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손녀들의 배낭여행

손녀 둘이서 배낭여행을 하겠다고 이메일이 왔다.

기특하고 놀랍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나에게는 아직도 갓난아기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애들이 런던과 파리로 배낭여행을 간다니!

그들은 내 집에서 태어났다. 앙증맞은 알몸을 따뜻한 물에 천천히 담갔다. 살이 겹쳐 바람이 통하지 않는 턱밑과 겨드랑이와 손발가락 사이사이, 그리고 사타구니를 뽀득뽀득 씻었다. 울지 않았다. 시원했던가 보다.

이 할비에게 알몸을 통째로 내맡기고도 부끄럽지 않은지 새별 같은 눈으로 빤히 쳐다봤다. 깨물고 싶도록 귀여웠다. 목욕이 끝나면 담요로 둘둘 말아 눕혀 놓고는 우유병 꼭지를 입에 물려주었다. 힘을 다해 우유를 빨아 먹느라 볼이 불그스름했다. 그리곤 새록새록 잠들었다.

내 아들딸에겐 어림없는 일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돌아와 잠자는 아기를 껴안고 뽀뽀했다. 잠자는 아기를 깨웠다고 엄마는 투덜댔다. 쉬는 날이면 집에서 아기를 껴안고 놀다가도 울거나 응가를 하면 당장 엄마에게 떠넘겼다.

속 좁은 엄마라면 아빠가 얼마나 얄미웠을까! 태중 열 달 동안 힘겹게 생명을 창조하고서 산고의 진통 끝에 아기를 출산했다. 그리고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양육했다. 얼마나 힘들었음을 아빠는 알기나 할까? 철들지 않은 아빠가 어찌 알리. 아빠는 아기를 키우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하여, 아빠의 사랑은 즉흥적이고 맹목적이고 감성적이라면 할아버지의 사랑은 숙성되고 사려가 깊어서 이성적이다. 할아버지는 생명 창조에 대한 경외감을 느낀다. 그리고 생명이 존귀함도 깨닫는다. 그래서 아빠의 사랑과 할아버지의 사랑은 다르다.

친손녀 다슬이는 영국에서 잉태되어 어미가 한국에 돌아와 몸을 풀었다. 백일을 지나고서 아비 곁으로 돌아갔다. 눈에 밟혀 참고 참다가 첫돌에 아내와 함께 손녀를 보러 갔다. 낯설어하지 않고 방글방글 웃으며 품에 안겼다.

어미가 외로운 이국에서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아기를 키우느라 고생한 보상으로 이탈리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피렌체와 베네치아, 나폴리와 로마를 방문했다. 호텔 로비에서 다슬이가 아장아장 걷다가 엎어져 기어가면 서양사람들이 귀엽다고 웃음꽃을 피웠다.

로마제국의 찬란한 유적과 르네상스의 흔적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베드로 성당 광장에서 거행된 성인 시성식에 참석하는 행운도 가졌다. 천상의 잔치 인양 장엄했다. 훗날 다슬이가 철이 들면 이탈리아 여행을 이야기해 주리라.

아비가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모교에 출강하다가 미국으로 갔다. 다슬이도 초등학교 4개월을 다니다가 어미 아비 따라 미국으로 떠난 지 12년이다. 여자 명문 Smith대학 2학년으로 경제학을 전공한다. 외손녀 혜인이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Yale대 대학원 1학년으로 첼로를 전공하고 있다.

12년 만에 사촌 자매가 이국에서 만나 얼마나 기뻤을까! 한통속이 되어 뉴헤븐과 노스햄프턴과 필라델피아를 오고 가며 애틋한 우애를 나누었으리라. 그러다 크리스마스 휴가 때 배낭여행을 함께 가겠다고 했다.

다슬에게 “할아버지가 여행경비 좀 보태줄까?”라고 했더니 “Don't worry”라고 이메일이 왔다. 학교식당에서 접시 닦기, 기숙사 침실청소, 사무실 근무를 해서 저축한 돈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고 조교로 발탁되어 번 돈도 있단다. 홀로 서겠다는 마음이 갸륵하고 대견했다.

외손녀 혜인이는 아비가 개업전문의라서 신경을 안 쓴다. 그러나 다슬이 아비는 배고픈 철학 교수라서 신경이 쓰인다. 가뜩이나 손자가 없는 나에겐 다슬이를 장손으로 여기고 자꾸만 눈길이 간다.

배낭여행에서 돌아와 이메일을 보내왔다. 런던에서 옥스퍼드 대학, 피카딜리 서커스, 버킹엄궁전을 보고서 도버해협 해저터널 50km의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갔다고 했다. 파리에서는 에펠탑, 베르사유궁, 루브르 미술관, 노트르담 대성당을 관광했단다. 감명이 깊었던지 훗날 동생 다해와 다함이를 다리고 다시 가겠다고 했다.

손녀들의 배낭여행으로 인해 내 젊은 시절 유럽의 추억들이 안개처럼 아롱아롱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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