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의 해사법에 대한 관심을 촉구함-김인현 (목포해양대학교 교수, 선장/법학박사)

작년 7월 해상운송인에게 아주 불리한 중요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내려졌다(대법원 2004.7.22선고 2002da44267판결, 판례공보 2004년 1428면).

운송인은 상법의 규정에 따라 포장당 책임제한을 할 수 있다. 상법 제789조의2 (책임의 한도) 제1항은 “제787조 내지 제789조의 규정에 의한 운송인의 손해배상의 책임은 당해 운송물의 매포장당 또는 선적단위당 500계산단위의 금액을 한도로 이를 제한할 수있다.(이하 생략)”고 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에 대하여 제2항에서 “제1항의 적용에 있어서 운송물의 포장 또는 선적단위의 수는 다음과 같이 정한다.

1. 컨테이너 기타 이와 유사한 운송용기가 운송물을 통합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경우에 그러한 운송용기에 내장된 운송물의 포장 또는 선적단위의 수를 선하증권 기타 운송계약을 증명하는 문서에 기재한 때에는 그 각 포장 또는 선적단위를 하나의 포장 또는 선적단위로 본다.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운송용기내의 운송물 전부를 하나의 포장 또는 선적단위로 본다.”고 한다.

선하증권상 포장의 숫자란이 있고 포장의 성질란이 있는바, 양쪽에 모두 숫자가 기록되어있는 경우에, 운송인의 책임제한의 기준이 되는 포장의 숫자로 되어야 하는 것은, 포장의 수가 많게 되는 포장의 성질란의 것에 기재된 소포장단위라는 것이 본 대법원 판결의 요지이다. 국내선박회사로서 본 사건에서 운송인인 피고는 소외 삼보컴퓨터의 개인용 컴퓨터를 운송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삼보가 제시한 선적의뢰서에 따라 “컨테이너 또는 포장의 수”란에 40 x 4(104 plts)(4개의 컨테이너 안에 104개의 팰리트가 들어있음을 의미함), “포장의 종류 및 화물의 내역”란에 Shipper Load Stowage & Count, Said to be: 104 plts(2,496 units)로 기재되어 있었다.

운송도중 한 개의 컨테이너 안에 든 화물 전체(26 팰리트 = 624상자)가 침수되었다. 원고인 적하보험자는 화주에게 적하보험금을 지급하고, 구상청구를 운송인에게 제기하였다. 운송인인 피고는 포장당 책임제한을 주장하면서 선하증권의 전면의 숫자란에 적힌 컨테이너 1개당 26팰리트를 포장당 책임제한의 계산단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6 x 500SDR=약 17,00만원).

1심에서는 성질란의 것이 2심에서는 숫자란의 것이 인정되었다가 대법원에서 다시 반전되어 성질란의 것이 계산의 기준이 된 것이다. 결국 운송인은 624 x 500SDR(약 4억6백만원)로 책임제한이 가능하였지만 이는 손해액을 넘는 것이라서 운송인은 책임제한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참으로 놀랄 판결이다. 이 판결에 따르면 성질란과 개수란을 막론하고 포장의 수가 많은 것, 즉, 책임제한액을 크게 하는 것을 책임제한의 기준으로 하겠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필자는 작년 7월 미국에서 유학중이어서 이 판결의 논의과정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필자가 매년 지난해의 중요해상법판결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는 바, 어제서야 동 판결을 읽어보고 사안의 중대성을 늦게서야 파악하게 되었다. 우선 동 판결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밝히자면, 당사자의 의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접근법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사정에서 당사자의 의사는 포장의 숫자란에 기록이 되었으니 이를 우선하는 수밖에 없지 않는가하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가 아무런 의사없이 기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하여 화주를 보호하기 위하여 포장의 수를 많게 하는 의도적인 판결을 하게 되어 앞으로 이와 같은 경우에는 운송인은 포장당 책임제한을 못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이러한 판결대로라면 포장의 숫자라는 란을 구태여 만들어 둘 필요가 없다. 운송인의 입장에서는 포장당 책임제한이 되지 않을 정도의 포장의 숫자를 신고 받아 기록할 때에는 주어진 혜택을 포기하는 대신으로 운임이라도 올려 받으려고 하였을 것이다. 필자는 이미 2003년 해상법이라는 책을 편찬하면서 이런 분쟁에 참고가 되도록 의견을 밝힌 바있다. 필자는 “컨테이너안의 작은 포장이 10개 들어있고 이를 선하증권에 기재하였다면 책임제한의 기준이 되는 포장의 개수는 10개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기재가 선하증권 전면의 어느부분에 기재되어야 하는 가가 다툼이 된다. 선하증권 전면에서 “운송물의 성질”을 나타내는 난이 있고 “운송물의 숫자”를 나타내는 난이 있는 바, 운송물의 성질난에 “작은 포장 10개”가 기재되어있는 경우를 제789조의2 제2항 제1호의 기재로 인정할 수 있는 가가 문제이다. 이는 당사자의 의사해석의 사실문제이다.

