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정동국제 서동희 대표변호사

서동희 변호사
서동희 변호사

충돌규칙상 무중항해에서는 피항선도 없고 유지선도 없다. 준수해야 할 항법은 1972년 충돌규칙 19조에 규정되어 있는 것이 전부이다. 19조는 안전한 속력을 유지할 의무, 견시의무, 레이다 플로팅을 해야 할 의무 그리고 피항동작을 취할 경우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규정하고 있다. 물론 무중항해이든 시계가 양호한 경우의 항해이든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항법은 충돌규칙 5조 견시의무, 6조 안전한 속력을 유지할 의무, 8조 피항동작을 취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들이 있으며, 이러한 규정들은 충돌규칙 19조의 상위 규정이라고 볼 수 있다.

무중에서 발생된 구체적인 선박충돌사고를 가지고 무중항해에서 회피동작을 전혀 취하지 않은 선박의 과실의 정도를 어떻게 우리나라 법원이 보았는지를 소개하려 한다. 이 사건은 2013.7.10. 04:54시경 울산항 부근 영해에서 발생된 것이 이에 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한 판결이 최근에 확정되었다. 이 사건에서 총톤수 38,606톤의 화물선 Panamax Blessing호는 목적항인 울산항으로 향해 항해하던 중 사고 해역을 지나게 되었고, 총톤수 1,998톤의 화물선 Harmony Rise호는 북한에서 화물을 선적하고 중국의 항구로 항해하던 중 사고 해역을 지나게 되었다. 당시 해상은 잔잔한 바다이었으나 안개가 심하게 끼어 시계가 100미터가 되지 않았다.

Panamax Blessing호는 울산항 입항을 앞두고 stand by상태가 되었고, engine ready 상태로서 원양전속에서 약간 감속한 속력인 11.5 노트로, 진침로 20도로 항해하고 있었으며 Panamax Blessing호는 일찌감치 상대선인 Harmony Rise호가 남하하면서 항해해 오고 있는 것을 radar로 발견했고, 이후부터 충돌시까지 보유장비인 ARPA(Automatic Radar Plotting Aids. 자동 레이다 플로팅 장치)를 이용해 Harmony Rise호의 침로와 속력, 그리고 그대로 진행될 경우의 매시각의 CPA(최근접시점에서의 두 선박의 거리)를 훤히 확인하면서 항해를 할 수 있었다.

반면 Harmony Rise호에는 ARPA가 장착되지 않았음은 물론 당직항해사가 당시 radar plotting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그래서 주변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아닌지 의심되었다. 충돌전 약 10분전 Panamax Blessing호는 충돌을 회피하기 위해 50도로 우변침했으며, 이후 VHF로 Harmony Rise를 계속 호출하면서 양 선박이 좌현 대 좌현(port to port)로 항과하자고 제안했는데, Harmony Rise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Harmony Rise호는 진침로가 207도에서 218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소위 yawing 현상을 보이고 있었으며 속력은 6 노트이었다. 진침로가 207도에서 218도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던 것은 Harmony Rise호의 기관출력이 미흡해 보침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6노트 역시 Harmony Rise호가 원양 항해시 전속의 속력이고 감속을 한 것이 아니었다.

충돌 약 2분전에 Harmony Rise호로부터 뒤늦게 VHF 회신이 왔고 Harmony Rise호는 좌현 대 좌현(port to port)로 항과하자는 제안에 Okay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중에서 Panamax Blessing호가 Harmony Rise호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육안으로 발견하고 놀랜 나머지 극좌전타를 했고, 그것이 결정적 원인이 되어 두 선박은 충돌하게 된 사건이다.

결국 Harmony Rise호는 무중에서 피항동작을 전혀 취하지 않은 채 동일한 속력, 동일한 침로로 충돌지점에 다가 온 것이고, 나아가 좌현 대 좌현(port to port)으로 항과하자고 한 합의를 위반해 좌현변침을 했는데, 충돌에 대한 Harmony Rise호의 과실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가 1심, 2심 재판 내내 가장 큰 쟁점이었다.

1심과 2심 모두 서울중앙지방법원 및 서울고등법원의 해상사건 전담재판부에서 재판이 이루어졌는데, 1심에서 양선박측이 각각 선임한 전문심리위원(민사소송법상의 제도임)이 법원에 출석해 충돌 사고의 원인이나 과실정도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기도 할 정도이었다. 그 의견은 상반되었다. 물론 Panamax Blessing호나 Harmony Rise호는 모두 외국적 선박으로서 우리나라에서 해양안전심판이 진행되지 않아 해양안점심판원의 재결은 없는 상태이었다. 단지 IMO에게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해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조사관 2명이 작성한 특별조사보고서1)가 민사법원에 현출되었다. 특별조사보고서는 Panamax Blessing호에게 '주인'이, Harmony Rise호에 '일인'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Panamax Blessing호의 과실로 안전한 속력을 유지했는지, 그리고 20도에서 50도로 변침한 것이 적절한 피항동작이었는 지가 문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Panamax Blessing호 대 Harmony Rise호의 과실비율을 3:7로 보았으며,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역시 동일하게 과실비율을 3:7로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2020.9.16. 선고되었고, Harmony Rise호가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이 판결은 확정되었다. Panamax Blessing호를 대리했던 필자로서 법원의 판단이 정확한 것이라고 보지 않으며 최소한 15:85는 되어야 한다고 본다2).

그 이유는 Panamax Blessing호에게 가해 질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비난은 무중에서 감속을 하지 않고 항해했으므로 안전한 속력을 준수할 의무를 위반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안전한 속력의 개념은 웬만한 선박에 ARPA가 모두 탑재되어 이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1972년에 골격이 완성된 충돌규칙의 안전한 속력을 고지식하게 해석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이다. 항해상식으로 속하는 것이지만 무중항해시 속력을 대폭 감속하게 되면 변침동작을 취할 때 타효가 효율적으로 작동되지 않아 오히려 충돌위험이 더 높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Panamax Blessing호는 해경에 VDR을 제출했고, 사고 해역에 대한 VTS항적 자료가 있어서 어느 사건보다도 양 선박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확인될 수 있는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조사보고서가 위와 같이 오류를 범했고, 전문심리위원의 견해가 180도 대립되는 상황이 발생되었다는 것은 우리 제도의 중대한 결함을 노출한 것이라고 본다.


1) 이에 대해 해사법률 193호 및 195호를 참고하기 바란다.

2) 민사사건과 병행해 Panamax Blessing호의 선장에 대한 형사사건이 진행되었는데, 울산지방법원에서 내리진 1심 판결은 선장이 무과실이라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을 정도이었다. 물론 검찰의 항소로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되고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유지되었기는 하지만 말이다. 형사2심은 민사1심에서 3:7의 과실비율의 판정이 내려진 것을 참고로 해 기존 벌금 10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감액했으며 이에 대해 피고인이 상고했는데 상고기각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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