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미래 밑그림 다시 그려야”

▲ 정우영 변호사

민간선박금융 활성화위한 해진공 역할 강조
선화주 공정한 경쟁위한 강력한 대책 필요

선박금융 전문변호사, 한진해운 파산을 지켜봤던 사외이사, 해양진흥공사 기능과 역할을 설계한 전문가, 이 3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유일한 이가 법무법인 광장의 정우영 대표변호사다. 오랫동안 제3자적 입장에서 한국해운을 지켜봐왔던 정우영 변호사에게 한국해운이 당면한 문제가 뭔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해법을 물었다.

한국해운의 가장 아픈 손가락일 수 있는 현대상선 정상화 문제에 대해 정우영 변호사는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미래 밑그림을 솔직하게 다시 그려보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경제와 해운업에서 현대상선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면 빨리 다른 대안도 찾아 봐야한다는 지적이다.

정변호사는 이외에도 해양진흥공사가 설립된 이후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부작용에 대한 진단, 해운재건계획에 실효성을 갖기 위한 대책, 선사와 선주의 혼재로 발생하는 문제, 향후 바젤Ⅳ 도입에 따른 선박금융 패러다임 변화 문제 등에 대해 평소의 생각을 진솔하게 털어놨다.

-한진해운이 파산한지 벌써 3년째다. 前한진해운 사외이사로서 한 말씀 부탁드린다.

=너무나 아깝고 아쉽다는 마음뿐이다. 지금 현대상선 지원하는 만큼 한진해운을 지원했으며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 당시로 되돌아가 보면 정부나 금융위원회 모두 한진해운을 파산시킬 생각은 없었다. 다만 법정관리를 통해 돈 있는 새로운 주인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당시 정부는 법정관리를 통해 회생했던 대한해운, 팬오션과 마찬가지로 한진해운도 법정관리를 통해 충분히 회생이 가능할 것으로 본 것 같고 실제로 가능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미국 철도회사와 CY에서 요구한 운송비, 하역비 등 연계운송비용에 대한 지급보증을 채권단에서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후 한진해운은 선박과 컨테이너가 압류되면서 파산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한진해운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일본항공은 일본정부가 연계운송비를 지급보증하면서 도산법 체제에서 살아났다. 양사가 처한 상황이 거의 똑같았는데 운명은 연계운송비 지급보증에서 갈리게 된 것이다.

-현대상선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디얼라이언스 체제에 들어가고 2만 3천teu급 메가 컨테이너선 인도가 시작되면 과연 현대상선이 정상화될 것인가?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이 공존하는데 저는 일단 단기에 정상화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당장 올해도 흑자 전환이 힘들 것이다. 내년이라고 크게 달라진다는 볼만한 것이 거의 없다. 곧 정상화 될 것이라고 부푼 기대가 무너지면 그 실망은 비난으로 바뀔지 모른다. 그때도 계속해서 국민혈세를 부어 넣을 수 있을까?

이 시점에서 누군가는 현대상선의 미래 밑그림을 그리고 정부도 여기에 맞춰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상선의 미래 밑그림은 몇 가지 정도를 고려해 그려야한다. 첫 번째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현대상선이 최소한 향후 3년간 자금이 얼마나 필요하냐는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필요한 자금이 대략은 나와 줘야 정부도 예산을 책정하고 준비를 할 것 아닌가?

두 번째는 현대상선이 부족한 게 무엇인지를 뽑아내는 거다. 한진해운과 같은 컨테이너 전산시스템이 없는지, 영업망과 조직이 무너진 게 문제인지, 재무구조상 조달 비용이 높은 게 문제인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것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분석해서 부족한 것을 해결해 줘야 한다.

세 번째는 현대상선과 SM상선을 원양항로에서 계속 경쟁시킬 것인가다. 양사 체계가 좋은지, 아니면 통합이 좋은지 득실을 따져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대상선이든 SM상선이든, 원양선사가 피더망을 구축하기 위해 인트라 아시아 시장에 직접 들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한국해운연합(KSP)과 연합해야 하는지, 각각 득실을 분석해 빨리 결정해야 한다.

-현대상선 정상화를 위해서는 클린컴퍼니로 가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대상선을 클린컴퍼니와 베드컴퍼니로 나눠서 정상화 시키는 방법은 이미 논의됐지만 채택되지 못했던 안이다. 사실 현대상선의 고용선 비용 구조를 떨어내려면 법정관리를 보내는 방법과 베드컴퍼니로 나누는 방법밖에 없다.

