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석유화학 장기용선계약 파기·불이행 파문
“‘화주 갑질’ 방지 조항에 부정기화주 넣자”

화주가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연운송과 수송화물의 일부 변질을 이유로 과도한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이것이 관철되지 않자 일방적으로 장기운송계약 파기를 선언하면서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갑의 위치에 있는 대형 화주가 을의 위치에 있는 중소선사에 대해 부당하게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화주의 갑질’을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중소선사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해운업계에서는 오는 2월 2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개정 해운법에 의한 소위 ‘화주 갑질 방지 조항’이 정기컨테이너선에 수송하는 화주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라며, 이같은 부정기화물 화주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해운법의 ‘화주 갑질 방지 조항’을 부정기화물 화주에게도 확대하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적선사인 H해운과 분쟁을 하고 있는 화주는 자체적으로 화력 발전소를 운영하여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전기를 끌어 쓰고 남은 전력은 한국전력에 판매해 온 K석유화학이다. H해운과 K석유화학은 지난 2011년에 7만톤급 파나막스선을 이용하여 연간 10항차씩 인도네시아에서 광양항으로 발전용 석탄을 수송하기로 장기운송계약(장기용선계약)을 맺었다. 당시 운임시황은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운임으로 계약이 됐지만, K석유화학은 2014년 이후 시장의 운임이 떨어지자 지속적으로 운임인하를 요구했고, 을의 입장인 H해운은 어쩔 수 없이 운임 인하를 단행하여 최근까지 수백만달러의 운임을 깍아준 상태였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2019년 7월에 H해운이 용선하여 K석유화학이 수입하는 석탄을 싣고 인도네시아를 출항한 벌크선(Three Star)이 여러 번 고장을 일으키면서 수리 등의 문제로 뒤늦게 광양항에 들어오면서 부터다. 8월에 들어와야 할 선박이 11월에 들어왔으니 3개월이나 지연운송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지연운송에 불만이 있었던 K석유화학은 인도된 화물이 변질된 것도 문제라며 도착 화물 가운데 2만 4000톤만 인수하고 나머지 화물에 대해서는 소금기가 기준치를 넘었다는 이유 등을 대며 인수를 거절하고 보상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벌크선의 원선주인 그리스 선주는 K석유화학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화물 전체에 대해서 선주로서의 책임을 인정하여 현금으로 전액 보상을 해주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원선주로부터 화물에 대한 보상을 받은 K석유화학은 H해운에 줘야 할 운임 80만달러의 지불을 거절하는 한편, 화물이 지연운송 되는 바람에 발전소를 돌리기 위해 대체 화물(석탄)을 여러 군데서 수배하여 그 운송비용이 14억 9000만원이나 들었다며 이에 대한 보상도 함께 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를 했다.

이에 대해 H해운은 14억 9000만원을 산정한 근거가 미약하다며 재판에서 질 경우 이를 변상한다는 내용의 보증장(Letter of Undertaking)을 ‘KP&I’로부터 받아서 K석유화학측에 제시했다. 하지만 K석유화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무조건 현금으로 보상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 1월 6일 “2011년 4월에 맺은 ‘장기용선계약’을 해지한다”는 공문을 H해운에 보내 계약파기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2021년 3월까지로 되어 있는 장기운송계약에 따라 H해운이 향후 수행해야 할 14항차 정도의 화물운송의 이행도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일방적으로 장기운송계약을 파기당한 H해운측은 매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먼저 운송화물에 대한 피해보상을 원선주가 직접 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송이 끝난 화물에 대해 운임 지불을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K석유화학이 대체화물의 확보를 위해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수송비 14억 9000만원은 지나치게 과다하게 산정된 금액이며 더구나 현금 동원능력이 없는 중소선사에게 오로지 현금만으로 개런티 하라고 하는 것은 명확한 ‘대형 화주의 갑질’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피해보상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장기운송계약 자체를 파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장기운송계약 자체의 효력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K석유화학은 앞으로도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H해운은 화물운송을 끝내놓고도 운임을 받지 못해 중소선사인 자신들이 현금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장기용선계약상의 운임이 현재의 시장운임에 비해 상당히 높기 때문에 “화주측이 지연운송을 빌미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계약을 해지하고 저렴한 시장의 운임을 이용함으로써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H해운은 지난 1월 15일 청와대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에도 이러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민원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K석유화학의 실무 담당 책임자(팀장)는 1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H해운에 계약 파기 공문을 보낸 사실을 인정하면서 “오죽하면 우리가 그런 조치까지 했겠느냐. H해운측은 이번 사태에서 하나도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한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도 원만히 타협하여 해결했으면 한다”고 협상이 가능하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 그러나 ‘화주 갑질’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지적하자 “이미 소송 절차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회사의 정확한 입장을 확인한 다음 연락을 다시 하겠다”고 했지만, 끝내 기자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오는 2월 21일 발효되는 개정 해운법 제31조 2항에서는 ‘운송계약을 체결한 하주는 운송계약을 정당한 사유없이 이행하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시에는 정부당국(해양수산부)이 직접 조사하여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은 ’외항정기선사를 이용하는 화주‘에 국한된 것으로 부정기선 이용 화주에는 해당이 되는 것은 아니어서 해운업계에서 재차 해운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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