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경애하는 수녀님

뵈온 지가 참 오래되었습니다.

요즘 평화방송 TV의 『해인글방』을 통해 자주 뵙고 있습니다. 걱정했었는데 건강을 회복한 모습을 보니 참 좋습니다. 수녀님께서 하셔야 할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어 하느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수도자로서 체험한 인생과 사랑을 노래한 수녀님의 시를 음악으로 각색하는 청순한 처녀분과 수녀님과 대화를 엮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수녀원으로 유인코자 했는데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다 하여 포기했다”는 수녀님의 농담으로 봐 그분이 처녀로 알고 있습니다.

30년 전, 처음 뵈올 때의 수녀님도 그분처럼 청초하셨는데!!! 수도복에 감추진 삶에도 세월은 오고 가는가 봅니다. 제가 부산에 근무하던 때였습니다. 지금은 세 분 모두 하느님 품으로 떠나셨지만, 성라자로마을 원장 이경재 신부님께서 부산에 내려오셔 신학교 동기동창 이갑수 주교님과 이영신 원로신부님과 저녁을 함께 하였습니다. 식사가 끝나 이경재 신부님을 수녀원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수녀원 손님방에서 주무시겠다고 하셔서. 안젤라 원장 수녀님과 수녀님께서 이경재 신부님을 영접하셨습니다. 그때가 수녀님과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 후로 일요일이면 수녀원에서 새벽 미사를 드렸습니다. 수녀님들의 맑은 목소리로 부르는 그레고리아 성가가 어쩌면 그렇게도 감동적이었던지! 천상에 올라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미사 후에 지도 신부님과 함께 아침을 먹고는 수녀님들과 뒷동산을 거닐었습니다. 사건 사고와 복잡한 직무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수녀님과 함께 동래에 위치한 가르멜여자수도원에 갔습니다. 거기서 데레사 말가리다 언니 수녀님을 뵈웠습니다. 영성이 넘치는 두 분 자매 수녀님을 깊이 존경하였습니다. 그 뒤로 가끔 가르멜을 방문하여 창살을 가운데 두고 수녀님들과 대화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수녀님들도 계셨지만 속세를 떠난 봉쇄 수도원에서 수도 생활을 해서인지 모두가 여고생을 분장해 놓은 듯 맑은 눈동자와 온화한 얼굴은 천사인 양 신비스러웠습니다. 대화가 끝나면 내 마음에 묻은 먼지와 때가 깨끗하게 씻어져 하늘을 나는 듯 상쾌했습니다. 되돌아보면 부산 근무 기간이 제 인생의 황금기였습니다.

제가 부산을 떠난 뒤, 데레사 말가리다 수녀님과 편지로 친교가 계속되다가 가르멜수도원이 밀양으로 옮겨간 후에 수녀님을 찾아갔습니다. 수도원이 준공되지 않아 컨테이너에서 차를 마시며 그동안의 안부를 나누었습니다. 다시 오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누님같이 따사한 정을 느꼈던 데레사 말가리다 수녀님과 영원한 작별에 마음이 쓰렸습니다.

제가 수필 2집을 발간하면서 수녀님께 시 한 편을 부탁드렸습니다. 주신 시를 수필집 머리글로 실었습니다.

초대의 말씀
                                      이해인 수녀

친구여 오십시오/ 은총의 빛으로 닦아
더욱 윤이 나는 나의 하얀 주전자에/ 기도의 물을 채워 넣고
오늘은 녹차를 끓이듯이/ 푸른 잎의 그리움을 끓입니다
이웃과 함께 나눌/ 희망과 기쁨의 잎새도
한데 넣어 끓이며/ 나는 조용히 그대를 기다립니다.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우리의 만남은 언제나/ 녹차처럼 은은하고 향기로운 맛
다시 끓어도/ 새롭게 우러나는 사랑의 맛

친구여 오십시오/ 오랜 세월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그리움이
잔디처럼 돋아나는 내 마음에/ 오늘은 주님의 손을 잡고 웃으며 들어오는
어진 눈빛의 친구여

물이 흐르는 듯한 그대의 음성을/ 음악처럼 들으며
나는 하늘빛 찻잔을 준비합니다/ 나눔의 기쁨으로 더욱 하나가 될
우리의 만남을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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