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洋 꿈나무들’에게 한평생 바쳤다“단원들 훈련장비 사주는 사람 있었으면” 5월 24일은 한국해양소년단연맹이 창설된지 18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해양소년단은 한강축제를 개최하는 등 18주년을 나름대로 뜻깊게 보낼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해양소년단연맹 사업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해양사상을 심어줌으로써 해양산업의 저변을 확대하고 미래의 보고라고 할수 있는 해양과 관련산업을 이끌어나갈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金鉉利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사무총장은 해양대학 시절부터 해양소년단활동에 관여하여 무려 36년간 거의 한평생을 이 활동에 몸바쳐 일해왔다. 어려운 살림을 끌고 오느라 지병을 얻어 오랫동안 고생도 했지만 불굴의 의지와 신념으로 해양입국을 앞당기기 위한 해양인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의 빛나는 업적을 기념하고 해양소년단연맹의 18주년을 축하하는 뜻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金鉉利총장은 매우 바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해운신문’과의 인터뷰에 기꺼이 응해주었다. 우선 궁금한 것은 金사무총장은 왜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도 않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닌 소년단연맹활동에 평생토록 매달려 왔는가 하는 점이었다.돈 벌면 활동자금으로 “아버님께서 일본 상선대 시험을 봤다가 떨어지셨는데 그래서인지 저에게는 꼭 해양대학을 가라고 권하셨습니다. 그 이전부터 보이스카웃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해양대학을 가서도 그일을 계속하다보니 ‘해양소년대’를 만들면서 저보고 대장을 하라고 하데요. 그것이 벌써 36년전의 일입니다. 그때는 소년단 활동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선장과 기관장하면서 번돈은 모두 해양소년단 활동자금으로 썼습니다. 가지고 있던 아파트도 다 팔아먹고 해서 집 사람과도 많이 싸우기도 했지요.” 金鉉利총장은 주위에서 돈 벌이도 안되는 그런 활동에 왜 그리 매달리느냐고 하면 ‘이 일은 누군가 꼭 해야 하고 결국 내가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소년단활동에서는 우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정부의 지원 혹은 단체나 개인기업들의 후원을 이끌어 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지금은 해양소년단연맹 총재가 한해에 몇억원씩 기부해주기 때문에 예산편성이 훨씬 수월하지만 지난 80년 창립될 당시만 해도 예산을 세울 수 없어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못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金총장은 해양대학교 출신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하소연했고 여기저기서 푼돈을 모아 소년단연맹 살림을 꾸려갔다. 속상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술도 많이 마시게 됐고 그로 인해 결국 신장병을 얻어 최근에 다년간 병마와 싸우기도 했다. 그가 이처럼 어린이들에게 해양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된다는 열정에 빠지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해양친화적인 정서가 형성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해양소년단 활동이 그 근간이 돼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21세기 해양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해양소년단활동은 더욱 장려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2000년 세계대회 유치 “저희들의 목표는 21세기에는 우리나라가 해양강국으로 부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양관련 저변을 확대해 나가야 하는데 그런 사명이 바로 저희들에게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열심히 해서 정말 제2의 장보고시대를 일궈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재 한국 해양소년단은 회원등록인원수는 21만명에 달합니다. 세계적으로도 단원수가 가장 많은 해양소년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 10월에는 우리나라에서 16개국이 참가하는 해양소년단 세계총회를 유치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현재 여러가지 면에서 연맹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특히 각종 장비의 노후화로 단원들을 제대로 훈련시킬 수 없어 대책마련이 시급합니다.” 金鉉利총장은 현재 소년단연맹이 처해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열거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인터뷰에 배석했던 관계자의 말로는 우선 IMF영향으로 올해 예산이 지난해에 비해 거의 40%가 줄어들었으며 개별기업의 후원금도 뚝 끊어진 상황이라 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1980년 창설 당시 구입했던 해양스포츠장비들은 이제 완전히 못쓰게 되었는데도 장비구입비는 너무 적어서 교체 할 엄두도 못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고에서 지원을 늘려주든가 아니면 기업체에서 해양장비에 자기기업의 로고를 붙여 소년단에 기증을 해야 하는데 이도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세계 각국의 해양소년단들은 보면 왕실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열 씨 카뎃트(Cadet)라 하여 반드시 로열이라는 말이 붙는데 우리말로는 왕실해사훈련생도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미의 선진국 가운데 노르웨이는 선원이 항해에 나가 집을 비우면 그 집에 빨간 깃발을 올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누구나 그집을 보호해 주고 도둑들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빨리 해양사상으로 무장을 해서 바다와 일반국민들이 더 가까워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후세들을 바다로 자꾸 내보내야 합니다. 해양소년단원들에게 선서를 시키고 아주 강력한 수상훈련을 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金총장은 올해 여름해양학교를 개설하고 국제해양축제도 개최하며 ‘우리 얼 해외탐방’도 실시한다고 했다. 또한 우리나라 국적선박과 해양소년단이 구성돼 있는 각급학교간에 ‘1선대 1선박 자매결연’을 올해 추진할 계획이다. 이밖에 해양자원봉사자 센터를 만들어 퇴직하거나 실직한 해운인들을 각급학교의 선대장으로 임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競艇사업 할 수 있다면 그러나 이러한 여러가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재원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金총장은 이에 대해 평소 지론대로 ‘競艇사업 유치론’을 폈다. 競艇사업을 해운수산 관련업계에서 가져올 수만 있다면 재정적인 문제가 자동 해결되고 그에따라 해양관련 산업의 이미지를 제고시키고 국민의 해양사상을 고취하는 사업을 쉽게 추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본은 競艇사업으로 연간 1조 8000억엔의 수입을 올립니다. 선박진흥회(현재의 일본재단)는 이 競艇사업 수익금 가운데 아주 일부를 떼어내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경륜수입이 연간 100억원을 넘습니다. 경정사업만 할 수 있다면 그 수익금 가운데 일부를 체육진흥기금으로 주고 나머지는 해운수산업의 육성과 해양산업에 대한 대국민 홍보에 쓸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수익사업이 없는 재단이나 단체를 만들어 아무리 국민홍보를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표창 22회 받은 산증인 현재 경륜경정법이 있고 이의 소관이 문화관광부로 되어 있는데 이중에 競艇부문만 떼어내어 가져와서 다시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선박을 다루는 경정사업은 선박과 관련된 전문가들이 할 수 밖에 없는 사업입니다.” 金총장은 우리나라는 해안선이 많고 강도 많아서 해양레저가 발달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돼 있다고 말하고 본격적인 해양레저 시대가 되면 競艇사업도 자연스럽게 추진될 것이라고 했다. 해양소년단연맹의 산증인이고 오늘의 연맹을 세계 제일의 해양소년단연맹으로 만든 공로자인 金총장은 64년 한국해양대학 기관학과를 졸업(16기)하고 대한해운공사, 미국해군 수송사령부, 한라해운 등에서 배를 탔으며 77년 한국보이스카웃 부산연맹 커미셔너를 시작으로 소년단연맹 활동에 전념해 왔다. 83년 7월부터 10여년간 해양대학교 총동창회 사무국장도 맡아보기도 했던 金총장은 해양소년단 관련 각종 교범들을 직접 집필했고 해운산업발전과 해양문화 창달에 힘쓴 공로등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는등 무려 22개의 표창장과 공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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