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준수 학장 흉상건립에 적극 동참을”

▲ 김석기 회장

박현규 이사장·신태범 회장 동상도 세웠으면
 
한국해양대학교 총동창회(회장 안상현)는 최근 한국해양대학교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故 이준수 한국해양대학장의 흉상 건립 운동을 벌이고 있다. ‘고 이준수학장 흉상건립 추진위원회’까지 구성하여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이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오는 6월쯤에는 조도에 있는 한국해양대학교 교정 한구석에 故 이준수 학장의 흉상이 세워질 것으로 보인다.

故이준수학장 흉상건립추진위원회의 위원 숫자는 고문 37명, 자분위원 37명, 부위원장 73명, 추진위원 71명 등 총 219명의 방대한 규모다. 이 가운데서도 고문직을 맡아 故 이준수 학장 흉상 건립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사람이 바로 서울지역 한국해양대학교 출신들의 최대 친목모임인 ‘한바다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코스모검정손해사정(주)의 김석기 회장이다. 그는 이미 흉상건립추진위원회에 후원금을 쾌척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해양대학교 동창들을 상대로 고 이준수 학장 흉상건립에 적극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김석기 회장의 이준수 학장에 대한 후원은 비단 이 번뿐만이 아니다. 1985년 김석기 회장이 한바다회의 총무직을 맡고 있을 무렵, 이준수 학장이 빈한한 관사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모금운동을 벌여 주택구입자금을 마련해 준 일도 있다. 그는 이준수 학장의 청렴하면서도 헌신적인 모교 사랑 정신에 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해양대학교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0년 1월 ‘자랑스런 해대인상’을 수상한 바 있는 김석기 회장으로부터 故 이준수 학장 흉상건립을 추진하게 된 배경과 그동안 이준수 학장을 계속하여 후원해 온 이유 등에 대해서 직접 들어봤다.

-故이준수 학장은 어떤 분이고, 회장님께서는 어떤 연유로 이준수 학장님을 계속 후원해왔을 뿐만 아니라 이번 흉상건립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셨는지요.
=고 이준수 학장님은 초기 해양대학을 이끌면서 지대한 공을 세우신 분입니다. 이 학장님은 황해도 사리원 출신으로 1945년에 경기중학교를 졸업한 후 해양대학 1기생으로 입학하셨습니다. 해양대학 교수요원으로 근무하시던 중 신성모 학장님의 권유로 경희대학과 서울대학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치고 모교로 돌아와 봉직하셨습니다.”

이 학장님은 1968년 1월부터 8년간 학장으로 재직하셨는데, 이 기간 동안 학교의 여러 현안과 문제들을 잘 해결하시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공적은 해양대학을 지금의 조도로 이전 시키는 일을 구상하시고 직접 맡아서 끝내 완수해 내신 일입니다. 이 학장님은 부산항 입구의 조도가 해양대학이 상선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한 최적지라고 생각하고 이전을 추진했습니다. 조도는 국방부와 해군이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간인 소유자도 많았기 때문에 해양대학 신축부지로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이 학장님은 이한림 건설부 장관을 설득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학장님은 이한림 장관이 수산개발공사 사장으로 취임하였을 때 선박담당이사로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데 당시 신뢰를 쌓은 것이 훗날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한림 장관은 발 벗고 나서서 문교부 장관과 국방부 차관 등 관계 기관들을 설득하였고 해양대는 조도로 이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알기로는 故이준수 학장은 한국해양대학 1기 졸업생으로 해양대학교 교수가 되어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많이 한 훌륭한 학자이자 모교 사랑 정신에 투철했던 분이셨습니다. 그밖에 공적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준수 학장님은 동창들을 위해서도 많은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해양대학이 문교부로 이관된 뒤에야 학위를 수여할 수 있었는데 그전에 졸업하여 학사 학위를 받지 못했던 졸업생들도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행정적 법적 수속을 추진하였고, 병역을 마치지 않아 사회진출을 못하고 있던 졸업생들을 위해서 해군예비원령을 설치하도록 정부를 설득하여 이들의 사회 진출을 돕기도 했습니다.”

