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부원장)

▲ 박태원 박사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취임한 지도 벌써 9개월이 지났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재직했던 필자는 2001년에 당시 해양대학교 교수로 있던 문성혁 장관과 함께 「항만노무 공급체계 개편방안 연구」를 1년여에 걸쳐 공동으로 수행한 적이 있다. 문성혁 장관은 국제해사기구(IMO)가 1983년에 설립한 스웨덴 국제해사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장관으로 내정되었다. 그 당시 문성혁 장관후보자는 “핵심을 잘 잡고 대안을 잘 제시하는 차분한 학자"이며, "세계 해운 동향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분이니 만큼, 한국 해운산업 재건을 위한 전문가”라는 후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문성혁 장관은 취임 당시 “해운재건을 더욱 가속화하여 해운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해운산업을 개편하고,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를 적극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선박과 항만, 그리고 물류 전 분야에 걸쳐 인공지능, 빅데이터,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사이버 보안 등을 활용한 스마트 해운항만물류 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미래 해운항만산업을 선도하여, 세계 진출의 기반을 마련하자”고 야심찬 포부도 밝혔다.

지난 1월 10일에 KMI 주최로 「해양수산 전망대회 2020」이 코엑스에서 열렸다. 대회장에 입장하기 위한 많은 인파들을 보면서, KMI에 몸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느꼈다. 많은 참가자들이 행사에 거는 기대가 무척이나 커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해운물류 세션에 참가했다. 「해운시황 전망과 대응전략」과 「해운물류의 구조변화와 대응」 등의 발표를 지켜보면서 한숨이 절로 났다.

먼저 발표자들이 사용하는 해운물류 용어들이 40여 년 해운을 공부하고 연구한 필자에게도 낯설게 느껴졌다. 선박을 갖지 않고 운송업을 하는 해상운송인을 말하는 무선박운송인(無船泊運送人, NVOCC)을 ‘비노출형 수송선사’라고 지칭하는 등 생소한 해운용어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해운시황을 전망하려면 해운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추정한 구체적인 예측치가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KMI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추정 모형에 의한 전망치든 글로벌 시황예측 전문기관의 전망치든 간에 그것에 근거한 수급을 분석해야 한다. 다음으로 정기선 부문은 지역·항로별로 부정기선 부문은 선종·선형별로 시황을 예측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시황예측 모형의 경우 계량화된 지표들 외에 시황에 영향을 미칠 변수들을 중심으로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선사들의 향후 선대운영 등 경영전략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전망치를 바탕으로 정부의 정책방향과 우리나라 선사들의 대응전략이 수립·제시되어야 한다.

발표자는 2020년 이후의 해운시황 전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해운기업 비즈니스 모델별로 경쟁우위요소를 분석하고 핵심 경쟁우위 요소의 강화방안을 제시했다. 선사가 경영전략을 수립하면서 운항선대의 수익성과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포트폴리오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미시적 계량화된 전망치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우위 요소 강화방안을 언급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1984년 6월에 공채 1기로 입사하여 청와대 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 물류담당관을 역임하고,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2005년 11월 퇴직할 때까지 22년을 KMI에 몸담았던 필자로서는 핵심을 비껴나고 연구의 질적 수준이 낮은 발표들을 접하면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번 「해양수산 전망대회 2020」은 규모와 외양은 거창했으나, 내용은 빈약하고 디테일은 취약했던 실망스런 대회였다.

몇 년 전에 국책연구기관들의 정책 보고서가 직접적인 정책지식 수요자인 정부부처에서 어떻게 지식활용이 되는가를 분석한 바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사연) 소속 23개 연구기관과 유관 정부부처에 근무하는 연구관리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공무원들이 정책지식의 활용을 통하여 임파워먼트를 달성하는 정도를 분석한 결과, 정책관련 지식수준의 향상에는 도움을 준 것으로 나타났으나 정책과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주는 측면에서는 낮은 평가를 받았다.

작년 5월에 경사연이 주최한 「2019 대국민 연구성과 보고회」에서는 “국민은 국책연구기관이 국민적 삶과 괴리된 아주 전문적인 집단으로 간주하고 있는 게 현실이며, 정책의 수요자인 국민은 국책연구기관과 괴리감이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국가 정책의 산실인 국책연구기관은 모름지기 싱크탱크로서의 연구 역량을 발휘하여 양질의 정책대안을 개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책무이다. 따라서 KMI의 연구결과는 해양수산부 등 관련부처의 정책적 의사결정의 굳건한 토대가 되어야 하며, 우리나라 해운물류기업들의 경영전략 수립에 유용한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KMI는 무엇보다도 ‘수요자 요구에 대응한 현장중심의 정책연구’, ‘국가 미래발전 비전제시’, ‘글로벌 협력체계 강화’, ‘국민과 연구성과를 공유하는 소통의 확대’ 등에 모든 연구역량을 결집하여 신뢰받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해운물류분야의 세계적 학자이며 전문가인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국책연구기관인 KMI의 연구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연구의 질적 향상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 줄 것을 당부한다. 그래야만 내년에 개최되는 「해양수산 전망대회 2021」에서는 참가자들이 KMI 연구진에 대해 찬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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