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현 박사(Penb46@naver.com)

▲ 윤민현 박사

1. 대변환(disruption)의 출발점

2008년 9월 15일은 미국 4대 투자은행중의 하나이자 15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리먼브라더스가 뉴욕 남부지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한 날이다. 한마디로 도산한 것이다. 세칭 리먼사태가 발생한지 11년이다. 신용위기로 인해 전 세계 경제 활동은 급랭했고 해운시장은 한마디로 폭락했다.

케이프사이즈 핵심 화물인 철광석 가격이 톤당 180달러로 하락한 가운데 재고 비축을 위한 급격한 수요증가와 항만의 혼잡(congestion)까지 겹치면서 2008년 6월 한때 하루 30만 달러에 육박했던 용선료는 리먼사태 불과 한달만인 10월 6천달러로 추락하더니 11월에는 2천달러까지 곤두박질했다. 일생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이른바 Perfect Boom에서 Perfect Storm으로 내몰린 것이다.

그러나 파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금융위기로 시장은 이미 바닥으로 추락했는데도 금융위기 직전까지 멈추지 않았던 선주들의 무절제한 발주로 한때 현역선단의 60%를 초과했던 엄청난 발주량(backlog)으로 인해 시장은 이미 추락했음에도 신조선은 그 이후 3년 동안 계속 쏟아져 나왔다.

2005~2008년 발주된 선박들이 금융위기 직후인 2009~2011년까지 집중적으로 인도되고 있음에도 2009년 30년만에 처음으로 해상 물동량이 평균 4% 감소(석유 -3%, dry bulk -3%, 컨테이너 -9%)했으니 운임시장의 추락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컨테이너 해운은 금융위기 불과 한달후인 2008년 10월, 그동안 정기선해운시장의 경영과 운임시장 안정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전통적인 해운동맹이 EC에 의해 폐지되면서 글로벌 컨테이너 해운시장은 최악의 상황으로 추락했고 컨테이너 선박의 계선비율은 2009년 말 한때 12%까지 치솟았다(현재는 2% 이하).

폭락하는 세계 경기에 놀란 국가들이 비상대책으로 대규모 재정을 동원, 부양정책에 나서는가 하면 바닥으로 하락한 원자재 값에 이끌려 일부 국가에서는 대량 재고확보에 나서기 까지 하면서 시장은 또 다시 혼조세를 보였다. 2009년 하반기 들어 중국이 세계 경기의 급냉 현상으로 철광석 값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대량 매입에 나서면서 케이프 요율이 다시 일일 7만 달러까지 상승했다. 이러자 시황회복에 대한 성급한 기대감을 갖게된 선주들은 2010년,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다시 대량 발주에 나서면서 과잉현상을 더욱 악화시켰다. 2011년 한해 동안 선복량은 9% 증가했으나 수요는 3~4% 수준에 머물렀다. 1~2% 수급의 불균형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운임시장의 속성상 한해동안 수급 격차가 5% 이상 벌어졌다는 사실은 시장의 운임이 전적으로 하주의 통제로 넘어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파장은 해운업계 뿐만이 아니었다. 시장의 급냉 현상으로 선가가 폭락하자 해운, 금융, 조선 등 도처에서 문제가 속출했다. 몇 년간 지속된 호황에 이끌려 우후죽순격 설립된 조선소들은 금융위기의 파장을 견디지 못해 대규모 도산 사태를 초래했다. 자금난에 처한 선주들은 선가를 제때 조달하지 못해 계약이 취소되고 완공된 선박을 조선소가 경매 처분하거나 어려운 협상을 통해 인도를 연기하는 등 해운과 조선 모두에게 엄청난 혼란을 초래했다.

금융권은 LTV(Loan to Value) 약정 이행을 선주에게 요구하면서 신조선 선가에 대한 지급보증을 기피하는가 하면 분할납부중인 선가(Installment payment)에서 잔여 선가분납금 납부를 거부하는 현상까지 발생한다. 시장은 폭락했고 선가도 반토막된 상황하에서 호황기에 체결된 고선가의 선박을 인수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게 된 것이다