학술적으로는 한국해운학회, 항해학회, 한국해법학회, 한국항만학회 등을 창립하여 우리나라 해양 분야 학술 발전을 위한 토대를 닦았습니다. 또한 해양대학 교수들의 해외 유학 등을 도모하여 교수들의 소양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선박직원법과 선원법 개정에도 적극 참여하였으며 1983년 6월 30일 설립된 선원재교육기관인 해기연수원 위원장도 역임하셨습니다. 이 학장님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동백장도 수상했습니다. 한국해운의 메카인 해양대학을 세계적 상선대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헌신했던 이 학장님을 기리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흉상을 건립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김석기 회장님께서는 1985년과 1986년에 한바다회 총무로 활동하시면서 이준수 학장님의 주택 구입 자금 모금 캠페인을 벌여 실제로 주택자금을 지원해 준 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현재 제가 회장직을 맡아 있는 ‘한바다회’는 재경 해양대학 출신들의 골프모임입니다. 설립취지는 회원들의 체력단련, 친목 그리고 모교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5년전. 제가 이준수 학장 주택자금 모금을 할 때는 정희정 회장님을 모시고 한바다회 총무로서 활동하던 때입니다.”

당시 저는 한국검사정공사(KASCO)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한번은 부산 사무소를 방문하는 길에 이준수 학장님댁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 학장님은 구 해양대학 동삼동 관사에 살고 계셨습니다. 당시는 통신이 지금처럼 발달되어 있지 않아 불시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교수님은 출타 중이셔서 사모님만 뵙고 왔습니다. 저는 그때 이 교수님의 생활이 검박한 데 크게 놀랐습니다. 가구는 말할 것도 없고 사모님이 저녁을 준비하시는데 식단이 빈약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교수님이 아주 청빈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양대를 동삼동 캠퍼스에서 조도로 옮기는 대형 토목공사가, 흔히 말하는 리베이트 따위의 스캔들 하나 없이 마무리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학장님의 이런 청렴과 봉사 정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당시 이 교수님이 관사에 사시는 것은 한마디로 집을 구입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한바다회 모임에서 이준수 학장님 댁을 방문하면서 느꼈던 소감을 밝히면서 한바다회가 주최가 되어 이준수 학장님 주택 구입 모금을 해 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당시 해양대학 동창회는 재정적인 사유로 사회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실정이었습니다. 그래도 해대 1기생이고 인천 도선사이었던 정희정 회장님과 박현규, 신태범 동문 등이 적극적인 성원을 약속하셔서 저는 KASCO 직원 2명의 도움을 받아 모금 운동에 착수하였습니다. (KASCO의 대주주는 미국보험회사인 AIG 그룹이고 당시 직원이 230명 정도 되었습니다) 약 8개월에 걸친 켐페인에 다행히 많은 동문들이 동참하였습니다. 모금액은 2천4백만원(지금부터 약 35년전) 정도에 이르렀고 해양대학에서 전달식을 가졌습니다. 이준수 교수님 내외분은 물론 양시권 학장님과 여러 교수님들이 참석하셨고 서울에서도 박현규 이사장, 한바다회 정희정 회장 등이 참석하여 동문 간의 우정을 나누고 축하하였습니다.”

-이번 故이준수 학장 흉상건립과 관련하여 해양대학총동창회나 총동창회장을 지내신 분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준수 학장님이 뛰어난 업적을 남기시게 된 뒤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한 동창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해양대학의 이전이라든가 졸업생들의 학위 수여, 병역 문제 등을 해결해 나갈 때 학장님의 동기생인 해사문제연구소 박현규 이사장님과 KCTC의 신태범 회장님이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지요. 이 분들의 기여도 작지 않은 바 기회가 되는 대로 해양대학 구내 한 장소에 이준수 학장님에 더해서 이 두 분의 흉상도 건립한다면 더욱 뜻 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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