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화선지의 삼각형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성탄절 연극에서 동방박사 역을 맡았다.

구세주 탄생을 알리는 별이 하늘에 나타나 이를 발견한 동방박사들이 구세주를 경배하러 출발했다. 별이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멈추었다. 동방박사들이 그곳에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에게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마태복음의 기록을 극화劇化하여 크리스마스 기념공연을 했다. 나는 동방박사 역을 맡았기에 구세주 탄생을 체험했다. 이로 인해 나는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하러 온 구세주로 믿었다. 이 믿음은 때 묻지 않은 내 화선지畵宣紙에 제1점으로 선명하게 찍혔다.

구세주께서 광야에서 밤낮 40일을 단식했다. 악마가 허기진 그분께 나타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라고 시험했다.

그분께서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라고 대답했다. 이는 사람이 잘 먹고 마시며 호화롭게 살려고 물질에 매몰되지 말고 정신문화를 계발하여 사람답게 살라는 명령이다. 나는 이를 나의 화선지에 제2점으로 찍었다.

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한다”라고. 십자가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인 삶을 살지 말고 이웃사랑을 하라는 명령이다. 그분께서는 병자를 고치고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죄인들과 먹고 마셨다. 이것이 이웃사랑이다. 나는 이를 화선지에 제3점으로 찍었다.

화선지 위에 찍힌 세 점을 연결하니 삼각형이 됐다. 구세주에 대한 신앙, 정신문화, 이웃사랑, 이 세 점이 내 화선지의 삼각형이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차치하고서라도 신약시대 2000년 동안 수많은 계명과 교리가 산더미 같다. 그것들을 어찌 감당하랴! 신앙생활은 천차만별이다. 끝이 없다. 나는 가장 낮은 단계라도 화선지 삼각형에 머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삼각형은 내 신앙이고 인격이다. 허지만 나약한 나는 삼각형의 공간을 벗어나려는 유혹을 받는다. 그 공간에 머물려고 애를 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때론 힘겨워 손을 놓는다.

나 자신을 찬찬히 되돌아보면 할머니와 어머니의 불교적 보시布施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교적 윤리倫理가 내 언행에 스며있다. 꼬마일 때부터 4대의 대가족이 한 지붕 밑에서 서로 부딪치고 살면서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내뿐이겠는가? 내 어린세대와 함께 살았던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전통 불교와 유교의 밑둥치에다 기독교 사상이 접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자손들은 풍요로운 시대를 살면서 전통종교도 신흥종교도 아닌 제3의 문화를 호흡하고 있다. 학식도 풍부하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여 겉보기엔 당당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삭막하고 좇기는 삶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밀려오는 도도한 물결을 낸들 어찌 하랴! 내 스스로를 지키기도 힘든데! 그들을 멀리서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나는 화선지의 삼각형을 벗어나지 않고 언행을 절제하며 여생을 보내련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