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병 경영학 박사(한국국제상학회 이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팀장)

▲ 이기병 박사(lgb1461@naver.com)

강화도보다 조금 크지만 다이버들에게는 ‘신들의 정원’으로 불리는 섬이 있다. KBS 다큐 미니시리즈 ‘인간극장’에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팔라우 미스터 김’이란 제목의 남태평양 팔라우 공화국이다(Republic of Palau).

팔라우와 한국은 이런저런 인연이 많다. 첫째 한국과 더불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다. 우리는 남북 분단과 노동기본권의 왜곡, 이념 갈등 때문에 국내법 제도가 국제 기준과 비교해 뒤처져 있다. 노동 분야에선 국가 경쟁력도 떨어져 ‘한국은 갈라파고스(Galapagos) 섬 같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일까? 과(果)가 없는데도 과장(課長)이란 직위가 있는 곳은 한국과 일본뿐이다. 여하튼 한국과 더불어 팔라우, 마셜제도 등 총 6개국이 미비준국이다.

둘째, 최근 들어 양국은 중국과 비물리적 전쟁을 치렀다. 한국은 사드(THAAD) 배치로, 팔라우는 대만과의 단교 요구가 문제였다. 중국 특유의 인민해방군, 경찰, 언론사가 합심했다. 심리전, 여론전, 법률전의 3전으로 상대의 마음을 공격하는 심리적 연성 무기로 공세 수위를 높였다. 그러나 팔라우는 “유커(游客)가 없어도 된다”며 대만과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신뢰 중시 외교를 펼치고 있다. 미국과의 확고한 안보동맹과 경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 신뢰외교의 밑천이었다.

셋째, 참치다. 참치는 한때 고양이 사료로 쓰이거나 낚시꾼들의 치기 어린 장난의 대상이었다. 냉장의 발달로 최고가 식품인 지금의 참치 역사가 새롭게 쓰이기 시작했다. 2018년 세계 참치산업 1위 생산국은 한국이다. 팔라우는 참치, 고등어, 고래, 상어 등 고도 회유성어족을 보존하려는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CPFC)의 가입국이다. 세계 최대 참치어장인 중서부 태평양 해역에서 조업국과 회원국으로 협력과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참치 운송은 한진해운 파산 이후 머스크와 CMA CGM이 독식해 영하 60도의 초저온 냉동화물 컨테이너선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 들어 현대상선이 일반 컨테이너 운임보다 수익성이 높은 ‘울트라 프리저(Ultra Freezer)’ 운항 서비스를 시작하고 있다. 부디 국민의 땀방울이 투입된 국적선사로서 현재의 ‘쪽박’을 벗어나 ‘대박’이 나기를 응원한다.

넷째, 일본을 통한 역사적 경험이다. 태평양 도서국은 문화·지리적으로 미크로네시아(Micronesia), 멜라네시아(Melanesia), 폴리네시아(Polynesia)로 구분된다. 일본은 태평양 지역을 ‘남양군도(南洋群島)’라고 불렀다.

일본은 팔라우를 태평양 제도의 행정중심지 및 해군의 주요 기지로 삼았다. 팔라우 군도에서 벌어진 펠렐리우(peleliu) 전투는 태평양 전쟁에서 투입된 병력 대비 사상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전투였다. 팔라우 땅에도 예외 없이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원된 우리의 조상들이 있었다. 팔라아의 수도 코로르의 항만·도로공사에 한인 노동자들이 투입되어 아주 심한 노역에 시달렸다. 하도 힘들어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내면서 건설된 다리가 원주민들에 의해 붙여진 ‘아이고 다리’다.

얼마 전 이곳 팔라우에서 일제 강제동원희생자 유족 국외추도순례가 거행됐다. 필라우 공화국 인근지역 강제동원 희생자를 위한 추도식과 격전지 순례 등을 필자가 몸담고 있는 재단에서 주관한 행사였다. 그나마 팔라우에는 희생자 영령들을 추모하는 위령비와 한국인 희생자 추모공원이 있어 먹먹한 가슴을 조금이나 달래볼 수 있었다.

