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호 한국문협 해양문학연구위원장, 한국예총 전문위원

김문호 사장
김문호

렌,

시월상달입니다. 봄에 땅을 갈고 씨앗을 뿌렸다가 여름내 가꾸어 가을에 걷으면서 농가의 곳간이 그득해지는, 년 중 최고의 달입니다. 논밭을 물려주신 조상님과 비, 바람, 햇살로 결실을 주제하신 하늘에 고마움의 제례를 올리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우리네 전통 백의민족의 추수감사절인 것이지요.

시인묵객들은 시월을 소춘(小春)이라고도 한답니다. 운치 있지 않습니까? 작은 가을(小秋)로 시작되고 중추를 지나 만추로 저무는 가을을 작은 봄이라 추겼으니 말입니다. 어느새 온기가 줄어든 햇살이며 소소한 바람결, 숲 가지마다의 성근 이파리들이 이른 봄의 정경에 흡사하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제 곧 다가올 겨울의 냉기를 봄이라는 주술의 기운으로나마 다독이려는 것일 런지요.

강원도 오대산에서 충청의 칠갑산으로 내달리는 차령산맥, 바로 그 산줄기의 영봉인 치악산 기슭의 토지문화관입니다. 연전에 작고한 박 경리 소설가를 기리는 문화행사장으로 단체 숙박시설까지도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합니다.

글을 쓰고 다듬는 사람들의, 소위 문학기행에 동행한 일입니다.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코로난가 뭐라는 고 유행성 악질 때문에 꼬박 2년을 연금당하는 중에 단체여행을 감행한다기에 긴가민가하면서 따라나선 참이지요. 오랜만의 바깥구경이 전혀 딴 세상인 양 눈부십니다. 가없는 쪽빛 하늘을 뭉게뭉게 수놓는 권적운 송이들이 초록 목장의 양떼처럼 평화롭고, 한껏 익은 가을꽃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맑고도 곱습니다. 거기에 예년보다 한 달은 먼저 내렸다는 첫눈으로 소복단장한 치악준령이 이국의 만년 설봉들인 양 신비를 더합니다.

누가 언제 이곳에다 이리도 완벽한 만추를 피워놓은 것인지요. 자연은 언제나 흠결 없이 피고 지지만 우리네의 아둔한 시각들이 그냥 스쳐 지나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수인번호도 없는 2년간의 수형생활로 그나마 안목이 바닥으로 졸아든 탓도 있겠지요. 어쭙잖게 두어 구절이 읊어집니다.

“넓고도 넓구나, 바람을 타고 허공을 날면서 멈출 곳을 모르는 듯.
가볍고 가볍구나, 온갖 세상 다 벗어놓고 신선이 되어 훨훨 날아오르는 듯“.

소동파의 적벽부던가요.

이들의 다음 행선은 박경리 문학공원이라 합니다. 그러면서 들고나는 모습들이 진지합니다. 상달이면 시제(時祭)꾼들의 두루마기 행렬이 산릉을 수놓던 고향마을의 옛 정경에 흡사합니다. 하긴 문학의 원류를 찾는 이들의 발심이 종교인들의 성지순례엔들 덜함이 있을 런지요.

남편과 외아들을 앞세운 박 경리 소설가가 만년에 글을 쓰고 농사를 짓던 곳입니다. 한국 소설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5부작 대하소설 ‘토지’를 낙성한 기념비적 현장이기도 합니다. 7백여 평의 옛집과 뜰을 원형으로 보존하면서 전시장과 세미나 시설 외에 소설 속의 평사리 마을이며 일송정 솔 숲길 등을 꾸며놓은 도심 속 3천여 평의 테마공원입니다.

땅의 근본이요 한반도의 중원이라는 이곳 원주의 옛집 안주인은 자유만을 붙잡고 살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바로 반향으로 돌아오는 고독이었습니다. 푸른 하늘을 지향하는 우듬지의 발 돋음이 절실하면 할수록 비바람과 한기의 훼방이 가혹해지는 이치일까요. 아니면 봄을 몰고 오는 조수에 따라붙는 작달비(春潮待雨)와도 같은 것일 런지요.

“고독하면 글을 쓰고 땅을 갈았다. 글을 쓸 때는 살아있었다. 씨를 뿌리고 김을 매면서도 살아있었다. 그러나 삶은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생명이 아프지는 않았다. 사내를 거세당하고도 지향을 꺾지 않은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정녕 그랬을 것입니다. 그가 이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온 것은 단 하나 혈육인 외동딸의 배필 시인이 자유를 주창한 죄로 사형을 언도받고 숨어 지내던 즈음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의 ‘토지’는 땅이요 흙이었습니다. 아무리 혹독한 여건에서도 뿌린 만큼 싹을 틔우고 기르는 토양의 저력과 미덕이었지요.

수많은 유품 중, 어느 한 칸에 전시된 퇴색 밀짚모자와 닳은 실장갑, 녹슨 호미 한 자루가 그중 절실합니다. 생존이 버거울 때면 이들만으로 무장한 채, 따가운 햇살에 맞서면서 밭고랑으로 쪼그리고 앉았을 안주인의 고독이 절절합니다. 그건 바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설파한 싯다르타의 그것과도 같은 것이겠지요. 서러울 때면 맨밥이라도 꾸역꾸역 씹어 넘기게 된다던 어느 여류 수필가의 구절에도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릇 피조 생명들의 아픔이란 너나없이 타고난 하나의 원천일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건 바로 이곳 온갖 풀숲들의 예외 없는 만추가 귀띔하는 이치인가 합니다.

3만 장의 원고지로 쌓아올려졌다는 역사와 운명의 대서사시 ‘토지’의 바벨탑인들 이곳 안주인의 외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이 또한, 봄부터 가을까지 곱고 아름답던 이파리들을 마지막 가을꽃으로 떨어내면서 혈혈 나목으로 삼동을 대비하는 이곳 겨울가지들의 고독이 내게 전하는 이야기인가 합니다.

렌, 소스라치게 그대가 그립습니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더군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난 그대가 그립다”고. 나로서는 그대가 너무나 멀리 있기에 이토록 사무치게 그리운 것입니까. 언제 한 번 꼭 만날 그날까지, 서럽도록 고운 이 만추에도, 내내 강녕하소서.

안개만이 자욱한 광야에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그러면서도 자꾸 나를 불러대는
아득한 내 자유여, 고독이여.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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