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라면 ‘한진해운 사태’ 또 올수도...>

지난 8월 26일 한국선주협회가 있는 해운빌딩 대회의실에서는 ‘한진해운 파산 백서 연구 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백서 만들기 작업에 돌입한지 2년만에서야 겨우 연구결과 발표회를 갖게 된 것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 사태가 일어난지 3년만에, 좀 늦기는 했지만 이 사태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연구 끝에 백서가 작성됐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이날 발표회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100여명의 해운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지만, 해양수산부 관계 공무원들과 해운산업과 관련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참석을 꺼려했을 것이라고 추측은 해보지만, 해운산업의 장래를 걱정하는 입장에서는, 해운산업의 원군이 되어줄 ‘우리세력’이 없었다는 점에서 힘이 빠지는 일이었다.

백서 연구 결과 발표회는 한진해운 사태에 대해 한국해운물류학회에서 경영측면에서 연구 분석한 결과를, 그리고 고려대학교 해상법연구센터에서 법률측면에서 연구 분석한 결과를 각각 발표했다. 이날 발표에서는 한진해운이 파산하게 된 원인이 몇 가지로 분석됐는데,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정부의 해운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과 구조조정 전략의 부재, 그리고 해운산업의 특성을 도외시한 부채비율 200% 규제 등을 꼽았다. 한마디로 정부의 해운산업에 대한 이해부족과 잘못된 대응이 한진해운 사태를 촉발한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물론 한진해운 경영진의 전문식견 부족과 잘못된 선대운영 전략 등도 한진해운의 경영을 악화시킨 주요인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이날 발표의 결론 부분에서는 경영측면에서 7가지의 정책제안을 내놓았다. 우선 먼저 국책 및 민간연구소에서 한국형 해운시황예측기법을 개발하고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다음으로는 해운선사가 위기를 맞았을 때 컨트롤 타워를 하는 정부당국을 지원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신설할 것과 해운산업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하고 제도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것 등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선사에 대해서는 선대 확장 전에 마케팅과 영업력을 확보할 것과 선대운영에 있어 효과적인 전략을 펼 것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정책 제안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다시는 한진해운 사태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몇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하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것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진해운 파산 사태를 극복하고 한국해운을 안전하고 밝은 미래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시정해야 할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가장 먼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해운계 전체, 전체 해사관련 클러스터에서 각 부분간에 일치단결된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날 발표회 말미에 일반 청중들 가운데 일부가 “한진해운 사태에서 한진 임직원들간에, 그리고 정부와 업계간에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는 지적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진해운뿐만 아니라 많은 부정기선사들이 간판을 내리고 사라져 가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은 해운관련 협회와 정부당국, 연구기관, 전문언론간에 긴밀한 협력체제가 이뤄지지 않은데도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정말 해사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각 부문간의 협력이 너무도 절실한 상황이고, 이것이 한국해운 발전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두 번째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해운시황을 예측하고 거기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연구기관을 하나로 통일하여 제대로 된 연구를 하고, 그 연구 결과를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백서 연구 발표회에서는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말은 했어도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연구기관이 존치돼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정부당국은 현재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산업진흥센터를 공식적인 해운시황 연구기관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초기에 해운시황을 연구하기 위한 연구기관으로 설립된 바 있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역할은 어찌 되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1984년 해운산업합리화 조치로 인해 국적선사들간에 통폐합이 이뤄지고 구제금융이 지원됐을 때를 되돌아보면, 당시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어렵게 된 가장 큰 이유가 “해운시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많은 선박을 도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향후 한국해운을 재건시키기 위해 시황 연구기관인 ‘한국해운기술원(KMI의 전신)’을 설립했던 것이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엄습했을 때 이를 제대로 예견하지 못하고 우리 해운산업은 또다시 파산의 위기를 맞게 되고 말았다. 지금과 같은 어정쩡한 상태라면 다시 한진해운 파산 같은 큰 위기가 닥쳐온다고 해도 그 위기를 예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분명 문제가 있으니, 연구기관을 단일화하고 긴밀한 産學硏 공조체제를 갖추기 바란다.

한진해운 파산에 대한 백서 발간은 이 같은 참담한 사태를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고, 한국해운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 미래의 세계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중차대한 일을 시작한 것이 민간부문의 한 장학재단이라고 하니 그 공로를 치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계일주 선장’으로 유명한 故 배순태 회장께서 ‘한진해운 사태에 대한 백서를 만들어 교육자료로 활용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 뜻에 따르는 ‘해봉 꿈이룸 장학재단’이 한국선주협회와 공동으로 경비를 대서 백서 제작 작업을 시작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한 숭고한 뜻이 잘 수렴이 되어 우리 해운산업이 부활하는 촉매제가 됐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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