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터치웰, IHS Markit 전무

▲ 피터 터치웰 전무

최근 수개월 동안 해운업에서 탄소 배출 제로 이슈가 유달리 부각되었다. 과거에는 아득히 먼 미래의 문제로만 여겨졌을 뿐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됐던 문제다.

JOC가 주최하는 TPM 콘퍼런스 등 여러 행사에서 열린 환경 관련 세션은 참여율이 매우 저조했으며 화주들은 선사들에 그 어떠한 압박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우선 최근 몇 개월 동안 발생한 변화를 살펴보면 퀴네앤드나겔(Kuehne + Nagel)이 offset을 통해 탄소 제로 컨테이너 운송 서비스를 최초로 시작한 것을 필두로, 여러 컨테이너 선사들이 탄소 제로 서비스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또, 머스크는 최근 개별 컨테이너가 탄소 중립이 될 수 있도록 탄소 중립 바이오 연료를 일반 연료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탄소 배출을 전혀 하지 않는 연료만으로 운항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머스크가 2050년까지 탄소 무배출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것이 고작 6개월 전이다. 그리고 이는 IMO가 2050년까지 선박의 탄소 배출을 2008년 수준 대비 50% 저감하겠다고 2018년에 발표한 목표치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글로벌 전략 통신 위원회(Global Strategic Communications Council)에 따르면, 머스크가 발표하기 이전에도 NYK는 (오션 네트워크 익스프레스와 별도로)  2050년까지 탄소 제로를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스웨덴의 선주연합회는 2045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 6월 18일, 11개의 주요 은행은 기념비적인 포세이돈 원칙(Poseidon Principles)을 선언하며 선박 관련 대출자는 선박을 투자하는 결정에 있어 탈탄소 기준을 포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갑자기 탄소 제로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극단적인 이상기후도 한몫 했겠지만,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며 갑자기 의식을 각성하게 된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아마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IPCC가 지난가을에 발표한 보고서 때문일 것이다. 이 보고서는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내로 유지하는 데까지 고작 12년이 남았으며 그 후 기후변화의 끔찍한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리기후변화 협정에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한 바 있다.

어쩌면, 스웨덴의 16세 기후변화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와 같이 어린 환경운동가들의 갑작스러운 유명세 덕분일 수도 있다. 지난 3월 100여 개국에서 학생 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그레타가 제시한 동맹휴교 캠페인에 참가해 기후변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아니면, 지난 4월 얼굴에 하얗게 분장을 하고 IMO 건물 앞에 기습적으로 나타난 시위대가 한몫을 했을 수도 있다. 이들은 모든 해운 선박의 감속 운항 의무화를 요구했다.

감속 운항 의무화라는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단기간 저탄소 배출이라는 목표를 위해 실행할 수 있는 엄격한 시행 조치로서 만약 실행된다면 지구상의 모든 공급망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야심 찬 탈탄소 목표를 선언하고 있는 흐름과도 연결된다. 영국은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일본 의회는 탄소 중립 계획을 승인했다. 독일 역시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러한 모든 요소가 결합한 결과일 수도 있다. 혹은 더 절실한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해운업에서는 2020년부터 발효되는 IMO 저유황유 규제로 인해 상황이 명확해진 것처럼 더이상 환경 규제를 피할 수 없다는 현실 자각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탈탄소 문제는 저유황유 규제 다음으로 극복해야 할 주요 과제이다. IMO가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데드라인인 2023년은 말 그대로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위태로운 자금 상황을 더 어렵게 하지 않으면서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해줄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이냐는 가장 어려운 문제에 대해 명확한 답이 없는 실정이다.

상황이 어떠하든 간에 앞으로도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주제는 더 활발히 논의될 것이다. 특히 해운업이 2023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감축할 수 있도록 도와줄 기술이 전무한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따라서 운용상 가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동원해 단기 목표를 달성해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4월 IMO의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회의에서 의무적 감속 운항이 대안에서 거의 제외됐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2020년 4월 개최될 MEPC 회의도 서서히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감속 운항 의무화 제정을 목표로 대표단에 대한 압박이 커질 것이 분명함에도 선주연합의 대표 격인 국제해운회의소(International Chamber of Shipping)는 다음 MEPC 회의 전에 운항 상의 모든 효율적 방법을 동원해 연료 사용량을 감축하고 있는지 각 정부가 의무적으로 감사를 실행할 것을 촉구하는 제안서를 작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이 제안한 이른바 <슈퍼 선박 에너지 효율 관리 계획서(Super SEEMP)>는 전 세계 선사들이 연료 소비를 줄이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하며 이는 SEEMP에 대한 국정 감사를 통해 의무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처럼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한 가지다. 국제 해운업에 있어서 탄소 배출 저감이라는 이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여기에 익숙해지는 좋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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