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내 호는?

세상 태어난 아이에게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 주민등록등본에 등재한다. 이를 본명 또는 성명이라 한다. 성인이 되어서 불러주는 이름은 자字. 그 외에 누구나 허물없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다. 이를 호號라 한다.

호는 당나라부터 시작하여 송나라에서 보편화 됐단다. 우리나라는 신라 원효대사의 호는 소성거사小性居士 이다. 고려말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를 일컬어 삼은三隱이라 한다. 조선조엔 김정희는 추사秋史, 김홍도는 단원檀園이다. 한글학자 주시경은 한인샘, 최현배는 외솔이란 한글 호이다.

호는 자신이 짓거나 친구나 스승이 지어준다. 호는 일반적으로 첫째 인연이 있는 처소, 둘째 이루고자 하는 뜻, 셋째 처해있는 여건, 넷째 가장 소중하게 간직한 것과 관련이 있다. 호는 그 사람의 인품이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에는 지리산을 휘감고 돌아온 섬진강 하동포구 80리가 있고 그 끝자락은 노량바다이다. 장날이면 부산, 통영, 여수를 오고 가는 통통배가 노량바다를 가로질러 섬진강을 거슬려 올라왔다. 강변에다 짐을 풀어놓고는 또 짐을 싣고서 꽁무니에 백파白波를 내뿜으며 강물을 헤쳐갔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물가물 사라졌다. 정든 임을 떠나보낸 듯 서러웠다.

도로교통이 열악하던 때라 여름방학에 통통배를 타고 여수 누님댁에 갔다. 옆을 스쳐나가는 강변 풍치가 아름다웠다. 한참을 지나 바다에 다다랐다. 검푸른 너울이 배를 삼킬까 봐 무서웠다. 아득히 멀리 수평선이 보였다. 수평선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물론 가정이 어려웠던 이유도 있었지만, 강과 바다와 인연이 있었기에 설지 않게 해양대학으로 진학했다. 그 또한 꿈많은 소년의 꿈이었을까! 피 끓는 청년의 낭만이었을까! 비좁은 한국을 떠나 세계를 향해 대양을 항해하고 싶었다. 세계 3대 미항을 동경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혹독한 입사훈련과 상급생의 잔혹한 기합에 시달려야 했다. 【5대양 제패와 바다에 매골】이란 바윗덩어리처럼 무거운 교훈에 짓눌려 숨이 막혔다. 대학의 자유와 낭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3년 학교수업과 1년 승선실습을 마치고 졸업했다.

거대한 기관機關이 스크루를 돌려 바닷물을 갈아엎어 하얀 물거품을 내뿜으며 선박은 항진航進한다. 무변대해에서는 초대형선박도 일엽편주에 불과하다. 태풍과 노도와 빙하와 사생 결단 끝에 목적 항구에 도달한다.
 
5백 년 넘게 공자 맹자를 숭상해온 우리나라 풍토는 뱃사람을 천시했다. 국비로 양성된 수재가 오랜 구절양장의 바닷길을 건너 선장이 된다. 최첨단 장비를 갖춘 초거대선박을 운항하는 선장에게도 뱃놈이란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공무원이 되어 해운에 대한 국민의식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 바다를 갈아엎듯이 국민의식을 갈아엎기 위해 해운 사상의 저변확대를 하겠다고 각오했다. 하여 내 호를 경해耕海라고 지었다. 쟁기가 논밭을 갈아엎듯이, 스크루가 바다를 갈아엎듯이 국민의식을 갈아엎고 싶었다.

선진국이 주도하는 국제해사기구 IMO의 국제협약을 수용해 제도를 바꾸고 국내법을 개정했다. 선원재교육을 위한 연수원을 설립하고 선원복지를 증진 시켰다. 선진국 선급과 어깨를 겨누도록 한국선급을 지원했다. 정부주도의 항만운영에 민간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항만 관련법을 제·개정했다. 그리고 많은 서책도 발간했다. 그러나 국민의식의 변화는 아직도 요원하다. 그래도 그 집념이 희석될까 봐 나를 耕海에 단단히 동여매어 둔다.

서양에도 호가 있다. 성경에 예수께서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물음에 시몬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란 대답에 “시몬 너는 베드로이다”라고 호를 주셨다. 반석이란 뜻이다. “내가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고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라고 약속하셨다. 하여, 갈릴리 호수의 일개 어부 시몬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 되었다.

또 있다. 사울이 기독교인을 체포하려다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을 만나 눈이 멀었다. 예수님은 하나니아스에게 “사울은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라고 하셔서 그의 눈을 뜨도록 했다. 사울이 회심하여 기독교로 개종하고 바울이 됐다. 바울은 사마리아와 로마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여 기독교가 세계적 종교가 됐다.

베드로와 바오로의 뒤를 이은 피의 순교가 300년간 계속됐다. 드디어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굴복시키고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됐다. 인류 역사와 문화와 철학의 물결을 바꾸어가며 2천 년을 이어왔고 다시 3천년대를 맞았다.

성姓은 대대로 내려오는 겨레붙이라서 요지부동이다. 이름名은 항렬자行列字에 따라 어른들이 지어준다. 하여, 본명인 姓名은 본인에게 선택권이 없다. 그러나 호는 타인이 지어주더라고 본인에게 선택권이 있다. 따라서 호는 본인의 취향이나 지향하는 목적에 따라 스스로 작명하거나 선택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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