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부원장)

▲ 박태원 박사

흥아해운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도 2개월이 가까워진다. 2017년 2월 한진해운의 도산에 이어 우리나라 대형 해운회사가 또다시 경영부실로 인해 시장에서 퇴출되는 위기에 몰렸다. 선복량 기준으로 국내 5위의 해운회사인 흥아해운은 2017년부터 동남아시아 정기선 시장에서 적자가 누적되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동남아시아 시장의 선복과잉 현상의 심화는 선사 간의 출혈경쟁을 가져왔고, 흥아해운의 영업 손실도 2017년에 185억 원에서 2018년에는 405억 원으로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급기야 지난 해 10월에 흥아해운의 컨테이너선 사업부문은 정부의 한국해운연합(KSP)을 통한 동남아시아 항로 선사들의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장금상선으로 넘어갔다. 그 당시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장금상선과 흥아해운 간의 통합은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재편돼 경쟁력을 회복해 나가는 데 초석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해운재건을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다.

상장회사인 흥아해운의 워크아웃은 금융권뿐만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해운산업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는 중차대한 폐해를 낳고 말았다. 2018년 7월에 출범한 한국해양진흥공사도 그동안 흥아해운과 장금상선의 원활한 통합 이행과 통합 법인의 적정 자본규모 확충을 위해 지속적으로 금융을 지원해 왔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해양진흥공사를 통한 정책금융의 적정성과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방만한 경영으로 인한 부실을 왜 국민 세금으로 메워줘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도 토로하고 있다.

필자는 2018년 7월에 「동남아항로 선사들, 왜 공유지의 비극은 몰랐을까?」 칼럼에서, 동남아항로의 공급과잉이 가져올 파장을 우려하면서 관련 선사들이 경영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동안 한일항로와 한중항로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선사들이 블루오션을 찾아 하나 둘 동남아항로에 진입하고, 서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선대를 늘리면서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2019년 4월에 「장금·흥아 컨테이너사업 통합, 또 다른 재앙이 되지 말아야」 칼럼을 통해,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의 합병만으로 동남아항로의 선복과잉에서 촉발된 우리 선사들의 경영위기가 극복될 수 있을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두 회사의 합병 시너지효과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중소 선사 10여 곳은 통합에서 빠져 독자적인 생존을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의 통합이 규모의 경제를 통한 효율성 제고로 어느 정도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선복량 감축이 없는 양사의 통합은 동남아시아 항로를 운항하고 있는 여타 우리 국적선사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재앙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에 한국선주협회는 한국해운산업의 신뢰도 타격과 한국해운재건계획의 차질, 그리고 케미컬 탱커의 경쟁력 상실 등을 내세우며 흥아해운을 살려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또한 한국선주협회장을 맡고 있는 장금상선의 정태순 회장이 400억 원을 투자하여 흥아해운의 컨테이너 정기선 부문을 인수하게 된 것은 한국해운의 신뢰도 유지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흥아해운과 장금상선의 통합을 정부정책의 큰 성과로 평가했던 해양수산부는 흥아해운의 침몰이라는 정책적 실패에 대해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릇 흥아해운 몰락의 책임은 오롯이 흥아해운에게 있으며, 그 최종적인 책임은 최고경영진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해운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공생적 산업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마련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추진주체인 해양수산부의 책임 또한 만만치 않다.

해양수산부는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의 컨테이너선 사업 통합만으로 동남아시아 항로의 안정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통합법인의 조기 경영정상화를 위해 최대 2,000억 원까지 정책금융이 지원되는 두 회사의 통합이 흥아해운의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임시방편은 아니었는지 강한 의구심마저 든다.

모름지기 경영부실로 인해 적자가 누적되어 회생이 불가능한 선사는 도태되어야 한다. 경쟁력이 없어 도산이 불가피한 선사마저도 구조조정 정책이라는 보호막으로 감싸면 수급의 불균형 해소는커녕 소기의 성과도 기대할 수 없다. 안타깝지만 경쟁력이 없는 선사는 시장에서 자연적으로 퇴출되는 출구전략이 바람직하다. 정부의 정책도 개별 선사의 회생보다는 전체 해운생태계의 생존 차원에서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정부 정책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해양수산부는 동남아시아 항로의 수급불균형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선복량 감축 등 특단의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는데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복과잉 현상이 몰고 올 재앙이 제2, 제3의 흥아해운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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