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병 경영학 박사(한국국제상학회 이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팀장)

▲ 이기병 박사

아카데미 최다 수상 영화로 뱃머리에서 백허그를 하며 하늘을 나는 남녀 주인공의 명장면으로 인상적인 영화가 있다. 타이타닉(Titanic)이다.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의 아름다운 음악도 좋았지만 사실 타이타닉 사고는 세계 해운사에 엄청난 충격과 많은 변화를 촉진시켰다.해상인명안전조약인 SOLAS(Internationsl Convention for the Safety of Life at Sea)가 만들어진 계기가 되었고 SOS라는 세계 공통의 구조 요청 신호를 처음 사용한 선박이었다.

타이타닉 사고후 여객선에는 선내 방송설비 설치, 24시간 조난 감시 상태 유지, 미끄럼식 비상탈출로 장치, 화재훈련·탈출 규정 의무화 등이 도입됐다. 또한 밀폐형 구명정 확보, 정해진 수량의 방수복 비치 등도 의무화됐다.

영화에서는 남자 주인공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여주인공에게 이런 최후의 부탁을 한다. “꼭 여기서 벗어나서 반드시 살아남아 자식들 많이 낳고 할머니가 되어 따뜻한 침대에서 죽어…” SOLAS 규정이 있었다면 이들 남녀 주인공 둘은 백년해로하며 행복하게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타이타닉호도 그렇지만 실제 해난 사고 주원인은 선박 자체의 결함보다는 인적과실(Human Error)이 훨씬 많다. 국제적으로 선주의 안전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국제안전관리규약(ISM Code : International Safety Management Code)이 제정됐고 한국도 1998년부터 적용하고 있다.

타이타닉 사고는 해상운송 흐름도 변화시켰다. 항공기를 통해 대량 여객수송이 본격화 되었고 크루즈의 출현도 이끌었다. 기선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선박의 종류도 다양화돼 여객·화물선으로 분류되는 계기가 되었다.

침몰하는 아수라장의 타이타닉에도 희생과 원칙이 있었다. 여성과 어린아이들을 먼저 구하는 재난 원칙인 버큰헤드(Birkenhead spirit) 정신이 살아있었다. 여성 425명 중 316명, 어린아이들 109명 56명이 구조되어 70%의 생존율을 기록했다. 그 덕에 여주인공 로즈(케이트 웬슬렛)가 잭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엄숙한 죽음을 맞이하면서 승객들이 부른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Nearer, my God, to Thee)’은 종파를 떠나 인간의 고귀함과 존엄성을 다시금 일깨우게 된다.

우리나라도 최근 현대글로비스 소속의 자동차운반선 골든레이호가 전도되는 등 다양한 선박 사고가 많았다. 역대 최대 규모인 태안 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킨 허베이스피리트호의 손해배상 절차도 지난 9월에 마무리돼 4239억원의 배상금액이 확정됐다.

그리고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까지…. 세월호 침몰 사고는 우리 사회의 많은 정치·사회적 갈등과 트라우마를 낳았다. 이를 치유하는 방법 중 하나로 ‘세월호 항로의 정상화’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인천-제주 여객선 항로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이후 현재까지 중단된 상태다. 각각의 이해관계자들의 저간의 이유와 입장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장기간 ‘부활’되지 못하고 있다. 세상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우리 사회 시스템의 씁쓸한 단면이고 물류의 시대와 동떨어진 흐름이다.

기업 경영 환경에서도 매출액 대비 물류비 비중이 가중되고 있고 물류가 제3의 수익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생산관리를 통한 원가절감, 마케팅을 활용한 매출 증대의 제1 혹은 제2의 수익원 창출 방식 외에도 효율적인 물류관리를 구축한 물류비 절감이 새로운 수익원으로 중요시되고 있다. 특히 인천-제주 항로의 복원은 여객·화물 물동량, 지역사회 파급효과, 복항을 바라는 수요 고객층 등의 경제적 효과 이외에도 해양 문화 개선, 한국 사회의 세월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일조할 것이다.

