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통합 필요하나 자율에 맡겨야”

▲ 윤민현 박사

선화주 상생, 실현 가능한 방법 찾아야
정부지원으로 성장하겠다는 기대 버려야

한진해운 출신으로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을 설립하기도 한 윤민현 박사는 해운원로이지만 본지에 ‘윤민현칼럼’을 정기적으로 게재하면서 두터운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인기 칼럼리스트이자, 아직도 국내외 해운산업의 흐름을 체크하고 있는 해운전문가다.

한국해운신문 창사 30주년을 맞아 진행한 특집 인터뷰에서 윤민현 박사는 국적선사의 통합을 묻는 질문에 ‘통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국적선사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윤민현 박사는 통합이 필요하다고 과거와 같이 국적선사간 통합을 정부가 강요할 명분도, 수단도 없으며 차라리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시그널에 선사들에게 전달하는 게 통합을 촉진시키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윤민현 박사는 또한 출범 1년째를 맞는 해양진흥공사가 해운재건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금융지원으로 부족하며 국적선사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대책을 추가로 마련해 함께 추진해 야한다고 지적했다.

-창사 30주년 맞은 한국해운신문에 격려의 한 말씀 부탁드린다.

=한국해운신문의 창사 30주년을 축하드린다. 해운신문이 30년간 해운업계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왔고 해사정론지로서 확고한 자리 매김을 해왔다. 앞으로 해운신문이 초심을 잃지 않고 나아가길 기대하면서 몇가지 부탁을 했으면 한다.

먼저 시사성 있는 보도에 치중하기 보다는 선사들이 당면한 현안과 국내외 해운시장의 동향을 밀착 취재해서 보도해줬으면 한다. 두 번째는 협회나 단체의 의견을 듣는 것도 좋지만 이해당사자들의 시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소통창구 역할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해운업계와 정부를 향해 필요하다면 고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한국해운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해운의 진로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해법 찾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이후에 정부와 해운계가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정책적인 영역과 해운선사가 해야 할 경영영역의 한계를 설정하고 각자의 역할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해운재건계획에 대해 평가해 주시고 반드시 개선되거나 추가돼야 할 점이 있다면?

=정부가 해운업계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해운재건계획을 내놨다고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해봤는지 묻고 싶다. 가령 한국해운이 왜 환경변화에 취약한지, 해외경쟁선사 대비 무엇이 문제인지? 한국해운의 문제가 무엇인지? 보다 면밀하게 살핀 후 해운재건의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그러면 어떻게 재건을 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고민 끝에 내놓은 재건 방법은 시장에서 실천 가능하고 손에 잡히는 방안이라야 재건 목표를 달성해 나갈 수 있다. 가령 해운재건의 핵심인 선화주 상생을 통한 국적선 적취율 제고 방안을 들여다 보면 상생이나 공생이라는 논리는 아름다울지 모르나 실천은 전혀 다른 현실의 문제다.

벌크선은 선화주간 공생과 상생이 핵심이니 굳이 정책을 만들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고 있다. 문제는 컨테이너 정기선이다. 그동안 선화주 상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해수부와 선화주 단체가 참여하는 MOU를 체결했지만 과연 실적이 있었나?

정부와 선주협회가 우수선화주인증제도를 도입하고 우선선화주에게 5~10% 정도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과연 실효성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조특법 개정이 쉽지 않을 뿐더라 설사 통과된다고 해도 국적선 적취율 제고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

전체 물류비용중에서 5% 내외에 불과한 해상운임을 세액 공제 받겠다고 기존 SCM 체계를 바꾸겠다는 수출입 화주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해상운임이 중요한 팩터인 것은 맞고 세액공제를 해주겠다면 좋기는 하겠으나 수출입 화주들이 좀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전체 SCM의 비용 절감과 서비스 안정화다.

-해운재건을 위해 선사간 통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해운시장의 수급 상황에 대한 시각은 대동소이하다. 심각한 공급과잉 상태로 수요 부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요는 그동안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왔고 갑작스런 이변도 없었다. 더욱 큰 문제는 글로벌 경제 환경과 Trade pattern, 인구변화 등 해운외적 요인이 수요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러한 해운외적 요인 때문에 해상수요량(톤-마일)의 성장은 금세기 초부터 연간 8% 전후에서 3%대로 하락했다. 이른바 저성장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수요 팩터는 선사들의 통제영역 밖에 있다. 그러므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수요에 맞게 공급량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그동안 해운산업도 고도성장에서 하방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공급이 수요를 앞질러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결국 공급 조절을 통한 시장의 회복은 선복과 참여 선사의 수가 함께 감축돼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시장 상황에서 선사간 통합과 파트너십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선사에게 통합을 강요할 수는 없다. 통합은 한 선사의 장래와 경영권이 걸린 문제이자 비로 선주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정부주도로 통합이 가능하겠는가? 정부가 통합을 촉진시키겠다며 금융지원 등의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시장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는 것만 못하다. 정부가 통합문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시장에 정확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고 지름길일 수 있다.

