를 제안했다. 거절하면 운송계약은 물 건너가는 상황이었으나 그 윗분은 결국 정당한 거래를 내세우는 나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우리는 당당히 장기운송계약을 따낼 수가 있었다.

나는 이 계약이 성사되고 회사로 돌아와서 간부들을 불러 모아 놓고 “앞으로 어떤 계약을 하더라도 리베이트는 절대로 지불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 이후 나는 사업을 해 오면서 이러한 우리의 원칙을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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