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83회 생일

여태까지 생일을 그냥 그럭저럭 지냈으나 83회 생일은 그렇질 않다. 왜일까? 자꾸만 기력이 빠진다. 회한이 밀려온다. 마지막이란 예감이 든다.

고향 집 생각, 조부모님의 인자한 모습,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특히 가족을 위해 온갖 희생을 다 하신 어머님, 세상을 모두 떠나버린 형님, 누님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미국에 사는 첫째와 둘째 친손녀 둘이 방학에 한국에 온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해야겠다. 실망하지 않도록…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가벼운 운동을 쉬지 않는다. 먹기 싫어도 밥을 꾸역꾸역 먹는다.

그들과 재미나게 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사주고, 그리고 고궁과 박물관을 관람하며 조국을 보여주고 싶다. 도라산역에 찾아가 북녘 땅을 바라보며 분단의 아픔도 알려주련다.

생일이 다가왔다.

전날 밤, 미국에서 동영상 전화가 왔다. 친손녀들이 앞서고 아들과 며느리는 뒤에서 얼굴을 다투어 내밀며 “생신 축하해요”를 연발했다. 나는 “그래, 그래, 고맙다”라고 답했다.

생일날, 딸 식구와 처제들과 함께 조촐한 양식당에서 칼질을 했다. 조잘대는 이야기를 나는 옆에서 빙그레 웃으며 들었다. 이것저것 생일 선물들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켜고는 Happy Birthday를 합창했다.

그 자리에서 중3인 둘째 외손녀가 편지를 낭독했다.

Dear 할아버지!

83번째 생신 축하드려요. 수원에서 할아버지 차 타고 스파게티 먹으러 갔을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예고 입시 준비를 하고 있네요.

할아버지가 My Grandpa여서 너무 좋아. 할아버지도 내가 손녀이어서 좋지? 연락 자주 못 드리고 할부지 집에 많이 못 놀러 가서 죄송해요. 입시 끝나면 예고 교복 입고 많이 놀러 갈께유! 할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I LOVE YOU!!!

예쁜 손녀 희원 올림

첫째 외손녀도 편지를 읽었다.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손 잡고 목욕탕 다니던 제가 벌써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네요.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아서 참 좋아요. 조부모님과 가까운 아이일수록 인성이 바르게 자랄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대요. 제가 그래서 이렇게 바르게 자란 것 같아 할아버지께 참 감사드려요.

첫 손녀답게 동생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할게요. 미국에 가서 다슬, 다해, 다함이 잘 챙기고 보살필게요. 언니로서 멋진 모습 보여주고, 할아버지 말씀대로 명가가 되도록 할 거에요. 예일대학에서 더욱 열심히 해서 훨씬 발전해 돌아오겠습니다. 사랑해요.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사랑하는 할아버지!!!

손녀 혜인 올림

꽃동네에서 축하 카드가 왔다.

존경하는 김종길 회원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랜 세월 동안 베푸신 사랑은 위대합니다. 그 사랑이 꽃동네 가족들을 절망에서 일으킨 힘이 되었습니다.

꽃동네 회원관리팀 드림

유니세프에서도 문자메시지가 왔다.

Happy Birthday! 김종길 후원자님, 소중한 날을 축하드립니다. 보내주신 사랑 덕분에 많은 어린이가 생명과 희망을 되찾았습니다. 어린이에게 소중한 생일 선물한 고마운 후원자님! 영원히 기억될 행복하고 멋진 생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등학교 동기동창회도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80대 넘어 장수하시는 동문님의 7월 9일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여생도 건강관리 잘 하셔서 100세 시대를 구가하시는 귀한 동문 되시길 기원 드립니다.

위 이외에도 몇몇 지인으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내 생일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고마워 눈가에 이슬이 서린다.

내 생일은 찜질방 같은 오뉴월이다. 요즘은 폭염주의보다, 경보다, 기상예보를 보낸다. 83년 전, 1937년 7월 9일, 음력 6월 초이틀! 그땐 그런 예보가 없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그러느니 하고 참고 살았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냉장고도 없었다.

그 찌는 날씨에 마흔둘 노산의 어머니께서 산고의 진통을 어떻게 겪으셨을까? 탯줄을 끊고는 자기 분신을 금인 듯 옥인 듯 어루만지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젖줄이 말라 무얼 먹여 나를 키웠을까? 불효자식인 줄도 모르시고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나를 키우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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