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리베이트·장부조작 없는 5無 회사

▲ 박종규 회장

전작에서도 밝혔지만 우리 회사는 다섯가지가 없는 회사이다. 사시(社示)도 없고, 인맥도 없고, 리베이트도 없으며, 밀수도 없고, 회계장부 조작도 없는 5무(無) 회사라는 말이다.

우리 회사는 사시는커녕 그럴듯한 표어 같은 것도 붙여놓지도 않았다. “도대체 형식적인 표어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어떤 지표가 있다면 그것을 그냥 실천하면 되는 것이지”라는 것이 평소의 내 생각이었다.

거창한 어구를 동원해 기업 이미지를 창출하려고 애쓰는 경우가 많은데, 가만 보면 그 기업의 실상과는 크게 어긋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자기 회사의 사시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원들이 많은 것이 우리 기업 문화의 현주소다. 그런 측면에서는 우리 회사는 매우 실제적이고 실용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회사의 분위기는 독특한 면이 있다. 매출액이 2000억원이 넘는 회사가 상근이사가 3명밖에 없으며 부사장급 이하는 평사원들과 책상을 나란히 하고 근무하고 있다. 업무도 현장사원들에게 대폭 위임돼 있어서, 예를 들어 회계 결산의 경우도 임원이 아닌 직원(총무부장)이 확정하도록 아예 회사 규정에 정해놓고 있다.

영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화물을 확보하고 운임을 책정하는 일은 영업사원들이 직접 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영업사원들이 상담 현장에서 결정한 내용은 상사라고 할지라도 이를 번복할 수는 없다. 혹 영업사원이 실수를 해 잘못된 약속을 하더라도 약속은 약속인 만큼 회사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를 이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내용과 관련된 일화는 너무나 많다. 한번은 영업부 직원이 술자리에서 운임을 깎아주겠다는 말을 얼핏 했던 것이 문제가 돼 실제로 운임을 깎아준 일도 있었다. 취중에 한 약속이라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 당시 경영진들의 판단이었다.

운임과 관련해서는 가장 유명한 것이 ‘백지계약서 사건’이다. 1978년이니까 사업 초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K사가 일본에서 200톤을 들여오면서 우리와 운송계약을 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K사는 우리가 제시하는 운임이 너무 비싸다며 깎아달라고 했다. 이 때 우리의 영업부 대리는 과감하게 백지계약서를 내밀며 “당신네 회사가 내고 싶은 만큼만 써 넣으십시오”라고 말을 했던 것이다. K사는 결국 3500달러를 써넣었고, 우리는 그 가격이 너무나 싸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수용했다. 그 후 K사와 운임을 둘러싼 문제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일을 밑의 사람에게 대폭 위임해 주고 있었고, 회사에서도 일을 실무자들에게 위임하는 위임제도를 실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임제도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가끔은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처음에는 실무자들에게 일이 위임되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중간관리자들이 밑에 있는 사람들의 일을 거두어가는 일이 생기는 수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위임제도는 실패하는 것이다.

위임제도 실패 여부는 말단 실무자들의 반응을 보면 금세 알 수가 있다. 나는 이것을 자연스럽게 파악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생일파티를 열어주는 전략을 썼다. 그런 기회를 이용해 넌지시 물어보는 것이다. 위임제도가 잘 실시되는가를 살피기 위해 여러 경로로 체크를 해봤지만, 별다른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내가 위임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했다고 판단한 이유이다.

실무자들에게 업무를 위임하는 위임제도 때문에 우리 회사가 영업상 큰 실패를 겪은 일은 없었다. 일선 직원들에게 업무를 위임하면 직원들은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 연구하고 자신감 있게 업무에 임하게 된다. 기껏 유능한 직원들을 뽑아놓고 소위 시키는 일만 하는 ‘머슴’을 만들어 버리는 경영자가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은 경영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경영자 자질’이 간부 승진인사의 기준

우리 회사에는 지연, 혈연, 학연 등 인맥을 따지지 않는 문화가 정착이 된지 오래다. 우리 회사의 신입사원 채용시에는 본적이나 출신학교는 따지지 않고 그 사람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만을 따져서 사원을 선발하게 된다. 한마디로 실력 위주로 뽑는다. 나는 간부직원들의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고,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

나는 간부 승진인사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경영자의 자질이 있느냐’ 하는 것이 승진인사의 기준이다. 경영자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란, 우선 기업윤리에 투철한 사람이어야 한다. 공사가 분명해야 하고 개인 보다는 전체를 위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또한 개성이 있어야 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는 식으로 두리뭉실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나의 의견에 반대를 많이 하는 사람을 승진시킨다는 원칙이다. 사장이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반대하는 간부는 진심으로 회사를 위하는 간부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장으로서야 자기가 하는 일을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미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노’라고 말 할 수 있는 소신 있는 부하가 회사를 키울 수 있는 인재라고 나는 믿는다. 나의 뒤를 이어서 KSS해운을 이끌어온 후임 경영자들은 모두 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개성이 강하고 소신이 있는 경영자들이었다.

우리 회사의 대표이사 사장을 선정하는 방식도 교황을 추대하는 것처럼 공정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회사 규정에는 사장 추천위원회 제도가 명시돼 있다. 사장 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 4명과 물러나는 사장, 대주주가 추천하는 사람, 사주조합에서 추천하는 사람, 이렇게 모두 7명으로 구성이 된다. 이들이 모여서 투표로 결정하니까 사외이사의 권한이 막강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장의 임기는 3년이고 두 번까지 연임할 수가 있다. 그러나 사장이 된 사람은 자동적으로 연임하는 것이 아니고 실적이나 평가가 나쁠 경우는 단임으로 끝날 수도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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