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터치웰, IHS Markit 전무

▲ 피터 터치웰 전무
지난 4년 동안 20대 해운선사 중 10개가 인수·합병되거나 한진해운처럼 파산하자 보수적인 컨테이너 해운업도 변화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거의 없었다. 다만 그 변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불분명했다. 이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고 있지만, 일부에서 예측한 방향과는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해운사간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가 경제의 기본 원칙에 따라 경쟁 완화 및 운임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현실로 이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일부는 지난 1년 동안 요율 책정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데 주목하지만, 이는 미-중 보복관세 위협으로 아시아-북미행 물량이 급증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선사들이 배선과 선박 발주에서 더욱 합리적인 방향을 선택했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도 있다. 기존 선박 대비 새로 발주한 선박 비중이 지난 10년 동안 60%에서 10%대 초반으로 급감하는 등 상대적으로 선박 발주가 줄어들었다. 또한 지난해 중반 선사들이 아시아-북미항로 선복량을 감축했고 이로 인해 아시아-북미행 스팟 운임이 5년 만에 최고치를 갱신하기도 했다. 지난해 4분기 선사들은 엄청난 수요에 신중하게 대응하며 미서안 노선은 19개, 미동안 노선은 10개만 추가 항차를 배치했다.

그러나 인수합병의 실제 영향을 따져보려면 선사들의 전략이 어떻게 변화하고 분화하는지, 고객에게 미치는 영향은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시장의 관점에서 인수 합병을 바라보는 대신, 선사들은 상품화로 가는 방향에서 탈피하고자 좀 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즉, 고객을 위한 가치 창출을 통해 시장 주도의 운임 수준을 뛰어넘어 수익 구조를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상품 및 서비스를 판에 박힌 듯 제공하는 산업에 있어 이는 무모하거나 선견지명이 있는 것이지만, 두 경우 모두 야심에 찬 계획임은 분명하다.

선사의 차별화 전략이 새로운 것은 아니나, 문제는 이들의 성공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이다. 모두 비슷한 난제에 부딪혔으며, 연료비 절감을 위한 감속 운항 및 초대형 선박 발주 등 여러 문제에서 서로 비슷한 행보를 보였고, 결국 해운업의 상품화 이미지(commodity image)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 상황에 더해 새로워진 난제를 마주한 선사들은 서로 차별화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선사들이 내세우는 전략의 범주는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하파그로이드(Hapag Lloyd)와 오션네트워크 익스프레스(ONE)는 기존의 기선 항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고품질의 해운업 서비스로 고객이 바라는 가치 창출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머스크(Maersk)와 CMA CGM 등은 공급망 전체를 연결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기본 바탕으로 미래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 중이다. 머스크는 소포나 긴급배송 분야의 FedEx, UPS, DHL 등 물류 업체와 유사한 컨테이너 물류의 "통합자"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방대한 범위에서 인수 합병을 추진 중이다.

MSC는 현재 53개국에서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진 자회사 메드로그(Medlog)를 통해 창고, 트럭, 기관차, 바지선 등 육로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또한 COSCO는 우선 중국 내수 시장에 집중하여 물류 서비스 통합을 추구한다는 방침이다. 다른 선사들은 아직 구체적인 방향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하파그로이드의 미국 수석 부사장인 스튜어트 샌들린(Stuart Sandlin)은 "선사들이 인수 합병된 현재 시장에서 고객을 위해 어떻게 가치 창출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보편적인 선사가 되어서는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틈새시장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선사는 해상 및 육상 물류 서비스 통합의 가치를 믿고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하파그로이드의 전략은 매우 명확하다. 우리는 품질 및 서비스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너지 사업을 내려놓고 물류에만 집중하겠다고 나선 머스크의 전략은 가장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공급망 디지털화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선사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불분명한 개념으로 향방을 가늠할 수 없어 긴장감을 낳고 있다.

사실 머스크가 최초로 물류 통합 서비스를 추구한 선사는 아니다. 1980년대 중반 CSX는 해운사, 철도, 바지선, 그리고 제삼자인 물류 업체(3PL)를 통합하고자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빅데이터 시대에 자산 관리는 다른 의미가 있다. 고품질 데이터를 생성함으로써 고객 서비스를 보다 예측 가능하게 하고 유연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선사가 제시한 물류 서비스 통합이 이토록 급진적인 이유는 연결 자산을 통제함으로써 고객이 지불할 만한 새로운 가치를 공급망에 창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기존의 모델 사이에 긴장감이 도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이스라엘 선사인 짐(Zim Integrated Shipping Services)의 조지 골드먼(George Goldman) 미국 지사장은 2월 4일에 개최된 조지아 해외 무역 콘퍼런스(Georgia Foreign Trade Conference)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현재 부가가치 기술에 대해 고심 중이다.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방안은 무엇인지, 누가 이를 위해 돈을 낼 것인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근본적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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