-한국해운재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

=한국 해운산업이 왜 필요한 가에 대한 재정립 작업이 필요하다. 가령 과연 한국에 원양정기선사가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봐야 한다. 3면이 바다이고 제4군의 역할을 수행하며 무역활동 지원한다는 30~40년전 재래선시대 논리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도대체 한국에 원양정기선사 왜 필요한가에 대한 명시된 입장 정리가 나와야 한다.

상사적인 측면에서 필요한 건지 아니면 국방·안보차원에서 필요한 건지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상사적인 측면에서 필요하다면 철저히 시장논리에 맡겨야 할 것이고 국방·안보차원이라면 원양정기선사를 재건하고 유지하는 것은 온전히 정부의 몫이 돼야할 것이다.

현재 한국해운이 직면한 현상황에서 금융권이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한국해운을 재편하거나 축소시킬 수 있다. 채권자가 적법한 채권자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데 막을 근거가 있나? 한진해운사태에서 주무부서의 책임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정부가 한국해운선사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던 시대는 지나가 버렸고 앞으로 다시 올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해운이 장기 침체에 대비한 정책적 방어막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7월 출범한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제1목표는 한국해운의 재건이고 재건을 위한 중요한 수단중 하나가 금융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지난 1년여간 금융 활동은 돋보였지만 해운재건을 위한 고민의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구체적 방안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사가 금융논리를 고수하면서 과연 한국해운을 재건하는 것이 가능한지 고민해봐야 한다. 만약 금융논리만으로 한국해운을 재건하려 한다면 근본 접근방식부터 제고해야 할 것이다. 한국해운이 돈이 없어서, 선박이 없어서 고전해왔는가? 문제는 항상 경쟁력이었다. 즉 공사가 해운재건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금융논리+알파’로 접근해야 한다. 알파에는 당연히 국적선사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실질적인 것들이 담겨야 할 것이다.

-국제 환경규제가 점점 강화되고 있는 데 국적선사들은 어떻게 대처해야하나?

=IMO 2020과 GHG(온실가스) 2050)으로 나누어서 접근해야 한다. 2020년 연료유 황 함유량을 3.5%에서 0.5%로 강화하는 IMO 2020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은 범세계적으로 해운당국과 정유업계, 해운선사가 공동 대처해야 한다. 시행 초기 6~12개월 동안은 저유황유 조달문제와 안전성 문제, 가격문제, 저유황 사용 혹은 스크러버 장착에 따른 비용의 부담 문제 등으로 혼란이 예상되지만 1년 정도 지나면 시장은 안정화될 것이다.

문제는 GHG 2050이다. IMO는 GHG 2050을 발표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50% 감축시키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기후변화 어젠더는 국제적 과제이자 의무사항으로 GHG 2050을 충족하려면 기존 화석연료 대신 다른 연료로 대체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미 규제당국의 관심은 IMO 2020에서 GHG 2050으로 이동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의 50%로 절감하겠다는 GHG 2050 목표를 2030년으로 앞당기겠다고 나서고 있다. 영국은 지난 7월 2050 Zero Emission 국가를 지향하는 입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제 한국해운업계도 정유업계와 손잡고 지금부터라도 GHG 2050에 대비한 대체 에너지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향후 해운시황을 어떻게 전망하시고 국적선사들이 어떻게 대응해야하는가?

=시황 전망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저성장시대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한다. 앞으로 과거와 같은 연 8% 전후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수요증가에 맞춰 선복증가가 이뤄져야 시황이 회복될 수 있다.

공급 측면에서 보면 선박은 수명이 있기 때문에 급격한 감소를 기대할 수 없다. 조선산업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공급과잉 해소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 운임시장은 타이트한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침체기간을 단축시키는 방안을 이미 선두주자들은 실행에 옮기고 있다. 선박의 척수와 선사수를 동시에 줄이는 방식이다. 어차피 대세는 통합인데 선사간 수평적, 자발적 통합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침체기가 길어지면 타의에 의한 통합이 가속화될 수도 있어 국영선사 혹은 재정과 경쟁력이 튼튼한 선사 주도로 소수 대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시장 상황에서 국적선사들이 고려해야 할 것은 해운경제는 고객인 화주의 경제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다. 화주, E-commerce Trader, 당국이 해상운임이 아니라 전체 물류비용 차원에서 해운서비스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해운선사들이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나 업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국해운은 지난 70년간 300배 이상 성장했고 그동안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변화된 시장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되는지 고민해 봐야한다.

정부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해 두어야 하고 선사들의 경영과 정책의 역할도 구분해야 한다. 정부는 법과 정책의 테두리내에서만 해운시장을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부가 했을 때 더 효과적인 일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공평한 경쟁여건을 조성하고, 국적선사가 해외에서 부당한 차별 대우을 받지 않도록 방지하고, 선박안전관련 업무를 수행해야할 것이다.

해운업계는 정부로부터 정책지원을 받으려면 왜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국민과 정부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 내야만 한다. 또 해운업계가 다시 한번 명심해야할 것은 생존과 경쟁력 제고는 어차피 기업의 몫이라는 점이다. 정책의 힘으로 경쟁력을 제고해보겠다는 생각은 이제는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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