2009년 초부터 조선소와 계약 취소, 선가조정, 인도연기 등을 협상하기 위해 굴지의 대형 선주들의 한국방문이 줄을 이었고 서울 L호텔은 이들의 회의장소 주선에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한국 조선업계의 반응은 그렇게 우호적일 수 없었다. 선주들의 요청을 수용할 경우 조선소 전체의 공정을 재조정해야 하는 등 조선소측 나름의 사정도 있겠지만 급격한 원화 가치하락으로 인한 후유증도 조선소들의 입을 무겁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당시 한국조선업계의 총 수주물량은 대략 2천억 달러로 그중 재협상의 주대상인 2008년 수주분량은 대략 595억 달러정도였다(H. Clarkson). 관련업계 발표에 의하면 원자재 확보용 약 30%를 제외한 나머지의 90% 정도(전체의 약 63% 정도)가 환리스크 관리차원에서 이미 선물환 거래가 이루어 졌다는 것, 즉 선가의 상당부분을 미리 당겨썼다는 이야기이고 보면 해약으로 인해 선주에게 환불해주어야 할 선가가 있다면 그만큼 달러를 사서 갚아야 한다. 이와 같은 상황하에서 해약은 물론 선가 감액이나 공정 연기요청은 조선업계로서는 수용하기 매우 버거운 것 일 수밖에 없다.

세상은 새옹지마인가? 2004~2006년은 조선산업이 아직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급등하는 원자재 대금으로 대다수의 조선업계가 적자를 감수하기 벅차 적자수주로 인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선주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었다. 그러나 선주들은 조선소 측의 탄원을 무시하고 해운호황에 편승해 건조중인 선박을 이른바 입도선매 형식으로 넘기면서 거액의 매각차익을 향수했었지만 입장이 바뀌어 이번에는 선주들이 조선소에 선처를 요구하며 매달리고 있는 처지가 된 것이다.

막판 협상에도 불구하고 조선소, 금융권, 선주들간 이해관계 충돌로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갈등이 한계에 도달한다. 2009년 기다리다 못한 한국의 모조선소가 건조한 이란 국영선사 IRISL의 6천teu급 포스트파나막스 컨테이너선 3척(선가 척당 1억 달러)에 대해 선가 지급이 10개월 이상 지연되자(당시 미납선가의 40%) 한동안 부산 남항에 계류시켰다가 건조계약 불이행을 들어 동 선박을 경매 처분했는가 하면 당시 CMA CGM의 동급 선박 3척도 동일한 상황에 처한 후 일부는 선주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조선소가 일부 처분한 예가 있다.

회복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한국의 조선산업이 벼랑 끝에 처하자 국책은행인 KDB가 조선산업의 개편을 권고한다(부설연구기관보고서). 특히 해운호황기와 함께 우후죽순 설립된 세칭 Greenfield 조선소들에 대해 청산(wind up)하거나, 건전한 타조선소와 합병 하거나, 아니면 Block 공장으로 남는 방안 중 선택을 요구했고 결국 영남권 위주의 중소형 조선소 상당수가 문을 닫는 결과를 초래했다.

2. 무엇이 달라졌는가?

공급과잉이라는 악재를 이겨낼 수 있는 시장은 없다. 경기동향에 가장 민감한 컨테이너 정기해운은 각국의 부양정책으로 일시 반등세를 보였던 2011년 이후 다시 혼돈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시장이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첫 파열음이 한국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2016년 8월 시장의 예상을 깨고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했다. 이제까지 하주들은 한진해운 정도의 글로벌 선사라면 문자 그대로 Too big to fail로 믿어왔고 상황에 따라 정부가 구제하거나 아니면 도산을 예방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예상해왔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결단으로 이른바 대마불사의 신드롬이 일거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규모가 큰 선사라고 하더라도 재정적으로 취약한 선사는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현실 앞에서 시장은 선사 선택에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한국은 한진사태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반해 해외 경쟁선사들은 한진사태 이후 전개되고 있는 시장의 상황에 고무돼 있었다. 운임은 소폭이지만 상승무드를 보였고 시장의 수급균형도 조금씩 개선됐다. 한진사태로 당시 한진해운 지배하에 있었던 세계 제7위의 선복량이 시장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게 됨에 따라 주요항로에서 수급의 균형이 조금씩 개선돼가고 스팟 시장 요율도 탄력을 받게 되면서 각 선사들의 연간계약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최대 수혜자로 알려진 Maersk의 경우 한진사태 직후인 그해 3/4분기 수송실적이 전년대비 11% 증가했다.

한진사태의 쓰라린 경험을 사라지지 않는 한 건전하고 강한 선사(Strongest and Biggest)를 향한 하주들의 선호현상은 일시적인 현상이 될 수 없고 이러한 쏠림현상이 장기화되는 한 약체 소형선사(Small player)들은 진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됐다.

