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초 중대형 암모니아 가스선 인수

▲ 박종규 회장

기왕에 선박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 회사에서 도입했던 선박들에 대한 얘기를 더 했으면 한다. 우리 회사가 80년대 초중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됐던 선박은 뭐니 뭐니 해도 가스글로리아호이다. 우리 회사 출신들은 이 선박을 오늘날까지 우리 회사가 있게 한 버팀목이자 성장의 1등 공신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가스글로리아호는 주로 냉동 암모니아 가스를 나르는 중대형 가스선으로 아시아지역에서는 유일한 중대형 암모니아 수송선이었다.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이 선박을 1983년 8월에 인수했는데, 생각한 것보다도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됐다.

암모니아는 요소비료의 원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농업기술 발달로 비료사용이 늘어나면서 그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아시아지역에는 암모니아를 나를 수 있는 중대형 가스선은 단 한척도 없었다. 당시 우리가 조사해 보니 전세계적으로도 중대형 암모니아 가스선은 12척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당시 요소비료 생산업체인 남해화학이 연간 20만톤의 암모니아 가스 수입 허가를 막 얻어냈기 때문에 수송 수요는 충분할 것 같았다. 따라서 나는 2만톤급 이상의 냉동식 중대형 가스선을 찾게 됐고, 그런 과정에서 가스글로리아호를 알게 된 것이다. 당시 이 선박은 선령이 15년으로 좀 오래됐지만, 독일에서 건조해 철판이 매우 두껍고 관리상태가 양호해 우리가 찾는 ‘적격선박’으로 판단됐다.

나는 이 때 우리 회사의 장래 운명을 걸고 과감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믿었던 남해화학이 장기계약을 해주지 않아서 계약화물을 확보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가 이 배를 도입할 경우 아시아지역에서 유일한 중대형 가스선이기 때문에 화물 확보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더구나 아시아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가스 시장이 점차 확대돼 가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빠졌지만, 이럴 때 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과감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스글로리아호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회사 지탱하는 힘 됐던 가스글로리아호

그러나 아시아 최초의 중대형 암모니아 전용 가스선 도입은 순탄치가 않았다. 가장 큰 문제가 도입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는 제2차 오일쇼크로 인해 회사를 유지해 나가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사업 초기부터 나는 비자금 만들지 않고 돈쓰는 로비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따라서 그저 안면과 친분관계만 내세워 은행에 로비를 해야 했기에 어려움은 가중됐다.

하지만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지 않으면 기업의 생존마저 위협받는 다는 사실을 잘 아는 나는 은행에 매달렸다. 한번은 담당상무를 점심식사에 초대한 자리에서 나는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기도 했다. 은행에 찾아갔다가 문전 박대를 받고 그냥 물러나왔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은행은 증자를 하는 조건으로 우리에게 자금을 빌려주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의 담보여력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내 83년 8월 우리는 베니스항에서 가스글로리아호를 인수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암모니아를 수송하는 것이라서 조금 걱정도 됐지만, 가스글로리아호는 첫 항해부터 세계일주항로에서 화물을 성공적으로 수송했다. 트리니타드토바고에서 화물을 선적해 파나마 운하를 거쳐 캘리포니아에서 짐을 풀고 다시 알라스카의 케나이항에서 암모니아를 싣고 여수로 돌아오는 항차를 무사히 마친 것이다.

이 항해 이후 미국의 유노칼과 트랜스암모니아, 일본의 미츠이, 미츠비시 등 남해화학에 암모니아를 공급하던 회사들은 모두 가스글로리아호의 주요 고객이 됐다. 유럽 배를 이용하면 용선이 끝나서 돌아갈 때는 빈 배로 가야하기 때문에 운임이 비쌌지만 공선운항이 없는 가스글로리아호는 운임이 쌌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다.

가스글로리아호는 착실하게 운항을 계속해 우리 회사를 지탱하는 힘이 돼주었다. 당시 가스글로리아호는 우리 회사를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스글로리아호의 운임이 입금이 되면 곧바로 직원들에게 월급으로 지급이 되기 때문에 직원들은 은근히 배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곤 했다.

이 배는 운항한지 10년이 넘어서면서부터는 선령 25년의 고령선이었기 때문에 선박의 노후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기 시작해 결국 1995년에 매각을 했다. 그 후 대체선을 계속 모색하다가 1997년 7월에 파나마선적의 신조선 가스콜롬비아호를 장기계약해 운송하게 됨으로써 아시아 유일의 대형 암모니아 운반선에 의한 비즈니스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특히 미츠이상사의 암모니아를 최단 10년, 최장 20년간 수송한다는 획기적인 계약을 맺은 것이 회사의 경영 안정에 큰 도움이 됐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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