팔라우, 필리핀 동쪽, 마셜제도가 속한 미크로네시아는 세계 1차 대전 이후 일본의 신탁통치를 받아 일본 문화가 사회 다방면에 남아있다. 주민들도 일본계가 많아 일본의 지원도 많이 받고 있다. 일본은 태평양 지역을 해상교역과 미래 개척지로 생각해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었다. 지금도 일본은 외무성 소속 해외공보문화원과 ODA(공적개발원조)를 밑바탕으로 ‘공공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치며 전범 국가 인상을 벗고 있다.

실 예로 일본이 태평양 지역에 건립한 위령비를 보면 침략국 이미지를 깨끗이 세탁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의 애도 등으로 아주 평범한 연출을 하고 있다. 우리도 태평양 도서국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프로포즈를 할 필요가 있다. 참치 등 풍부한 어업과 해양자원의 공급지며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넓은 지역이라 선박 운항시 해상 안전보장 확보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어떤 이는 “위안부는 매춘”이라고 한다. 가끔씩 세상에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 같은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위안부를 매춘의 일종으로 보는 것은 학문의 자유라고 언급한다’면 우리들 뇌리 속에 찰나(刹那)의 순간처럼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1996년부터 우리는 초등학교에 다닌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학교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일본은 1941년부터 민족말살정책으로 보통학교를 국민학교로 변경했다.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일원이 되라고 말이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지금의 초등학교로 개명했다. 역사를 보는 마음 속 엉덩이에 뿔난 사람은 있어도 현재 대한민국에 국민학교는 없다.

팔라우 섬을 제일 먼저 밟은 한국인들은 강제 동원된 군대 위안부였다. 그들은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가 되어 ‘빵빵가루’라는 천한 호칭으로 불렸다. 태평양 지역에서 일본군 사망자 절반 이상은 전투 때문이 아니라 굶어 죽었다. 그런 곳에서 인간 이하의 천대를 받으며 군인들이 많이 찾아온 날은 속옷 입을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동물원에 잘 어울리는 동물 없고 어항 속에 살고 픈 물고기는 없으리라.’ 사람도 1평 남짓한 비닐 천막 속에서 지내기 좋아할 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의 사무실 근처에 있는 소녀상 지킴이들은 일 년 내내 그리 산다.

최근 논란이 되는 ‘위안부 매춘과 식민지 근대화론’은 구리다(굳이 듣고 싶지 않다). 구한말(舊韓末) 대원군과 민비(명성왕후)의 갈등은 우리의 역사를 분열시키고 후퇴시킨 백기 내린 사건이었다. 후발국으로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를 극대화해 ‘한강의 기적’이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우리가 만든 청기 올린 사건이었다.

청기만 올리고 꽃길만 걷기도 바쁜 게 우리 세상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이듯 사람도 다 똑같을 순 없다. 다만 도민준 같은 분들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의 조선소에서 만든 배로 참치 조업과 운송을 하고 부산항에 입항해 새벽 배송을 통해 식탁에서 만나는 팔라우의 참치 맛을 그려본다. 우리 기업끼리 상호 호혜적인 협력을 통한 ‘공생적’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보자. 가치사슬(Value Chain) 활동을 잘해 태평양 바다를 우리의 잘 차려진 밥상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필자만의 ‘괴상한 발상’이 아니길 바란다.

며칠 전 중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물었다. “민비(명성왕후)의 이름이 뭔지 아니?” 딸이 자신 있게 말했다. “이미연….” 내가 끙끙대며 말했다. “민자영….”

비닐 천막 속의 마그마(magma)를 품은 뜨거운 열정의 젊은이들이 편안한 방관자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와야 한다. 대일관계를 포함한 현재의 갈등을 현명하고 새롭게 잘 비비고 반죽해서 풀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오늘은 딸을 데리고 집 근처 도서관에서 읽을 만한 역사책을 좀 잘 골라봐야겠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