리먼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와 한진사태는 그동안 싼 운임만을 추구해왔던 하주들로 하여금 Counter-party risk를 회피하기 위해 크고(Bigger) 강하고(stronger) 지속가능한(sustainable) 선사, 이른바 안전한 선사(safe-haven company)로 쏠리면서 재정적으로 건전한 선사를 선호하는 전환점을 이루게 했다. 한진사태 이후 수면하에 잠재해왔던 이러한 인식이 가시화된 것은 2M 특히 Maersk의 하주들로부터 비롯됐고 한진사태는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해외 주요경쟁선사들의 실적개선에 기여했다. 한진사태는 결국 해운시장에 또 다른 유형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촉진한 것이다.

리먼사태가 해운시장의 구조적 취약점을 노출시킴과 동시에 시장의 재편을 이끌어낸 출발점이었다면 2016년 한진사태는 전세계 정기선 해운사, 하주, 협력사들은 물론 경쟁당국자까지 정기해운사의 재정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실증적 사례가 됐다.

3. 경쟁 환경

현 해운시장의 3대 정기항로인 태평양, 유럽, 대서양 항로의 특성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Headhaul에서 얻은 운항이익을 동원해 Backhaul의 적자를 보전하고 있으며 운임 수준이 비교적 양호한 항로가 태평양이라면 공급과잉의 정도와 운임의 취약성이 가장 큰 항로가 유럽항로다. 따라서 상위 선사들의 실적을 살펴보면 유럽항로의 실적이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향후 해운시장의 재편에 중대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 선사는 세계 제3위 Cosco다. Cosco는 국영기업으로서 해운경영을 잘해 국가에 기여하는 것보다 최대 하주인 중국의 수송비를 절감하는 것이 더 국익에 부합한다는 인식하에 굳이 국제해운시장의 장기침체를 안타까워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중국조선소가 선박을 계속 건조토록 해 조선산업의 고용을 유지하고 선복과잉의 우려가 있더라도 신조된 선박을 Cosco 등 국영선사에 투입, 선단을 늘려서 중국의 수출입화물의 수송비를 인하하는데 기여한다면 굳이 운임시장의 회복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상업 베이스로 운항하고 있는 유럽선사들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할 수 있다면 ‘크고 강한 중국해운 건설’을 위해 일석이조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Cosco는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선대를 확장해가며 자국의 조선과 무역물량을 동원한 정책지원이라는 막강한 배경으로 때로는 시장의 평균을 하회하는 운임도 마다하지 않고 시장을 공략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만 가지고 글로벌 컨테이너 정기 해운시장을 지배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완제품 혹은 반제품을 주종으로 하고 있는 컨테이너 정기선 화물의 무역조건(trade terms)은 주로 수입자(혹은 Buyer)가 운송계약(F)이나 보험계약(I)을 주도하도록 구성돼 있다. 글로벌 하주들의 공통 성향은 대다수가 낮은 운임도 좋지만 전체 도착지 가격(CIF)을 기준으로 할 때 해상운임(port-to-port)이 점하는 비율은 CIF가격의 2% 내외에 불과하다. 따라서 하주들은 물류망 전체의 코스트와 효율 차원에서 서비스의 신뢰도와 불측의 리스크 등 이른바 비정상상태(Irregular)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선박이 지연되거나 어떤 사유로 항해기간이 길어질 경우 그로인한 연계운송의 차질이나 재고관리상의 문제로 지출되는 추가비용의 크기가 해상운임의 차이를 훨씬 초과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하주가 선사를 선정함에 있어 보다 크고 안전한 선사를 선호하고 있으며 고객의 시각에서 볼 때 유럽선사들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더구나 한진사태 이후 이러한 성향은 더욱 강해졌다. 유럽의 수입화물 운송은 타 어느 지역보다 포워더의 의존도가 크다. 굳이 내셔널리즘이 아니더라도 유럽의 대형하주나 포워더들이 유럽선사를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으며 유럽선사들이 선방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등 아사아권 조선산업의 설비과잉과 그로인한 선복과잉, 유럽선사들의 상대적으로 강한 재정건전도, 유럽하주들이 주도하는 선복수배권(선사선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아시아-유럽항로에서 경쟁력 차이가 중국 국영선사와 유럽 Top3를 제외한 나머지 선사들의 입지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경쟁력 차이가 단기간에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며 결국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시장의 재편흐름이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권 선사들의 진로에 역풍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4. 경쟁법의 동향

① 비우호적 시각

전통적으로 글로벌 해운산업분야에서 유럽이 강세를 유지해왔지만 해운산업을 대하는 유럽당국의 정서가 반드시 친해운적인 것도 아니다. 유럽선주들은 오래전부터 EC(European Commission)가 정기선사들이 고객들의 이해(Interest)를 헤치는 운임담합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하며 FEFC(Far East Freight Conference)와 TACA(Trans Atlantic Conference Agreement)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결국 유렵 경쟁당국에 의해 130여년 전통의 FEFC와 대서양항로 안정화를 위해 1994년 설립된 TACA를 2008년 10월 폐지한 것도 바로 그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컨테이너선사들에 대한 EC의 기본시각은 해운동맹폐지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사들의 유착혐의 가능성에 대한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던 EC는 2011년 5월 유럽에 소재하는 14개 정기선사의 사무실을 새벽에 급습해 자료를 수거하고 이를 토대로 수년에 걸쳐 조사를 행했지만 유착의 증거를 포착하지 못한 체 끝났다.