2019년 11월 4일 일본 교토에서는 희생자 추도식이 개최됐다. 1945년 8월 24일 해방 후 광복 귀국선 우키시마마루(浮島丸·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희생자를 위한 추도제였다. 부산을 목적지로 출발한 우키시마호는 갑자기 폭발해 조선인 수천 명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됐다.

8월 15일 패전 후 일본 해군은 비행장, 철도 건설에 강제 동원된 수천 명의 조선인에게 조선으로 귀환할 것을 지시하고 해군 특설 운송선 우키시마호에 승선시켰다. 사고 후 신속한 구조와 보호는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한국인 524명, 일본인 2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한 후 폭발 원인과 정확한 조사 없이 이 사건을 흐지부지 처리했다. 이후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침몰했다는 일본측 주장과 고의적으로 조선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폭침시켰다는 유가족과 일부 생존자의 주장이 대립되고 있다. 이 사건은 북한 영화 ‘살아있는 영혼들’과 한국에선 다큐멘터리 ‘우키시마호’로 상영되기도 했다.

선박은 육상의 운송 수단과는 다르게 해상의 특수성이란 바다 위에서의 위험성과 고립을 갖고 있다. 선박은 바다에서 폭풍 등 자연의 위험 이외에도 납치·전복·화재·충돌·좌초 등 우발적이고 계속된 해상 특유의 위험에 노출된다. 운항 중에는 외부와 연락이 끊기고 항해 기간도 길어서 해양 사고가 발생할 경우 육지로부터 고립된 상태에 있을 수 있다. 이런 위험성과 고립성을 갖고 있어 선박 운항 안전성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해양 사고의 주요 요인이 근무 태만과 안전의식 부족으로 인한 인적요소가 가장 문제시 되고 있다. 해양사고 예방교육 등 안전과 직결된 비용은 조직의 편익을 떠나 기업 입장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접근해야 한다.

벌의 독은 인간에게 위협적이지만 벌침은 효과적이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 이를 ‘호메시스 효과(Hormesis Effect)’라 한다. 우리에게 불행했던 해양 사고들을 새로운 성공과 기회로 추출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가 인생이란 항로의 선장이다. 내 인생의 직무유기는 없는지 내가 짊어질 책임은 무엇인지 국가부터 나까지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전 구성원이 돌아봐야 한다. 해양사고 뿐만 아니라 모든 대한민국 재해사고 중 적어도 인간 실수로 인한 인과관계가 절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통한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기록하며 미래의 오늘을 대비해야 한다. 더 이상 우리 국민들이 제2의 우키시마호에 승선할 일은 없으리라…. 그들의 유골은 희생자별로 구분이 안 돼 일부가 ‘혼골’ 형태로 일본 땅에 묻혀 있다. 세상사는 순리(順理)가 있다. 순리가 가끔씩 벗어나 이를 바로 잡으려고 열정과 힘이 미치지 못할 때 ‘씁슬하다’라는 표현을 쓴다. 오늘날의 한일 관계가 그렇다. 불편한 이웃이지만 그렇다고 이삿짐 싸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수도 없지 않은가?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라는 목소리가 있다. 뜨거운 가슴은 이해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나가야 할 경제 방향도 아니고 일본에 대한 결정적 한 방도 아니다.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수요 독점적’ 하도급 거래 구조를 바꿔 시장과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고부가가치의 강한 기업들이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끈끈한 가치사슬(Value Chain) 구축이 필요하다.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도모하고 선도적인 연구개발 매진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 경영이 요구된다.

세월호의 젊은 청춘들과 일제 패망으로 귀향의 꿈에 젖었지만 이유도 모른 채 사망한 이들이 바닷 속에서 아직도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남서대양에서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와 제주 ‘대성호’ 등 선박 사고로 인해 차가운 유해로 남아 천명(天命)을 누리지 못한 안타까운 이들의 넋을 기려본다. 우리들 마음 속에 그 바다를 잊지 않고 깊게 담아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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