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거래 감세제도 청원, 끝내 관철

▲ 박종규 회장

러한 바른경제동인회의 방향성은 설립된 이후 내놓은 첫 작품인 ‘기업인 신생활 운동 선언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선언문은 천민자본주의적 악습으로 가득찬 한국사회와 경영풍토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랜 기간 잘못된 가치관에 깊숙이 젖어있어 이윤추구만이 기업의 목적인양 생각했으며, 남을 돌아보지 않고 눈 가린 야생마처럼 확대, 확대. 확대를 위해 달리기만 하면서 가족경영, 이면거래, 탈세 등 온갖 불미스러운 관행을 만들어 왔다. 이 암세포 같은 현상을 수술하지 않고는 결코 21세기 정보화 사회로 넘어갈 수 없다”

이것은 ‘기업인 신생활 운동 선언문’ 중에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한 부분이다. 바른경제동인회는 설립 이후 활발한 활동을 벌여 뜻있는 많은 기업의 참여를 유도했다. 30명으로 시작한 이 동인회는 시작연도인 1993년말에 회원 수가 80여명으로 늘어났고, 4년 후인 1997년에는 회원수가 무려 180여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학계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대기업 계열사의 전문경영인들도 새롭게 회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이 바른경제동인회는 사단법인으로 전환되면서 초대 회장에 조순 박사가 추대됐고, 제2대 회장에는 김진현 당시 문화방송 사장이 선임됐다.

이후에는 2004년에 제3대 이사장으로 내가 다시 선임됐고, 나는 그 후 2015년 3월말에도 제5대 회장으로 선임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가 초대 대표간사를 했던 것 까지 포함하면 무려 3번씩이나 대표직을 맡은 셈이다.

바른경제동인회의 설립목적은 “올바른 기업윤리의 확립, 건전한 노사관계의 확립, 공정한 경제질서의 수립 등의 과제 실현을 위해 신기업운동을 전개하고, 필요한 정책을 개발해 바른경제 실현에 기여하는데 있다”고 돼 있다.

이 바른경제동인회가 이룩한 성과들도 많이 있다. 특히 대정부 정책건의와 입법 청원 등을 많이 해왔는데, 이중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이 1995년과 1996년에 탈세 방지를 위한 소득법 개정안(일명 카드거래 감세제도)을 정부와 국회에 청원한 것이다. 정부나 언론, 학계 등에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99년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

“사회 개혁에 저작권이란 있을 수 없다”

카드거래감세제도로 알려진 이 소득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봉급생활자가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30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해주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 도입으로 신용카드 결제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거래 관행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고 할 수 있다. 무자료 거래나 현금거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경제의 투명성은 아주 높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신용카드거래 공제제도’는 바른경제동인회가 6년간이나 애써서 정부와 국회에 청원을 해 일궈낸 성과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바른경제동인회 이우영 이사장을 비롯한 우리는 이 제도가 우리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자랑하지는 않았다. 일부 사회단체들은 자신들이 주장했던 제도가 채택이 되면 그것을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활동의 영향력을 높이려고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 개혁에 저작권이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회제도는 특허도 아니고 저작권의 대상도 아니다. 누가 주도를 하고, 누가 이끌어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사회의 현실을 변화시켜 나가는 일이다. 광야의 목소리가 아니라 더 널리 퍼지는 메아리가 된다면 그 보다 즐거운 것은 없다는 게 우리 바른경제동인회 회원들의 생각인 것이다.

현재도 내가 이 바른경제동인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지만, 이 단체를 만들게 된 동기도 사회 정의를 실천해 보자는 뜻에서라기 보다는 우리 회사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나와 임직원들이 함께 노력해 리베이트가 없는 깨끗한 회사를 만들어 놓긴 했지만, 내가 경영에서 손을 떼어도 오랫동안 이러한 원칙이 계속 지켜질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KSS해운에 없을 때 후배 임원과 사원들이 계속해 경영을 해야 할 텐데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생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배를 한 두 척 늘리는 것만이 회사에 기여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 후배 경영인들이 리베이트 유혹에 안 빠지도록 뒷거래 관행을 없애주는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이 운동은 거창한 사회정의 실천 운동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우리 회사의 경영 전통을 바르게 이어가도록 하려는 ‘사회 환경 조성 운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항상 작고 깨끗한 것만 선택, 후회 안 해

리베이트의 유혹은 참으로 무섭다. 사업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회사를 크게 키워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크게 확장하려고 하면 돈이 필요할 것이고, 때로는 정치자금을 내놓아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꼭 한번 해야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경영자도 분명 나올 수 있다. 사실 나도 이런 유혹에 여러 번 빠졌었다. 고민고민 하다가 결국 그만 둔 것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나의 경우 크고 더러운 것을 선택할 것이냐, 작고 깨끗한 것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기로에 항상 서 있었다고 생각한다. 큰 것은 누구든지 하려고 덤벼든다. 그러나 깨끗한 것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나는 항상 작고 깨끗한 것을 선택해 왔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남아 있는지도 모르지만…

큰 것을 하려면 돈을 만들어야 하고, 비자금도 만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크지를 못한다. 항상 작고 깨끗한 것만을 고집했으니 매년 조금씩 밖에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니 50년에 가까운 우리 회사가 겨우 2000억원을 조금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선택해 걸어온 길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연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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