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터치웰, IHS Markit 전무

▲ 피터 터치웰 전무

기후변화가 컨테이너 해운업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운항속도를 제한하자는 국제 캠페인까지 등장했다.

이르면 2030년까지 탄소-중립형(carbon-neutral) 선박을 개발해야 하는 과제에 맞닥뜨린 해운업계에 향후 10년은 혁신을 결정 짓는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전망이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머스크(Maersk)가 2050년까지 현재 보유한 전체 선박 640척의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 2030년 첫 탄소-중립형 선박을 배치하겠다고 목표로 삼은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제해사기구(IMO)가 지난 4월 채택한 온실가스 전략은 해운업이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8년 대비 50% 감축할 것과 더불어 기후변화 관련 규제 목표를 재검토하게 되는 2023년 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조기" 대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3년 반이라는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실제로 어떠한 제로 혹은 저탄소 추진 연료가 기술 및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배출량 감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운용상의 조치뿐이라는 믿음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는 유럽의회를 대신해 네덜란드의 환경 컨설턴트 CE 델프트(Delft)가 지난 4월 발표한 연구의 결론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가장 가능한 방식은 단순하고 쉬우며 영향력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공해상의 속도 제한을 의무화함으로써 컨테이너선의 운항속도를 완화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 효과를 입증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로 선사들이 자발적으로 감속 운항(slow steaming)을 선택함에 따라 2008~2012년 국제 컨테이너선의 배출량은 13% 감소했다고 유럽 운송환경연합(Transport & Environment)은 2014년 IMO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밝혔다.

세계선사협의회(World Shipping Council)에 의하면, 해운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5%를 차지하며, 그 중 1/4 정도를 정기선 운송이 차지한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2023년 시한을 앞두고 IMO가 의도적 감속 운항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것이 설득력 있는 방안이라고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다. 지난 4월 프랑스와 그리스는 IMO에 감속 운항을 "가능한 한 조속히" 실행할 것을 제안하며 신규 조항에 컨테이너 선박을 명시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4월 30일, 110개의 선사가 IMO 산하 온실가스 실무팀의 5월 13~17일 회의에서 감속 운항 의무화를 채택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에 서명했다. (비록 여러 무선박운송사업자(NVOCC) 포함된 벌크선사가 대부분이고 컨테이너 선사는 눈에 띌 정도로 포함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서한 내용을 보면, "우리는 컨테이너선의 연간 최대 평균 속도를 설정하기를 바란다"고 밝히며 "최근 연구에 따르면, 국제 수요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선박들이 다시 운항속도를 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IMO가 감속 운항 의무화를 채택하는 것은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한편으로는 연설, 신문 기사 및 정책으로만 떠돌던 기후변화 대응 방침이 실제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서한은 이미 달성하기 어려운 듯 보이는 2015 파리 기후협정에 따라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유지하려면 전 세계적으로 "큰 폭의 배출량 감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허울에 지나지 않는 해결책을 추구할 경우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오며, 이산화탄소 저감 노력 또한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컨테이너선의 운항 속도 제한이 좋은 사례이다. 컨테이너선은 대부분 주 단위로 운항하며 지체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예측 가능한 수송 서비스가 필요한 음식, 소비자 및 산업 제품의 국제 공급망을 책임지고 있다. 감속 운항을 의무화할 경우 주 단위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선박을 추가 운항하게 되며 그 결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어나게 된다. 기상악화로 인해 출항을 연기하는 등 일정을 유연하게 조정할 여력도 없게 된다.

닐스 하우프트(Nils Haupt) 하파크로이트(Hapag-Lloyd) 대변인은 "함부르크~싱가포르 노선에 필요한 12척의 운항속도를 줄인 상태로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고 정기적인 주 단위 서비스를 소화하려면 13번째, 14번째 선박을 추가 투입해야 한다. 이는 더 많은 투자와 더 많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의미한다. 벌크선과 유조선은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이지만, 컨테이너선의 경우 이는 엄청난 투자를 의미하며 이는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국소매협회(National Retail Federation)의 공급망 및 세관 정책 부사장인 조나단 골드(Jonathan Gold)는 "이것은 잘못된 접근법이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트위터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전반적인 속도 제한은 추가 선박 투입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추가 발생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며 추가 선박 운항이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로 이어진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들은 컨테이너선의 감속 운항이 전반적인 CO2 배출량 저감에 역효과를 내는 다른 이유를 든다.

"선박의 평균수명은 약 25년이다. 따라서 속도 제한 규제라는 단기 정책을 적용하면 [정기선]이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에 더 투자해야 하는 상황을 야기하며 이는 향후 25년까지 이러한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우리가 정작 피하고자 하는 상황이 아닌가"라고 존 버틀러(John Butler) 세계선사협의회 CEO는 말한다. "속도 제한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인 효과를 낼지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오히려 IMO가 2030년 그리고 2050년 장기 목표로 설정한 것을 달성하기 위해 폐기해야 하는 기술에 의존하게 만드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버틀러는 "(컨테이너) 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역량이 무한하지 않다. 따라서 속도 제한을 의무화하면 주 단위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선복량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선박에 인위적으로 투자하게 되고 이는 결국 탄소 제로라는 미래를 위해 지출해야 할 연구, 개발 및 신기술 관련 투자금을 막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IMO가 5월 13~17일 개최되는 제74회 해양환경보호위원회 회의에서 서한의 요구에 응할지 여부와 상관없이 선사들이 금융 위기 동안 실행하고 완전히 폐기하지 않은 의도적 감속 운항을 자체 실행할 수도 있다.

2020년 1월 1일 발효되는 IMO의 유황 배출가스 규제로 인해 해운업계가 자체적으로 감속 운항을 실행할 수도 있다. 컨테이너선이 이를 준수하기 위해 드는 연간 연료비는 미화 100억~150억 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머스크는 유황 배출가스 규제로 인해 연간 연료비가 20억 달러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하파크로이트는 연간 10억 달러가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과거에도 연료비가 증가하면 운항 속도는 감소했다. 결국 감소시켜야 하는 것은 운항 속도가 아니라 의도적 감속 운항에 대한 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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