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괴리 커, 업계 불만 고조>

우리 해운업계가 새해 벽두부터 내륙운송 요금 인상문제로 시끄러워졌다. 수출입 컨테이너의 내륙운송요율이 ‘안전운임’이란 이름으로 구랍 30일 갑자기 고시되어 새해 1월 1일부터 안전운임제가 전면적으로 시행이 됐기 때문이다. 해운회사나 국제물류주선업체들을 복합운송을 주도하는 주체적인 운송인으로 보지 않고, 내륙운송업자에게 화물을 제공해주는 ‘화주’로 규정하는 이 ‘안전운임제’로 인해 그러지 않아도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가슴 졸이고 있던 우리 해운업계가 다시 들썩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국토교통부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을 개정하여 ‘안전운임제’를 도입하려는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내륙운송 화물을 운송하는 운전기사들은 저운임에 시달리다 보니 과로, 과적, 과속 운행이 잦은 상태이고, 그래서 이들의 이익단체라 할 수 있는 ‘화물연대’는 매년 강력한 투쟁에 나섰던 것도 사실이다. 이들에게 적정 수입이 돌아갈 수 있도록 운송요금을 좀 올리고, 중간에서 마진을 가로채는 불필요한 중간단계를 줄여 보자는 뜻에는 누구라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일단 한 3년(2020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해보고 일몰제를 도입하여 더 연장할지 어떨지는 그 때가서 따져보자고 하니 막무가내로 반대만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공청회 등을 통한 의견 수렴 과정이 요식행위로 지나가면서 실질적으로 ‘안전운임제’가 시행됐을 때 어떠한 파장이 일어날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떠밀리다 시피 하여 서둘러 시행에 들어간 것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지난해 연말에서야 겨우 ‘안전운임’이라는 것이 확정, 고시되고 겨우 이틀 만인 1월 1일부로 시행에 들어갔다는 것만 봐도 이 제도가 얼마나 졸속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해진 ‘안전운임’이라는 것은 화물연대 등의 의견을 반영하다보니 기존의 요율보다 상당히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에 이 ‘안전운임’보다 낮은 가격의 운임을 지불했다면 건당 50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하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법이 시행에 들어갔으니 ‘안전운임’을 다시 정하자고 할 수도 없고, 유예하자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딱한 노릇이다.

한국국제물류협회는 지난 2월 6일 국토부에 안전운임제 시행에 대한 건의문을 제출했다. 협회는 이 건의문에서 안전운임제에 대해 업계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며 “운송계약의 주체로서 운송인인 국제물류주선업자(포워더)를 수출입기업으로 분류하여 화주 지위를 씌운 것은 잘못이기 때문에 이를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사나 국제물류주선업자가 운송주체임에도 불구하고 내륙운송업체를 이용하는 화주로 보는 것은 잘못으로, 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협회는 안전운임을 정하는 안전운임제 위원회에 대한 구성이 잘못돼 있다며 재구성해 줄 것과 현재 현실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운 ‘안전운임' 시행을 일단 유예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 안전운임제에 대해 한국선주협회도 여러 가지 잘못된 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현재 대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특히 한국선주협회는 부처간 협의에 나섰던 해양수산부가 지금까지 ‘안전운임제’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라도 해양수산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토부와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선주협회가 문제를 삼는 부분은 같은 항만내 터미널간에 이송하는 환적화물의 경우도 이 ‘안전운임제’를 적용하도록 한 부분이다. 법상에 ‘안전운임제’는 수출입 컨테이너 화물만 대상으로 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환적화물은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안전운임’을 부과하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우리 국적선사들이 연간 370억원의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피해를 입게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이 지적이 되자 국토부는 지난 1월 17일 해양수산부를 참여시켜 ‘안전운임제 관계기관 회의’를 했지만, 결국 당사자인 화물연대와 한국선주협회 등 이용자 단체와의 협상 결과를 지켜보기로 했다고 한다.

이번에 환적화물을 ‘안전운임제’ 대상으로 지정하여 터미널간 이송비용을 크게 인상한 것은 외국선사의 이탈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에서도 상당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지난해 연말 “2020년 1월 1일부터 ‘안전운임제’가 시행된다”고 보도가 되자 유럽의 한 대형선사의 최고경영자는 “안전운임제로 환적화물 이송비용이 너무 올라가게 되면 기항지를 부산항에서 다른 외국항만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최근, 다행인지 불행인지 중국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이런 논의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지만, 언제고 외국선사들은 발길을 돌릴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

‘안전운임제’ 시행이 너무나도 성급했다는 사실이 하나하나 증명되고 있다. ‘안전운임’을 협의하고 결정할 때 실제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는 배제한 채 화주들의 대표기관인 무역협회나 상공회의소 등을 참여시켰으니 실무적인 논의가 제대로 진척될 리가 없었다. 우리는 당연히 한국선주협회나 한국국제물류협회, 한국국제해운대리점협회도 참석시켰어야 하고, 부산항만공사 등 항만공사도 참여시켰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민간끼리 협상이 돼야 할 운임이나 요율을 정부가 간섭하여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국토부 뿐만 아니라 각 부처들이 민간부분이 자율적으로 정할 것을 강제화하여 규제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화물연대의 터져 나오는 요구와 어려운 경제여건에서 그야말로 고경을 헤매고 있는 사업자들의 한숨 사이에서 국토부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자율을 더 늘린다는 측면에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너무나 현실과 괴리가 있다면 아무리 법이 시행에 들어가도 법 자체가 지켜지지 않아 사문화될 가능성이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안전운임제’는 무리하게 시행하는 것 보다 일단 시행을 유보하고 전면적인 개정작업을 펴는 것이 옳다고 우리는 믿는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