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 박태원 박사

얼마 전에 모 TV방송국의 ‘다문화 정책 : 순수(純粹)로부터의 해방’이 이목을 끌었다. 하버드대 정치심리학자 라이언 에노스가 미국 사회에서 불법 이민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는 히스패닉에 대한 백인들의 인식 변화를 실험했다. 그 결과, "이방인과의 접촉이 불편함을 낳는다"가 아니라 "이방인과의 접촉이 처음엔 불편하더라도, 계속되면 불편함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에노스의 실험은 비록 우리가 싫어하는 대상이라도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접촉한다면 그 반감이 사그라질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17세기는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로 불린다. 스페인의 종교적 압박에 시달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로 향했고, 이를 바탕으로 창의성과 능력이 마음껏 발휘됐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종교와 군주제로 인해 경직됐던 주요 유럽 국가들과 달리 자유와 관용이 허용되는 국가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15만 명에 달했던 이주민들을 빠르게 포용했고, 이주민들은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번영을 이끌었다.

빛과 어둠을 극단적으로 배합하는 화풍으로 유명한 렘브란트도 네덜란드 황금시대 대표적인 화가이며, 국제법의 기초를 정립한 휴고 그로티우스도 이 시대 사람이다. 토성의 고리를 발견하고, 에너지보존법칙의 이론을 전개하며 역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공헌한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도 이때 활동했다.

도시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재는 척도로 인구 대비 동성애자의 비율을 따지는 ‘게이 지수’가 있다. 한 도시의 게이 지수가 높다는 것은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를 상대적으로 잘 포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도시의 구성원들은 다양한 삶의 가치들을 존중하며 최신 기술과 외부 인재에 대한 개방과 관용의 수준도 높은 편이다. 대표적인 도시가 샌프란시스코다.

전 세계 첨단기술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실리콘밸리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기업에 대한 세제 특혜 등에 힘입어 1970년부터 기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미국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성장을 이끌고 있는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테슬라 등도 실리콘밸리가 기반이다.

1950년대 비트 세대의 출현을 알린 시인 앨런 긴즈버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표작 ‘아우성’을 낭독했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비트 세대 작가와 예술가들은 미국 서부의 경제 중심지이자 태평양전쟁에 참전하는 미군을 실어 나르던 샌프란시스코에서 주류 문화에 반기를 들었다. 비트 세대의 반(反)문화는 1960년대 히피 문화로 이어졌다. 지금도 샌프란시스코는 백인이 주민의 절반이 채 안 된다. 미국 최초의 게이 공직자, 레즈비언 판사, 트랜스젠더 경찰국장을 배출할 정도로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공존하는 도시다.

17세기 네덜란드와 최근 샌프란시스코 이야기의 공통점은 무얼까? 바로 '포용력'과 '관용'이다. 이민자에 대한 네덜란드인의 포용력,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한 샌프란시스코의 관용이 그 사회의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우리 해운업계의 인사정책은 어떠한가? 그동안 현실에 안주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견인하기 위한 인재 영입에 소홀했으며, 새로운 인재에 대한 포용력과 관용의 조직문화도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창업자 중심의 세습 체제가 이어지는 순혈주의와 기존 구성원들의 텃세로 인해 외부의 인재 영입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났다. 주인의식을 강조하면서도 맹목적 근면성이 생존의 덕목이 되는 조직문화에 창의와 혁신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우리 해운기업들의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고 새로운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는 조직 생태계의 변화를 위해서는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불문하고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는 조직혁신이 필요하다. 조직혁신은 구성원의 행태 변화를 통해 조직의 효과성을 높여 조직발전을 가져온다. 조직은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탈바꿈을 해야 생존할 수 있고 또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혁신은 조직 구성원들의 행태나 가치관을 인위적으로 변화시킨다. 때문에 현상유지를 바라는 조직 구성원들로부터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 포용력과 관용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분야든 위대한 회사를 만드는 사람은 성장의 궁극적인 동력이 시장도, 기술도, 경쟁도, 상품도 아님을 이해한다. 다른 모든 것 위에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적합한 사람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붙들어두는 능력이다.”

우리 해운업계 경영자들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경영대학원 교수, 짐 콜린스의 말에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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