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정동국제 서동희 대표변호사

서동희 변호사
서동희 변호사

선박이 충돌사고로 전손사고를 당하면, 가해 선박측은 피해 선박측에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될 것인데, 사고 당시 선박의 가격을 산정해야 하는 일이 대두된다. 어느 시점에서 선박의 가격을 선정할 경우 대부분 정평있는 선박감정평가 회사의 감정의견을 받아 처리하는 것이 무난한 일이다. Clarkson 같은 곳이 그런 회사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의 소송에 있어서 반드시 선박감정평가 회사의 감정의견에 의해 선박의 가격이 산정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이 선박의 가격의 산정과 관련해 단골로 다투어지는 쟁점 한 가지에 대해 중요한 판결을 내렸기에 여기서 소개하고자 한다. 과연 선체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가액, 즉 agreed value(협정보험가액)가 선박의 가격의 산정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인지 여부인가에 관한 것이다. 피해 선박측은 자주 협정보험가액이 사고 당시의 선가라고 주장하는데, 과연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의 문제이다.

대법원은 협정보험가액이 선박의 가액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면서 아래와 같이 판결을 내렸다(대법원 2020.7.9.선고 2017다56455 판결).

"이 사건 선박의 가액을 산정하면서, 선체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가액, 선가감정보고서 및 원심 감정인의 감정 결과를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모두 배척하고, 이 사건 선박의 도입가격에 개조공사비 등을 더한 취득 당시의 가액을 기초로 감가상각한 회계장부상 가액을 기준으로 해 이 사건 선박의 가액을 산정했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이 사건 선박의 가액 산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

이로서 대법원은 원심법원이 적용한 선박의 가격의 산정 방법에 대해 타당하다고 인정했는데, 원심법원인 서울고등법원은 이에 관해 아래와 같이 구체적으로 판시했다(서울고등법원 2017.10.27. 선고 2015다26872 판결).

"원고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선박에 관한 보험가액인 1,760,000,000원을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의 이 사건 선박의 가액으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해 살피건대, ▶위 보험가액은 2009. 7.경 원고들이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협의해 정한 것으로, 이는 보험계약 체결 당시의 시장 상황, 원고 한유가 지급할 보험료, 보험사고의 발생 가능성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해졌을 것으로 보이고, 위 협의가 위 보험가액을 이 사건 선박의 가액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객관적인 근거에 기초해 이루어졌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이 사건에서, 원고들이 정한 보험가액을 보험계약 체결 당시 또는 그 무렵인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를 기준으로 한 이 사건 선박의 가액으로 보기 어렵다".

이로써 협정보험가액이 선박의 가액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보기 어렵게 됐다. 참고로 대법원이 판결을 내린 위 사안은 2010.4.20. 밤에 전남 여수 백도 해상에서 발생된 아스팔트운반선 해급퍼식픽호와 bulk carrier 찡항(Zheng Hang)호 사이의 선박충돌 사고에 관한 것이었다.

이 충돌사고로 해급퍼식픽호가 침몰되면서 전손됐고, 해급퍼식픽호의 선주 및 선체보험자가 선박의 사고 당시 선가가 협정보험가액으로 기재된 1,760,000,000원인 것으로 주장했으며 1심 법원은 원고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했던 것을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위에 소개한 이유를 제시하면서 종국적으로 선박의 가격을 585,000,000원 정도를 인정했다. 두 금액의 차이가 3배가 된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이다. 선박의 가액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에 대해 이번에 다른 쟁점외에도 많은 쟁점이 있지만 그에 대해는 추후 기회 있을 때 소개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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