그런가 하면 유럽의 해운 항만분야에서 세력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EU가 너무 관대한 것 아닌가 하는 지적과 함께 정기선 분야에 대해 Brussel의 경쟁당국이 감시의 눈을 떼지 않고 있으면서도 Cosco가 운임덤핑 등을 통해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유럽선사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해운에 대한 비우호적 시각은 한때 세계 해운을 지배해왔던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3월 미 법무부(Dept. of Justice)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당시 Box Club에 참석중인 Maersk의 Soren Skou회장을 포함한 글로벌 컨테이너선사의 대표들을 소환,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를 시행했다. 그러나 역시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 확보에 실패하는 등 미 법무부, FMC, Brussel 등이 줄기차게 조사를 시행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마무리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 해운업계에서는 경쟁당국자들이 정기선 해운업계를 범법용의자(suspects)로 보지 말고 정책지원으로 왜곡돼있는 시장에서 선방을 해온 챔피온으로 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선두주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중국처럼 정책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경쟁당국이 시장에서 공정경쟁(fair competition)이 이루어지도록 관리 감독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즉 경쟁은 장려하되 문제는 불공정 경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② 미국 해운개혁법(Ocean Shipping Reform Act) 개정

해운업계와 하주는 물론 정부, 항만, 터미널 등 육해상분야에 참여하는 관련자들 간에 이른바 한진사태와 같은 물류대란을 방지하고 물류 공급망(supply chain)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장치의 필요성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가 계속됐다.

한진사태로 미국 항만의 운영이 마비되자 우선 FMC는 미국 항만과 육상물류 연계망의 정상화 차원에서 비상대책을 발표한다. 즉 미국에 기항하는 얼라이언스 소속 선박들에 대해 어느 특정선사의 재정난으로 미국항의 입출항, 하역, 연계수송 등 물류시스템의 정상적인 운영이 저해될 경우 그 책임을 해당 개별선사가 아니라 얼라이언스 소속 전체 선사들에게 공동책임을 묻겠다는 취지와 함께 이를 위한 비상기금(contingency fund) 조성을 요구한다.

이어 관련 법적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OSRA-1998을 개정보완하고 2017년 12월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2018년 12월 ‘FMC Authorization Act’를 발효시킨다. 동 법의 취지는 초대형 얼라이언스에 의한 독과점을 경계하고 감독을 강화하는 내용과 함께 한진사태를 반영한 이른바 Carriers Bankruptcy 조항을 신설한다. 그 내용은 2016년 한진사태 직후 FMC가 요구한 얼라이언스 공동책임과 이를 위한 5천만 달러 상당의 Trust Fund(일명 Rainy Fund) 조성이다.

미국에서 선사의 잘못(failure)으로 항만 등에서 물류 혼란이 발생할 경우 해당 얼라이언스의 소속사 전원이 책임의 주체가 되는 만큼 향후 얼라이언스의 재편 혹은 개편이 있을 때 마다 각사는 경우에 따라 한배를 타게 될 파트너 선정에 가일층 엄격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취약한 선사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③ EU의 컨소시아 규칙

해운동맹제도의 폐지와 함께 컨테이너 정기선해운계의 마지막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EU의 컨소시아 일괄면제규칙(Consortia Block Exemption)은 그간 관련업계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5년 단위로 연장해가며 그 명맥을 유지해왔으나 2020년 4월 재 연장여부를 두고 다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하주단체와 OECD의 주장대로 완전 폐지될지 아니면 정기선업계의 요청을 수용해 재연장될지 두고 볼 일이나 현재까지 분위기로 볼 때 연장되더라도 보완 수정이 불가피 해 보인다. 만일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특정 컨소시아의 시장지배율 30%를 규정한 상한선이 하향 조정될 경우 3대 얼라이언스로 구성돼 있는 현시장의 구도에는 근본적인 재편을 유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음호에 계속>

※다음호 목차
1. 시장의 현황
2. M&A 왜 하는가?
3. 규모(size)가 중요한가?
4. M&A를 점치는 시각들
5. 재편과 소수 대형화
6.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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