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 박태원 박사

"중국 세상이다(It's China's World)." 최근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이 전년도 매출을 기준으로 선정한 '2019년 글로벌 500대 기업'을 발표하면서 내건 기사의 제목이다. 올해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대만을 포함한 중국의 기업 수는 129개로 미국의 121개를 제치고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의 기업은 작년보다 8개 늘어났지만, 미국은 5개가 줄었다. 포천은 "이는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면서 미국의 슈퍼 파워를 장악하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관세 폭탄과 규제 등 미·중 무역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들은 높은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약진은 '중국식 국영 성장' 모델에 기인한다. 500대 안에 포진한 중국 기업 중 국영기업이 3분의 2인 82개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전력·금융 등 필수 인프라를 담당하는 국영기업이 상위권을 독식했다. 중국의 양대 국영 석유 업체인 시노펙과 CNPC가 2·4위를 차지했고, 전력망 구축을 맡는 스테이트 그리드도 5위에 올랐다.

가장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것은 중국 IT 기업이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468위)는 중국·인도 시장에서 스마트폰·TV 판매 실적을 끌어올려 창업 9년 만에 500대 기업에 진입했다. 중국 민영 기업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핑안보험(29위)은 보험 판매뿐만 아니라 가입자들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세계 최대의 헬스케어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 중이다. 미국의 강력한 견제에 직면한 화웨이도 작년보다 순위가 11계단 상승한 61위를 기록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3위, 통신장비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중국의 대표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 알리바바, 징둥닷컴은 게임·온라인 쇼핑 같은 기존 사업에다 AI·자율주행차·로봇 등 미래 기술 분야에서도 미국과 견줄 정도의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막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었고, 이제는 해외 시장까지 장악하고 나섰다. 세계 시장이 독과점 체제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규모가 막대한 중국 기업들의 성장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반해 미국 기업들은 뒷걸음질 쳤다. 최대 유통 기업인 월마트가 1위 자리를 지켰을 뿐, 전체 기업과 상위 10대 기업에 포함된 숫자가 모두 줄었다. 게다가 올해 새로 진입한 기업 25개 가운데 중국 기업은 12개지만, 미국 기업이 4개에 불과하다. 한국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한국은 지난해와 같이 16개 기업이 포함됐지만, 삼성전자를 비롯해 8개 기업의 순위가 내려갔다. 그나마 107계단이나 뛰어오른 SK하이닉스(335위)가 눈에 뛸 정도이다.

한편 세계 해운시장에서의 중국의 위상은 어떠한가? 중국의 대표적인 국영선사인 코스코쉬핑의 약진이 무섭다. 지난 해 세계 7위 선사인 홍콩의 OOCL을 인수한 코스코쉬핑은 올해 6월말 기준으로 글로벌 컨테이너선사 전체 선복량에서 12.5%인 289만teu를 차지하여 머스크라인과 MSC에 이어 세계 3위를 고수하고 있다. 초대형선 보유 면에서는 머스크의 50척에 이어 31척으로 2위에 올랐다.

특히 코스코쉬핑은 금년도 1분기에 매출액이 전년 동기에 비해 60%가 증가한 6조 원,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배 증가한 2,200억 원을 기록했다. 순이익은 1,170억 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무려 3.8배가 증가하는 괄목할 성과를 이루었다.

중국은 IT산업 육성을 위한 ‘기술 굴기’ 정책과 병행하여 ‘해운 굴기’에도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향후 중국 해운기업의 세계 해운시장에서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중국과의 산업경쟁에서 넛 크래커(Nut Cracker : 호두까기 기구)라는 말이 등장한지도 오래다. 넛 크래커는 선진국에 비해서는 기술과 품질에서 뒤쳐지고 개발도상국에 비해서는 가격 경쟁에서 밀리는 현상으로, 한국경제의 위상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곤 했다. 한국이 마치 호두까기 기구 사이에 끼인 호두 같아서다.

어쩌면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한국의 해운산업의 처지가 이와 비슷하다.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해운선사들과의 경쟁에서 한국 해운선사가 비가격 경쟁력에서도 가격 경쟁력에서도 뒤진다면 너무나도 참담한 현실이다.

얼마 전에 현대상선이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확보하더라도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산업은행 산업혁신금융단의 진단이 있었다. 실로 충격적이다. 20척의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 조달하는 금융비용이 크기 때문에 경쟁 선사보다 운임을 비싸게 받아야만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해양수산부와 해운업계는 선·화주의 상생을 외치면서 뾰족한 대안 없이 우리나라 무역업계의 애국심에 매달리고 있다. 글로벌 경쟁 선사보다 운임을 더 받아야 이익을 낼 수 있는 국적선사에 국내 화주가 선뜻 짐을 내놓긴 어렵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대상선의 고비용 구조를 해결하려면 클린 컴퍼니로 재탄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상선을 신용등급 ‘A+’ 이상 클린 컴퍼니로 만들면 금융비용을 5% 이하로 낮출 수 있어, 머스크라인과의 경쟁도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현대상선의 고질적 문제인 고비용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현대상선이 세계 최강의 머스크라인은 차치하고라도 이미 글로벌 해운시장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어버린 중국 해운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국적선사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하루 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공들여 왔던 ‘해운재건 5개년 계획’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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