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망가진 해운부대업의 생태계 >

참으로 어려운 시기이다. 어느 때가 이보다 더 어려운 시기가 있었을까? 우리가 맨날 처다보고 있는 BDI 지수가 드디어 500도 깨지고 역사상 최저점을 향해 추락하고 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한 이후 이미 11년이 지나갔는데도, 어쩌면 이렇게도 해운시황은 침체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것일까? 하필이면 해운의 보리고개라는 ‘춘절’에 코로나 바이러스 비상사태까지 터져서 그야말로 끝장으로 가고 있는 형국인지, 한숨이 저절로 날 일이다. 해운불황의 장기화에, 세월호 사건이 겹치고, 다시 한진해운 사태로 짓눌리다가, 최저임금제로 한번 더 엎어진 다움에 다시 코로나 바이라스로 난리까지 났으니... 이건 정말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지 않나 싶다.

본지가 해운업계의 이렇게 어려운 현실을 ‘해운 빙하시대’라고 표현 했지만, 정말 이정도 일줄은 모르고 한 말이다. 꽁꽁 얼어붙어서 어디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는 숨 막히는 공포의 엄동설한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유명 선사들은 이미 운명을 다 하셨고, 그나마 살아서 움직이는 중소형 선사들도 궁핍의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외항선사 가운데 부정기벌크선사는 살아남은 회사를 찾아보기 드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경이다.

대형 부정기선사들이 하나같이 간판을 내리거나 주인이 바뀌었으니, 이들의 업무를 도와주던 소위 해운부대업체들도 파장 분위기이다. 특히 선박을 중개하거나 신조나 매매를 돕던 해운중개업체들은 거의 대부분 문을 닫거나 일거리가 없어서 개점휴업 상태에 처해 있다. 사무실이라도 그대로 유지하는 회사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10여년 전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참혹하다 싶을 정도로 폐허가 된 상태이다.

안타까운 것은 해운중개업체들이 지금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2008년 9월부터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살아남은 국적 외항부정기선사들이 우리나라 해운중개업체들을 이용하지 않으려는 풍조가 생겨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왜 국적선사가 그동안 많이 이용해 오던 우리 국적 해운중개업체들과의 거래를 하지 않으려 하고 심지어 금지조치까지 하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실제로 현재 유명 국적선사들 상당수가 우리나라 해운중개업체들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그 이유를 몇가지로 분석하자면, 우선 대형선사 가운데 주인이 바뀌거나 새로운 간판으로 출발한 회사는 해운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인이 되다 보니 해운업계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행위에 대해서 의심을 하게 되고, 그래서 국적 해운중개업체들을 기피하게 됐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이 경우 정당한 수수료 지불행위까지도 불법적이라고 의심하는 경우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외국의 해운브로커를 이용할 경우는 더 높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고, 그것도 달러로 해야 하므로 사실상 외화가 유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해운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의 것이라면 다 좋다’는 식의 맹목적인 사대주의에 빠진 경우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국적선사 경영진 가운데는 외국인 브로커나 심지어 외국인 변호사들과 함께 해외영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풍문이고, 그래서 그런 업체는 업계에서 “과시용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사실이라면 비난을 받을만 하다고 본다.

해운부대업종 가운데서도 ‘해운중개업’은 해운산업 전체를 놓고 볼 때 아주 꼭 필요한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영세하여 그 동안에 정당한 대접을 받아오지 못했다. 물론 해운호황기에는 연간수입(수수료)이 1000만달러를 넘는 회사들도 있었지만, 현재는 사실상 수 많은 업체들이 사라졌고, 남아 있는 회사들도 매년 적자에 시달려야 하는 형편이다. 업계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양수산부에 정식으로 등록한 해운중개업체는 950개사가 넘는데, 우리나라 해운중개업을 대표하는 ‘한국해운중개업협회’에 가입한 해운중개업체들은 55개사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한다. 등록업체 중에 협회 가입한 회원사는 겨우 5%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해운중개업체들은 대형 국적선사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데다가 더군다나 최근에는 해외의 유명 브로커들의 한국 사무소가 속속 설립되고 있어 더욱 비즈니스 영역이 줄어들고 있다. 뭔가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이 업종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다. 우리가 정부당국이 해운중개업을 살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우선 국적 외항선사들의 반성과 자각을 촉구하는 바이다. 우리나라 해운중개업체들은 능력면에서 세계 최우수 브로커들과 견줘도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실력파들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사실 이 우수한 국내 브로커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세계 5위로까지도 도약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우리나라 해운중개업체들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사대주의에 빠져 외화를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특히 사모펀드가 운영하는 국적선사나 여타산업에서 M&A하여 해운회사를 그룹에 편입시킨 회사들은 우리나라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략화물을 많이 수송하고 있으므로 외국 브로커 이용은 의식적으로라도 지양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한국선주협회 회장단을 구성하고 있는 선사들은 그 책임감에서라도 먼저 국적 해운중개업체 이용을 우선시해야 할 것이다.

정부당국에게는 해운 상태계의 복원이라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관련 업종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 찾아보길 권고한다. 해사클러스터를 구성하는 모든 업종과 회사들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협력관계에 있어야 건전한 해운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해사클러스터들끼리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당국도 맡은 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적선사들이 지나친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우리나라 해운중개업체들과 상생할 수 있도록 계도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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