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희 법무법인 정동국제 대표변호사

선사간에는 특정 정기선 노선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선박을 별도로 확보하여 운항하는 것보다 경우에 따라 선사들간에 제휴를 맺어 서로 선복(space)을 빌려 주어서, 해당 노선에서 보다 경제적인 방법으로 정기선 운항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두고 space charter 또는 slot charter라고 한다. 1 slot이란 20 푸트 짜리 콘테이너 (TEU) 1대를 선적할 수 있는 공간이나 면적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slot charter란 선사 A가 선사 B의 선박에 있는 일정 수의 slot을 용선하는 행위나 계약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선사 B로부터 선사 A가 선복(또는 slot)을 용선한 뒤, 송하인 S로부터 운송의뢰를 받으면, 선사 B는 송하인 S에게 선하증권을 발행하게 될 것이다.선하증권을 발행한 선사 A는 해상법상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해상물건운송인이 될 것이다. 즉, 선사 A는 당해 운송에 대하여 계약운송인이 된다. 이에 비하여 실제로 선복을 제공한 선사 B는 송하인과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다. 선사 B는 선사 A와의 계약에 따라 선복을 선사 A에게 제공하여 주기만 하였을 뿐이고, 송하인 S와 직접 계약을 한 바 없으므로 송하인 S는 선사 B에 대하여 계약상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송하인 S가 선사 B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송하인 S는 선사 B가 “실제운송인”임을 이유로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를 하여야 한다.그런데,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은 계약상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선적항에서 clean B/L (무하자 선하증권)이 발행되었고, 양하항에서 화물이 손상되었음이 발견되었을 경우에는 면책사항임이 증명되지 않는다면 계약운송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에 비하여, 전자의 경우에는 화주(즉 수하인)가 그러한 손상이 실제운송인이든 계약운송인이든 그들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하여 발생하였음을 입증하여야 한다. 요컨대, 양자의 청구 사이에는 입증책임이 다르다는 것이다.선사 B는 위 송하인 S의 콘테이너 화물을 그가 운항하던 선박의 2번 선창에 적재하여 부산항에서 미국의 어느 항구까지 운송하였는데, 부산항에서는 마침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환적화물이 있어서 그 콘테이너 화물도 같은 선창에 환적되었다. 그런데 선사 B가 환적 콘테이너 화물(이산화티오요소 300 드럼이 적입된 것)을 받을 때에 그 콘테이는 해당 송하인이 적입하였었고, 선사 B는 송하인측으로부터 300 드럼의 위 화학물질이 적입되었다는 통지를 받았으며, 별도로 내용물의 상태 및 명세에 대하여 아무런 통지를 받지 아니하였다. 당시 이산화이오요소는 국내법규나 국제해상위험물규칙에서 위험물로 아직 분류되지 아니할 때이었고, 2번 선창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데, 이산화티오요소는 습기와 고온에 약하고 금속과 반응하면 위험하므로 콘테이너 내부에서 적절한 차단 장치를 취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차단을 하지 아니하였고, 콘테이너 내부에 위 드럼들을 버팀대도 없이 엉성하게 쌍아 놓은 결과 위 화학물질이 드럼내부에서 서서히 분해되다가 운송과정에서 상당수의 드럼이 컨테이너 내부의 빈 공간으로 기울어지거나 쓰러지면서 드럼 밖으로 쏟아져 나와 공기 중의 습기와 결합하면서 폭발적으로 화학반응이 일어나 2번 선창에 고열과 연기 및 가스가 분출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위 선박의 선원들은 부득불 이산화탄소 가스를 위 선창에 주입시켰다. 그 결과 S가 의뢰한 화물도 손상이 되었다. 이러한 정도의 사실 관계 아래에서 실제운송인 B의 과실은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대법원 2001. 7. 10. 선고 99다 58327 판결은 과실이 입증되지 아니한 것으로 판단하고 S측의 B에 대한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하였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불법행위법상의 손해배상청구는 계약상 손해배상청구에 비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측에서 승소하기가 그만큼 어렵고, 그러한 사정은 Space를 제공하였을 뿐, 선하증권을 발행한 바 없는 위 선주 B에 대한 청구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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