현대상선을 클린컴퍼니로 바꾸는 방법은 채권자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더구나 이미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갔고 2만 3천teu급 메가컨테이너선의 선박금융도 현대상선을 중심으로 거의 마무리가 됐기 때문에 어렵다고 본다.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현대상선을 정상화 시키겠다면 앞서 지적했듯이 향후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미래 밑그림을 빨리 그려서 준비를 해야 한다. 그 미래 밑그림을 정부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면 현 체제로 가면 되고 어렵다고 하면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과거 변호사님이 그렸던 것과 현재 해양진흥공사의 모습은 어떤 차이가 있나?

=우리가 그렸던 해양진흥공사는 재무적인 측면에서 파이낸셜 리소스의 다양화, 경기역행적 투자 등이었다. 그런데 공사가 설립된 이후 모든 파이낸셜 리소스가 공사를 통해 선박금융을 하려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시중은행은 여전히 선박금융 참여에 미온적이고 공사가 보증을 제공하면 참여를 검토해 보겠다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이 모든 것은 공사가 의도했던 게 아니다. 그럼에도 모두 공사로 몰리면 선박금융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공사가 초기에 우량선사에게 보증을 제공한 것이 이런 사태를 야기한 것 아닌가?

=초기에 우량한 딜을 했다고 공사를 비난할 수는 없다. 공사로서는 좋은 딜로 시작해 안정화 시키고 이후 다소 위험한 딜을 인수해 나름의 포트폴리오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해양보증보험 시절 보증 가능 선사수가 상위 20개사였지만 공사는 60개사로 확대했다. 이것은 하위 40개사와의 딜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공사로는 상위 20개의 안정적인 딜과 하위 40개의 위험한 딜을 서로 균형을 맞춰 운용할 수밖에 없다.

-공사 리스크가 너무 커지는 것 아닌가?

=공사는 원래 리스크를 떠 안으라고 만든 기관이다. 다만 제가 처음에 기금으로 제안했을 때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이 클락슨과 같은 데이터 센터였다. 리스크를 인수하려면 미래 시장을 보고 경기 역행적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일반 금융기관이 못하겠다고 하니 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한 것이다.

기금의 경우 레버리지 20배 이상 쓸 수 있지만 공사는 금융위 지침에 따라 자본의 2배 이상은 쓰지 못한다. 2배 이상 쓰면 위험하다는 얘기다. 공사가 위험을 인수할 때 반드시 5년 뒤, 10년 뒤 괜찮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공사가 업무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지적도 있다.

=공사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현재 공사의 업무를 보면 투자, 보증, S&LB, 스크러버 이차보전, 폐선보조금, 해운시황 예측 등 너무 많다. 앞서 선박금융이 공사로 몰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운과 관련된 모든 업무가, 의도치 않았겠지만, 공사로 집중되고 있다.

시장에서 충분히 가능한 것을 공사가 하면 안된다. 시장에서 못하는 것을 하라고 공사가 만들어진 거다. 스크러버나 폐선보조금 같은 업무는 충분히 시장에서 할 수 있다. 금액도 크지 않고 해수부 정책이니 연안여객선 현대화 펀드처럼 선박투자회사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사실 공사는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선박금융을 비롯해 다른 시장의 기능들이 작동하지 않는 게 문제다. 그럼에도 공사가 금융기관들이 선박금융 창구를 열 수 있도록 좀 더 움직여 줄 필요가 있다.

-해운재건계획은 어떻게 평가하나? 부족한 것은 없나?

=전체적인 방향은 맞는 거 같은데 국적선 적취율 제고 문제는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해수부와 선주협회가 적취율 제고를 위해 우수선화주인증제도를 도입하고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우수선화주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방안으로 국적선 적취율이 얼마나 제고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화주와 선사들간의 싸움에서 선사가 불리하지 않았던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화주의 지위가 월등이 높기 때문에 애당초 선화주간 정당한 싸움이 될 수가 없다. 양측이 정당한 싸움을 하려면 결국 보다 강력한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우수선화주 세제혜택으로는 약한 것 같고 좀 더 강력한 정책적 지원 대책이 나와야 균형이 맞을 것 같다.

가령 해운회사에 투자한 화주에게 투자금 만큼 텍스리스(과세이연)를 적용, 가속감가상각으로 법인세를 줄여주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데 화주가 과세이연 혜택을 받으려면 투자한 해운회사가 10년 이상 살아 있어야 하니 자연스럽게 물량을 주어 살릴 수밖에 없다.

