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부원장)

▲ 박태원 박사

작년 11월 시카고 연방 준비은행이 주최한 경제전망 심포지엄이 열렸다. 첫날 150명의 경제학자들이 참석했다. 사회자가 2019년에 경기 침체를 전망하시는 분이 계시냐고 질문하자, 두 사람이 손을 들었다.

하버드 대학 석좌교수이자 IMF에서 선임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에르난 코르테스 더글러스 박사는 “금융시장은 상황이 나빠 보일 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실제 정확히 반대로, 상황이 장밋빛일 때 무너진다. 경기 후퇴가 시작되기 전, 거시경제 흐름은 언제나 좋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가 무너지기 직전까지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이 항상 경제가 아주 건강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2016년 6월 필립 E. 테틀록 와튼스쿨 교수의 저서 「슈퍼 예측, 그들은 어떻게 미래를 보았는가(Suprerforecasting)」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책은 전문가들이 내놓는 예측이나 원숭이가 다트를 던져 나오는 예측이나 다를 게 없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다수의 학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그룹에게 경제, 주식, 선거, 전쟁 등 여러 당면 문제에 대해 예측해 달라고 요청했다. 시간이 지난 뒤 전문가 그룹이 내놓은 예측의 정확성을 측정했는데, 놀랍게도 전문가의 예측이나 무작위적인 추측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20년의 연구 끝에 형편없는 전문가들의 판단과 예측의 적중률을 적나라하게 밝힌 그는 의구심을 품었다. ‘그렇다면 미래를 앞서 보는 예측이란 신의 영역인 것인가? 애초에 인간에겐 불가능한 일인가?’ 그는 인터넷을 통해 그저 평범한 2,800명의 자원자를 모집했다. 그리고 대규모 예측 토너먼트인 ‘좋은 판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중에는 분명 남다른 예지력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얼마 전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지난 5월 말 상반기 경제전망에서 발표한 2.4%에서 낮춘 2.0%로 전망했다. 이처럼 경제를 예측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물며 글로벌 시장의 경기를 전망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최근 글로벌 시장은 경제 변수뿐만 아니라 여러 정치적 변수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어 불확실성이 더욱 크다. 글로벌 해운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해운시황의 변동은 해상운임지수를 통해 알 수 있다. 대표적인 해상운임지수인 ‘건화물선운임지수(BDI)’는 발틱해운거래소가 발표하는 종합운임지수로서 1999년 11월부터 발표해 온 변동지수를 말한다. 이 지수는 선형별로 대표 항로를 선정하고, 각 항로별 톤/마일 비중에 따라 가중치를 적용하여 1985년 1월 4일을 기준(1000)으로 산정하며, 선형별 지수로 구성되어 있다. 2008년 5월에 1만 1,793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2016년 2월에 사상 최저치 290을 기록한 바 있다.

컨테이너선 시장의 경우 중국의 상해항운교역소에서 매주 발표하는 상해발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선박을 새로 건조 하는 가격을 나타내는 신조선 가격과 중고선 시장에서 선박을 매매할 때의 중고선가를 보여주는 지표들이 있다. 이는 신조선 발주와 중고선 매매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외국 기관들인 Clarkson, VesselsValue, MSI 등이 관련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선사의 경쟁력은 시황 분석과 예측 능력에 크게 좌우되며, 이와 관련된 정보력과 분석 능력을 갖춘 선사들이 글로벌 해운시장을 장악하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선사들의 해운시황 리서치 기능은 취약하기 그지없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시황예측 또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그나마 궁여지책으로 2018년에 설립된 한국해양진흥공사가 해운시황 분석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나 이 또한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2017년 9월 「도취된 패스트 팔로어, 독배(毒杯)의 비극은 왜 몰랐는가?」라는 칼럼을 통하여 한국 해운의 활로를 위해 해운시황 예측 능력의 제고가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 머스크와 IBM의 ‘왓슨’과의 제휴를 언급하면서 빅 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AI)에 의한 해운시장의 정보 분석과 시황 예측이 선사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쉽게도 2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해운시황 예측시스템은 제 자리 걸음이다. 아직도 해운시황 예측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정부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생색내기에만 급급한 임시방편의 땜질 처방이 아니었나 하는 의아심마저 든다.

지금이라도 해양수산부는 한국해양진흥공사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의 해운시황 분석 및 예측 기능이 글로벌 수준의 확고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시급히 정책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해운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산·학·연 협력 체제를 구성하고 인재 양성과 시스템 구축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한국해운의 미래를 위해서는 글로벌 해운전문 예측기관들의 자료에만 의존하는 구태의연한 시황예측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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