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아내의 우상

우상偶像이란 의미가 몇 가지 있다.

첫째 나무 돌 쇠붙이 흙으로 만든 상像, 둘째 종교적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 셋째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신의 형상이나 개념, 넷째 대중적인 인기가 있어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존경하는 대상 등등이다.

아내의 우상은 그런 게 아니다. 아들에 대한 우상이다. 아들이 하나뿐이라서 그럴까. 세상에는 자기만이 아들이 있는 듯하다. 절대적이다. 맹목적이다. 물론 모성애가 조건이 있을까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암탉이 다른 동물이 접근하면 날개를 활짝 펴고 병아리를 품어 ‘건드리면 깨질세라 불면 꺼질세라’란 듯 사력을 다해 방어한다

내 어머님도 연만하셔서 나를 막둥이로 낳으셨기에 애처로워 자기 생명처럼 날 품어주셨다. 하지만 나는 형님이 두 분이나 있었기에 아내의 우상과는 비교가 안 됐다. 나는 아내의 우상에게 시새움을 느낄 정도다.

아내의 우상을 유치원엘 보내지 않고 미술학원으로 보냈다. 미술대회 때마다 입상은 물론 특상을 받아왔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보였다. 중앙일보가 주관하는 미술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아내는 흥분하여 내 재산목록 제1호인 카메라를 잊어버린 줄도 모르고 집에 돌아왔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일등을 놓지 지를 않았다. 그러니 아내에게는 세상없는 보람이었다. 사내애들이 말썽을 부리고 일을 저질러 엄마들이 골머리를 앓는 세상에 기쁨만 가져다주니 보석 같은 우상이었다.

고3전투가 벌어졌다. 아내는 이른 아침에 도시락 두 개를 넣은 책가방을 손수 들고서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밤 10시면 겨울 혹한에도 개의치 않고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다 빈 도시락과 간식 도시락과 바꾸어 동네 독서실까지 데려다주었다. 지극정성의 전투 끝에 서울대에 입성했다. 아내의 환희는 온 누리에 넘치고도 남았으리라.

용케도 운동권에 휩쓸어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고서 영국유학을 떠났다. 먹는 건 잘 먹는지 공부는 잘 하는지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던 아내는 두 번이나 영국으로 날아가 애틋하게 재회했다.

영국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와 모교에 출강하다가 미국대학으로 갔다. 철학 강의는 우리말로도 어려운데 프랑서혁명과 미국독립에 영향을 끼쳤던 정치학자이며 대철학자인 로크철학을 로크의 후손들에게 영어로 강의하나니! 아내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보다 아내의 우상이 더 위대하게 보였어리라.

20여년 각고 끝에 총결산으로 세계적 출판사에서 로크경험론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책표지를 첨부해 이메일을 보내왔다. 책표지의 색상이 화려하고 추상화처럼 현란眩亂했다.

아내가 ‘철학책 표지가 어찌 그렇게 색상이 화려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우상은 ‘철학책 표지가 점잖고 권위적인 색상과 디자인이 많은데 색까지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최대한 화려한 디자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정신의 본질이 모호하다는 로크철학에는 추상적 디자인이 적절하다는 생각에서 표지를 고른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우상이 ‘31년 전, 미술평론가가 되려고 미학에 입문했었는데 영국 유학에서 경험철학으로 돌아섰습니다.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가 봅니다’라고 덧붙쳤다.

로크철학책을 출간할 우상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만큼이나 위대하게 보였음인지 아내의 심장이 벅차올라 얼굴이 상기되었다.

나는 아내의 우상에게 “그래도 내가 옆에 있어 엄마가 고래고래 큰 소리를 질러며 기고만장하지만, 내가 죽고 나면 가을바람에 가랑잎이 굴러가도 서글퍼 눈물 지울터이니 그때 엄마를 잘 돌봐드려라”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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