최근에 근해선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운임담합행위 조사도 결국 그 시원은 화주들의 힘이 선사들에 비해 월등히 강했다는 것에서 연유한다. 항공업계의 경우 항공사들이 비슷한 수준의 유류할증료를 부과한도 해서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왜겠는가?

균형이 잡혀야 정책이 추진되지 균형이 깨지면 시행이 불가능하다. 해운재건계획도 방향은 맞지만 선화주 균형이 무너져 있으니 백약이 무효다. 선화주 균형을 잡아줄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근해선사 통합 문제는 어떻게 보나?

=통합이 세계적인 흐름인 것 같다. 머스크라인도, 일본선사도, 중국선사도, 얼라이언스까지 통합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심지어 로펌도 통합해서 몸집을 불린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선사들이 통합으로 몸집을 키우는 데 우리 근해선사들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작은 시장에서 경쟁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통합으로 가는 게 맞는 흐름인 것 같다. 다만 통합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운업계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가 있다면?

=해운업이 투자산업이기는 하지만 과연 진정한 해운업자가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선박이라는 게 잘 아시다시피 중장기 투자다. 남의 돈 빌려서 배를 지어 10년 운항하면서 원리금 다 갚고 남는 잔가가 자기 꺼다. 잔가가 보통 30~60% 정도 남으니 꽤 남는 장사다.

문제는 선사들이 자기자본을 조금 넣고 레버리지를 많이 일으킨다는 점이다. IMF, 2008년에 문 닫은 선사들의 공통 팩터 중 하나가 자기자본율이 너무 낮다는 사실이다. 자기자본비율이 낮으니 가격 벨류에이션 변동성에 쉽게 노출된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투자가 아니라 거의 투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컨테이너선의 경우 정시성이 생명인데 레버리지를 높게 잡아 놓은 것을 보면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가끔 정책을 짤 때 어디까지가 해운선사이고 어디까지가 선박투자자인지 모를 때가 있다. 선박투자가 우리도 해운선사이니 똑같이 도와달라고 한다. 이것은 내가 네 돈 갖고 부동산 사서 투기하고 싶은데 왜 안도와 주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해외는 오퍼레이터인 선사와 투자자인 선주가 어느 정도 구분되는 데 우리는 선사와 선주의 개념이 모호하고 구별도 잘 안된다. 선주와 선사가 혼재돼 있기 때문인데 이제는 두 개념을 분리할 때가 된 것 같다.

선주와 선사가 가려져야 정책지원도 투명하게 집행할 수 있을 텐데, 사실 정부 정책은 선사에게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자기돈 가지고 배 장사하는 이들을 굳이 정부가 나서서 도와줄 이유가 없다.

-선박금융부문에서 개선할 게 있다면?

=우리나라 선박금융의 패러다임의 변천을 보면 과거 1990년대는 은행이 110% 선박금융을 해줬다. 자기자본 없이도 배를 지을 수 있던 때였다. 그러다가 IMF가 시작되면서 은행에서 선가의 70% 정도만 대출해주고 나머지는 자본시장에서 조달했다. 2008년 위기 이후에는 자본시장에서 조차 들어오지 않아 부족한 부분을 산은과 수은 등 정책금융기관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시중은행과 정책금융기관이 결합하는 게 그나마 이상적일 수 있는 데 지금은 시중은행도 빠지고 정책금융기관과 정책금융보증기관만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와 비교하면 굉장히 왜곡된 모습라고 볼 수 있는데 문제는 지금과 같은 구조가 다시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도입 논의가 한창 진행중인 은행의 회계 원칙인 바젤Ⅳ 때문이다.

바젤Ⅳ가 도입되면 은행들은 선박금융을 비롯한 프로젝트성 투자에 대해 대손충당율을 높게 책정해야만 한다. 대손충당율을 높이면 이자율이 너무 높아지기 때문에 은행들은 사실상 선박금융에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ABN암로를 비롯한 유럽계 은행들이 선박관련 여신을 매각하는 등 선박금융 익스포저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바젤Ⅳ 때문이다.

과연 바젤Ⅳ가 국내에 도입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만약 도입된다면 그나마 해양진흥공사 보증을 통해 선박금융에 참여했던 시중은행들이 선박금융에서 아예 손을 떼게 될 것이다. 해운처럼 기간산업에 해당하는 철, 에너지, 물류 이런 쪽은 정책금융기관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고 부족한 부분은 증권시장이나 자본시장에서 고비용으로 조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선박금융 패러다임이 또다시 완전히 변화하게 되는 것인데 바젤 4를 도입 후 선박금융 패러다임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해양진흥공사가 만들어진 것은 국적선사에게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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