일률적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여러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할 것이지만, 굳이 “운송물의 성질란에 기재되어있다는 것은 기재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책임제한갯수로 하겠다는 인식이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149면)고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하물며, 포장의 개수란에 숫자가 기입되어 있다면 더구나 이것이 포장의 개수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필자는 본다. 대법원이 의식한 화주의 보호는 다른 제도로서 보완되어야 할 문제이고, 상법 해상편은 상법 제806조의 선박소유자의 연대책임을 비롯하여 화주를 보호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이 건만 하여도 송하인이 운송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할 때에 그 종류와 가액을 신고하고 선하증권에 기재하면 포장당 책임제한제도의 적용은 없는 것이 되어 화주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해운계에서 법적 문제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형 선사들의 업무가 영국법에 집중되어있다는 점은 필자도 잘 알고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 해사법과 판결이 해운 선진국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도록 안정화되어야 한다. 성장하는 해운산업에 발맞추어 이를 지원하는 해사법 분야도 발전하여야 한다.

해사법은 해운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기초되어야 한다. 이상적이기는 해기사 출신들이 법조인이 되거나 법학교수가 되어 활동하는 것이다. 해기사 출신들이 해사법의 대가가 되어 일반법원이나 변호업계 혹은 학계에서 자리를 잡고 목소리를 내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해운업계는 불리함을 안고 있다.

일본에서는 1954년부터 해법세미나가 선사의 후원하에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이 세미나는 新日本汽船-나빅스라인-商船三井으로 이어지고 있다. 海運集會所에서도 고베와 동경을 오가며 매달 판례연구를 하고 있으며 이를 海事法硏究會誌라는 격월간지에 게재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해법학회가 있지만, 이는 학회일 뿐이다. 학회이기 때문에 어떤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기는 어렵다. 해사법의 발전을 위하여 해양대학의 법학교수들이 앞장서는 것은 의무이다. 그러나, 학자들이 할 수있는 여력은 한계가 있다. 필자는 2년전 동 신문에 영국 미국과 같은 해사판례집을 발간하자는 제안을 하였다(2003.3.10.자).

선주협회, 한국 P&I, 해운조합등은 학계 혹은 해상변호사들과 함께 해사법의 발전을 위하여 직접 나설 때라고 본다. 위와 같은 판결이 대법원에 계류되었을 때에는 업계에서 충분한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하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판결이 나왔을 때에는 동판결이 업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심도있는 토의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토의 다음에 대책이 나올 것이다. 우선은 법원의 판결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고 토의하는 장이 업계자체에 있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학계의 교수, 법학자, 변호사에게 해운업계의 일을 알아서 처리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비록 해상법 학자 한사람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한사람의 힘으로 할 수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학자도 여러 가지 일에 얽매여 있고 재정적 시간적 제한에 속박된다. 학자들도 자신의 견해를 학회지나 교과서를 통하여 피력하고 이러한 내용들이 법원에까지 이르러 판사들이나 연구관들이 그 내용을 볼 수있도록 하여야 한다. 아무리 학자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둔 것이라도 학자의 견해를 법원에서 보지도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해상법을 포함한 해사법 교재의 개발 및 보급과 전문지의 발간등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한국 해사법의 발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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